크림반도 병합 3년, 현지인들은 행복한가?

세르게이 멜리코프/ Russia포커스
소련의 일부였던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에 귀속되었다가 2014년 3월 다시 러시아로 병합되었다. 이곳의 삶이 과연 어떤 부분에서 바뀌었을지 Russia포커스 통신원이 알아보았다.

행복하긴 한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나는 크림반도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심페로폴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33만6460명이 산다.

분위기는 휴양지와는 거리가 멀다. 시내 중심지에는 낡고 색이 바랜 소련식 건축물과 전당포들, 샤우르마(케밥)를 파는 소박한 카페들이 빼곡히 들어 차 있다.

나는 그런 카페 중 하나로 모닝커피를 마시러 들어갔다. 카페 안에는 일행으로 보이는 여자 네 명이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들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어릴 때 와 보고 아주 오랜만에 왔는데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러시아로 합병된 이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소련 해체 전후와 비교해 볼 때 그렇다는 것'이라고 은근슬쩍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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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 중 한 여성이 화답한다. “우리를 보시면 모르겠어요? 행복해요. 원래 우리 집으로 돌아간 거예요. 다시 러시아와 함께하게 된 거죠.”

친구로 보이는 다른 여성이 보탠다. “이 멍청이 말은 듣지도 마세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니까요. 물가만 모스크바 수준으로 올랐지.”

크림반도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위의 두 여성처럼 말한다. 러시아로 합병된 후 삶이 나아졌다고 생각하든, 나빠졌다고 생각하든 보통은 뭘 가지고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말이다. 모든 사람이 개인적인 느낌을 이야기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예전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정부한테든 지금의 러시아 정부한테든 울분을 토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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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해진 법 잣대

카페 옆 건물에는 러시아 내무부 소속 크림반도 교통경찰서가 있다. 상사가 특별히 허락하거나 모스크바에서 받은 공식문서를 보여줘야만 사람들이 질문에 응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면서도 혹시나 해서 경찰서로 들어갔다. 하지만 예상을 떠나 소탈한 태도에 나는 무척이나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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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과 소속 직원 엘레나는 내게 기자증을 보여달라고 하지 않은 채 “업무가 훨씬 많아졌어요. 러시아 법이 우크라이나 법과 아주 달라요. 특히 행정 법규 위반을 처리할 때 그런데 러시아 법이 전부 훨씬 더 엄격하기 때문이죠”라고 말한다.

치안기관 근무자가 늘어나 더 엄격한 러시아 법제를 적용한 것이 러시아 귀속이 몰고 온 황홀경을 누그러뜨리는 데 직간접적으로 기여했다. 지금 크림반도의 분위기는 2014년 합병 직후에 방문했을 때보다 확실히 가라앉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민 대다수가 우크라이나 정부를 경멸하긴 하지만, 크림반도를 병합한 러시아 정부에 대한 황홀감 또한 사라졌다.

러시아 정부에 실망한 사람들을 꼽자면 일단 노점상들이 있다. 러시아 정부가 크림반도 전역에서 노점들을 거의 싹쓸이하듯 철거했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Legion Media 사진제공: Legion Media

키로프 대로에 몇 개 남지 않은 노점을 지키는 한 상인은 “전엔 깡패들하고 협상하면 됐는데, 지금은 깡패, 러시아 경찰, 모스크바에서 온 공무원들의 말을 다 들어줘야 해요. 한마디로 삼중고를 겪고 있단 말입니다. 이게 합병 뒤에 일어난 변화의 전부요”라고 툴툴거린다.

“천만다행으로 이제 전쟁은 안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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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페로폴에서 누구나 다 아는 레스토랑 '크림스키 드보릭'을 운영하는 리파트 베키로프 사장을 만나러 나는 도시 변두리로 향한다. 이 레스토랑의 고객은 주로 크림반도에 거주하는 리파트 사장과 같은 민족인 타타르인이다. 내게 저녁을 대접하며 리파트 사장은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귀속되는 것을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돼서 기쁘다고 말한다. 러시아에 병합된 지금 그의 사업은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잘 되고 있다.

사장은 “초기에는 당연히 모든 사업자가 힘들어했어요. 많은 서류를 새로 만들어 등록을 다시 해야 했고, 전과 다른 관련 법규에도 적응해야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어쨌든 사업하기가 더 수월해졌습니다. 예전에는 1년에 세무조사를 열 번씩 나올 때도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행정 규제가 더 완화됐다고 봐야지요.”라고 말했다.

현재의 상황에 불만인 크림 타타르인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소문이 있는데 출처가 도대체 어디냐는 질문에 리파트 사장이 철학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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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불만 있는 사람들은 항상 있어요. 더군다나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별일을 다 겪어봐서 어떤 국가시스템이더라도 기본적으로 불신의 눈으로 봅니다. 1937년에 우리 할아버지의 재산이 몰수당했어요. 당시 할아버지는 여기 크림반도에서 캐러멜 공장을 했었는데 할머니와 함께 중앙아시아로 추방당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문제들이 일어날 거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금을 내고, 러시아 법규를 위반하지 않고, 이슬람 극단주의를 선동하지만 않는다면 어떤 식의 박해도 없을 거로 봅니다.”

작별인사를 하는데 리파트 베키로프 사장이 한마디를 얹는다. 크림반도에서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인데, 심지어 새로운 질서에 불만을 느끼는 사람들조차도 이 말을 한다. “이제 전쟁은 안 일어나겠지요. 천만다행이예요.”

'행복 도시'

사진제공: 세르게이 멜리코프/ Russia포커스사진제공: 세르게이 멜리코프/ Russia포커스

다음으로 들른 곳은 크림반도에서 휴양지로 유명한 얄타다. 도시로 진입하는 어귀에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 얄타의 간판 슬로건인 ‘행복 도시’가 써 있다. 하지만 이곳의 오물과 쓰레기 사정은 심페로폴과 막상막하이고 도로 사정 또한 딱 그만큼 형편없다. 관광 서비스 또한 예전과 마찬가지로 수준이 낮다.

크림반도의 러시아 귀속에 만족하는지 아니면 불만인지는 직업에 따라 딱 갈린다. 실망감에 꽉 찬 택시기사들은 물가는 오르는데 소득은 크게 줄어드는 상황에 화가 나 있다.

사진제공: 세르게이 말갑코/리아노보스티사진제공: 세르게이 말갑코/리아노보스티

기사 블라디미르는 “관광객 수가 줄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이 사람들에겐 돈이 거의 없어요. 러시아 정부가 사회복지 수혜자나 공공부문 종사자들을 엄청나게 많이 이곳으로 보내요. 가서 휴양하라고. 그렇지만 이 사람들은 아무런 소비활동도 하지 않고 얻어먹고 사는 사람들이예요. 그런데 우리 생업이 이런 상황에 직접 영향을 받고 있단 말입니다”라고 답답해 한다.

“우크라이나는 20년 동안 아무 신경도 안 써줬다”

사진제공: 세르게이 멜리코프/ Russia포커스사진제공: 세르게이 멜리코프/ Russia포커스

그러나 러시아 예산 수 십 억 루블이 투자된 분야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소련 시절 전형적인 요양소와 큰 차이가 없었고 과거 공산소년단원 캠프 시설이었던 '아르텍'이 지금은 훌륭한 시설을 갖춘 세계적 수준의 국제유소년센터로 탈바꿈했다. 이 센터 교육사업부에서 월급 5만 루블(97만 원)을 받으며 근무하는 엘리나 루츠가야 차장은 행복해서 얼굴이 환하게 빛날 정도다.

“푸틴은 정말로 대단해요! 그에게 키스를 보냅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20년 동안 못한 일을 삼 년 만에 해냈어요. 우크라이나는 우리를 그냥 무시했어요.”

얄타에서 나고 자란 이리나 벨로제로바는 약 15년을 시청에서 근무한 여성이다. 그는 2014년 크림반도의 러시아 귀속을 결정한 주민투표를 조직하는 일에 참여했는데, 러시아 정부에 불만스러워 하는 말만 들으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사진제공: 블라디미르 아스탑코비치/ 리아노보스티사진제공: 블라디미르 아스탑코비치/ 리아노보스티

그녀는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에요! 아니면 문턱이 닳도록 행정기관을 들락거리며 봉투나 찔러주면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았던 사람들이거나. 러시아로 병합된 뒤로는 훨씬 더 질서가 잡혔다 봐야죠.”

주민투표에 관해 말할 때 이리나 씨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갈라진다.

“내 평생 그보다 더 열광적인 모습을 얄타에서 본 적이 없어요. 너무나 행복해서 친구들과 얼싸안고 통곡했어요. 크림이 아직 우크라이나에 속했을 때 나는 친구의 러시아 여권을 하나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내 손에 쥔 여권과 똑같이 생긴 러시아 여권을 쓸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하고 언제나 생각했어요. 주민투표는 우리가 모든 면에서 온전히 러시아 사람이라고 느끼게 된 계기였죠. 그전까진 남의 나라 법에 따라 살고 모국어가 아닌 말로 서류를 작성했었지요.”

셋방살이 같은 내 집 생활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인 세바스토폴은 크림반도의 나머지 지역과 비교하면 다른 세상 같았다. 도시는 깨끗하고, 정갈하게 개조된 주택의 앞면은 새하얀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청결한 해안도로, 근사하게 차려입은 사람들, 자전거, 스쿠터, 맛있는 음식들이 인상에 남았다.

사진제공: 세르게이 멜리코프/ Russia포커스사진제공: 세르게이 멜리코프/ Russia포커스

프랑스 남부의 어느 조용한 소도시의 삶이 이런 모습이리라. 그런데 세바스토폴은 2014년 크림 사태의 발단이 되었던 대규모 친러 움직임이 시작했던 곳이기도 하다.

여기엔 그때의 흔적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다. 사람들이 즉석에서 만들었던 바리케이드가 조각난 채 뒹굴고, 러시아 삼색기 색깔로 칠해진 테라스가 있고, 소련의 붉은 기와 2차대전 승전 행사의 대표적 상징물인 성(聖) 게오르기예프 리본이 매달린 창문도 있으며, 세바스토폴 수호자의 모습으로 벽면을 전부 차지하고 걸려 있는 푸틴 대통령의 초상화도 보인다.

“광적인 현상이 지나갔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라고 나와 동행하던 여성가이드 율랴 씨가 말한다. 그는 2014년 러시아 국적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포기한 몇 안 되는 사람중에 하나다. 지금 그는 거주 허가 증명서만 가지고 있는데 유효기간을 해마다 연장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서류만으론 정식 취업이 힘들다. 그녀는 “전에도 나는 우크라이나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고 지금도 그래요. 러시아 오렌부르크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39년을 세바스토폴에서 살았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객관적인 사실만큼은 인정한다. 러시아에 병합되고 난 후 세바스토폴의 치안이 더 나아졌고 전기와 수도가 끊기는 날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데, 우크라이나 정부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진제공: 세르게이 멜리코프/ Russia포커스사진제공: 세르게이 멜리코프/ Russia포커스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고 이곳의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없었다면서 사람들은 우크라이나를 쉽게 비난합니다. 그런데 사실이 그랬어요.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는 세바스토폴에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어요. 게다가 이곳은 크림반도에서 가장 러시아를 사랑하는 도시예요. 항상 그랬지요. '러시아여, 오라!', '푸틴은 우리를 거두라!', '우리는 집에 가고 싶다!' 이런 외침을 이곳에서 사는 내내 듣고 살았어요.”

러시아 사람으로 불리는 것이 중요한 사람들

빅토르 예브도키모프 가족의 사연은 정반대이다. 모스크바에서 나고 자란 이 가족들은 풍요로운 수도가 주는 모든 것을 마다하고 일부러 크림반도로 이주했다. 둥지를 틀고 살면서 이곳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맞아요, 내가 바로 그 점령군입니다”라고 말하며 빅토르가 껄껄 웃는다.

빅토르와 그의 아내 크세니야, 그리고 우리는 해안도로를 따라 함께 걷는다. 모스크바에서 크세니야의  정치적 성향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그는 '잡트라(내일)'라는 클럽에서 예술감독으로 일했다. 2011년 볼로트나야 광장에서 시위가 있었을 때 푸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 클럽에서 모였었다(당연히 크세니야의 허락을 받고서).

사진제공: 세르게이 멜리코프/ Russia포커스사진제공: 세르게이 멜리코프/ Russia포커스

크세니야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세바스토폴에 처음 왔을 때는 걱정이 많았어요. 남편 빅토르는 러시아 애국자 그 자체였던 터라 크림반도가 어느 나라에 속해야 하느냐를 놓고 집에서 저와 남편은 격하게 끝장 토론을 벌였었지요. 그런데 이곳으로 이주해 오고 나서 저는 '러시아 해군의 도시'라고 불리는 세바스토폴이 정말로 완벽하게 러시아의 도시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크림반도의 러시아 병합이 강제 점령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 생각은 최소한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곳 사람들은 행복해 하고, 도시는 환상적인 에너지로 넘쳐 납니다. 제 입에서 나온 이 말이 얼마나 이상하게 들리든 간에 이 병합에는 도취할만한 뭔가가 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잘나가던 비뇨기과 전문의였던 크세니야의 남편 빅토르는 세바스토폴에서 웨이터로 취직했다. 실제로 밑바닥에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한 셈이다. 그는 과도한 애국주의 열풍에는 고운 시선을 보낼 수 없지만, '러시아적 특성'은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고 강조한다.

“애국주의 열풍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이젠 이곳에 특별히 없어요.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고 마냥 황홀해 하는 현상도 사라졌습니다. 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급여가 오르지는 않지요. 물가가 모스크바 수준으로 올랐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상황에서도 세바스토폴 사람들은 러시아에 감사한 마음이에요. 언어 문제가 많은 이들에게 불씨가 됐습니다. 이곳 학교들에선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라고 강요했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를 러시아 사람이라고 평생 생각해왔니 러시아어로만 말하고 싶어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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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와 크세니야 부부는 현재 이곳에서 집을 빌려 세를 산다. 내년 쯤 모스크바에 있는 아파트를 팔고 그동안 모은 돈을 합해 세바스토폴에 집을 사고 여행객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카페를 열 계획이다.

해안도로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흑해함대 해군 복장을 한 아코디언 연주자가 흘러간 옛 러시아 군가 '어두운 밤'과 '승리의 날'을 연주한다. 지금은 3월이다. 승리의 날을 되새기는 승전기념일은 5월이니까 아직 멀었다. 하지만 아코디언 연주자를 둘러싼 할머니들은 온 마음을 다해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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