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러시아 전역서 대규모 反부패 집회

2017년 3월 26일의 집회

2017년 3월 26일의 집회

로이터
지난 26일 일요일 모스크바와 다른 러시아 대도시들에서 反부패 집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그 과정에서 참가자들이 특수경찰 ‘오몬’이 충돌하고, 참가자들이 현장에서 대거 체포됐으며 당국에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민활동가들이 자체 조사들 통해 밝힌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의 부정부패 의혹이 러시아 SNS에 퍼지면서 이번 집회의 발단이 됐다.

지난 26일 일요일 극동과 시베리아를 시작으로 러시아 전역에서 반부패 집회가 열렸다. 최대 규모 집회는 모스크바의 중심인 트베르스카야 거리에서 열렸다. 경찰은 이 집회에 참가한 인원을 7000~8000명으로 평가했지만, 집회 주최측은 참가 인원을 밝히지 않았다.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와 그가 설립한 ‘反부패재단’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의 부정축재에 대한 자체조사 결과를 공개했지만, 이에 대해 당국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일요일 집회는 이에 대한 항의로 조직된 것이다. 나발니측은 메드베데프 총리가 부정축재로 12억 달러 규모의 재산을 은닉해 이른바 ‘메드베데프 제국’을 세워 놓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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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은 최근 한국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때문에 발생한 서울과 지방의 동시 다발적 촛불 시위를 연상케 한다. 이 국정농단 게이트의 핵심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사이의 뇌물 여부인데, 이는 러시아의 이번 사례와는 다르지만 크게 보면 최고 권력자급의 부정부패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는 1000만 명 이상이 참가한 촛불 시위의 영향으로 박근혜 태통령이 탄핵됐고, 27일에는 뇌물죄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반부패재단이 제작한 탐사보도 영화 <그를 디몬이라 부르지 마세요>. (‘디몬’은 메드베데프의 이름인 ‘드미트리’의 애칭 중 하나) 출처: Youtube

이날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된 대부분이 집회는 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한 것이었다. 모스크바 집회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경찰과 충돌을 빚으며서 많은 사람이 체포됐고 모스크바에서만 약 850명이 체포돼 경찰서로 압송됐다.

<그를 디몬이라 부르지 마세요>란 제목의 영화가 공개된 후 SNS상에서 영화를 시청한 사람은 1300만 명이 넘었으며 이는 러시아 인구의 9%에 해당한다. 집회 며칠 전부터 모스크바 경찰은 허가받지 않은 집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경고했으며 집회 시작 4시간 전 차도 양쪽으로는 시위진압차량과 ‘오몬’ 버스가 출동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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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당일인 26일 反부패재단은 러시아 전역(유즈노사할린스크, 블라디보스토크, 콤소몰스크나아무레, 크라스노야르스크, 바르나울, 케메로보, 톰스크, 노보시비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사라토프, 볼고그라드,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크라스노다르, 칼리닌그라드)에서 동시에 열린 집회 현장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모스크바에서는 집회 참가자들이 마치 산책을 나온 것처럼 평화롭게 크렘린 방향으로 향했다. 주최측은 경찰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과격한 행동을 자제’해 줄 것을 참가자들에게 요청했고 참가자들은 ‘오몬’ 대원들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기도 했다.

집회에 왜 나왔나?

경찰이 알렉세이 나발니를 잡는 모습. 사진제공: 로이터경찰이 알렉세이 나발니를 잡는 모습. 사진제공: 로이터

사람들은 지하철을 이용해 트베르스카야 거리에 도착한 후 이미 모여 있는 군중에 합류했다. 여전히 경찰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불신으로 가득했다.

코트를 입은 한 중년 여성은 시위 군중을 경계하며 주시하는 경찰들을 가리키며 “우린 부정부패에 반대하러 나왔는데 그럼 이 사람들은 부정부패에 찬성이라도 한다는 건가요?”라고 놀란 눈을 하며 소리쳤다.

모스크바 집회에는 주동자나 확성기, 짜맞춘 행동계획도 없었다. 어디서 움직이고 어디서 멈추고 누군가의 지시를 기다려야 하는 건지 아닌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지적으로 생긴 한 청년이 “도대체 우리가 원하는 게 뭘까요? 우리는 과연 싸우길 원하는 건가요 아닌가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아는 건 하나입니다. 정부와의 대화는 이제 끝났다는 거예요. 우리는 약속이 아니라 변화를 원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여기 나온 건 메드베데프 한 사람이 아니라 정부의 총사퇴를 위해섭니다.”

다른 쪽에선 “크림이 우리 건지, 아닌지 당장 결정을 내리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그런 건 다음에 해결하고 당장은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가 하면 나이 든 연금생활자 어머니와 집회를 찾은 남자가 사람들 속에서 말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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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환경엔지니어인 올레크라고 소개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나발니가 만든 영화에 대한 답을 요구합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언론도 침묵하고 정부도 침묵하고 있거든요. 영화는 사실 같아 보입니다. 만약 거짓이라면 왜 당사자들은 반박하지 않고 나발니를 무고죄로 고소하지도 않는 걸까요? 우리 부모님은 벌써 은퇴하셨지만 아직도 일을 하세요. 제 월급으론 먹는 것밖에 해결할 수 없거든요. 정부는 우리보고 참으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래야 하는지 설명해보라고 하세요! 어떻게든 설명을 해보라구요.”

그 순간 군중 속에서 “앞으로!”하는 구호 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은 경찰 옆을 지나 씩씩하게 크렘린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올레크와 그의 어머니도 주저하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찰과 충돌하는 게 무섭지 않나요?” 내가 물었다.

“무서워도 뒤로 숨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해요. 이제 뭔가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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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위해!”

크렘린 방향으로 2.5km 정도 더 전진해 푸시킨스카야 거리에 접근하자 인도는 사람들로 옴짝달짝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경찰이 에워싸고 있어 도로로 나갈 수도 없었다. 차량 통행도 일부 마비된 상태여서 자동차들이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경적을 울려댔다. 하늘에는 순찰 헬기가 떠 있었다. 확성기로는 지하철을 이용해 모스크바 외곽의 소콜니키 공원으로 이동해 집회를 계속하라는 경고가 흘러 나왔다. (애당초 모스크바시는 소콜니키 공원을 집회 장소로 권유했지만, 주최측에서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경고를 따르지 않았다.

군중 사이에는 대학생들이 많았다. 그들 대부분이 “나발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변화를 위해 집회에 참가했다”고 강조했다. 바로 그 순간 휴대폰에 나발니가 체포됐다는 메시지가 떴다. 사람들은 나발니를 태운 버스 앞을 자동차로 막아섰다. 그러자 오몬이 몽둥이로 참가자들을 때리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삽시간에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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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경제대학 학생이라는 콘스탄틴은 “내가 여기 나온 것은 어떤 대답이든 뭔가를 그들로부터 듣고 싶어서예요. 그런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잖아요! 솔직히 이건 정말 화가 나는 일이예요. 사람들한테 걷은 세금으로 권력을 가진 자들은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니!”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두 명의 대학생이 욕설을 내뱉으며 길 건너편에 오몬이 어떤 사람의 팔과 다리를 들어올려 호송차에 싣는 장면을 휴대폰으로 찍고 있었다.

“여기 나온 이유가 뭔가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대답을 듣고 싶어 나왔어요. 집회는 처음이에요. SNS를 보고 왔어요. 정부의 대답이 없다면, 집회에 또 나올 겁니다.”

“대답이 나왔는데, 마음에 안 든다면 어쩔 거예요?” 내가 물었다.

“아직 모르겠어요. 거기까진 생각을 안 해봤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집에 편히 있지 않고 여기 모였다는 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정말 오랫동안 이런 게 없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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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 대한 전문가 평가:

콘스탄틴 칼라체프, 민간 ‘정치전문가그룹’ 회장

“성공적인 집회였다. 이번 경우 참가자 수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집회에 참가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부담이 따른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게다가 참가자들의 연령대도 젊어지고 있다. 정부로서는 좋은 소식이 아니다. 청년층이 불만을 느끼고, 나발니는 그것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었다. 메드베데프 총리는 그 생각할 거리에 불과했다. 이전 세대와는 달리 청년 세대는 안정보다 변화를 원한다.”

세르게이 마르코프, 친크렘린 성향의 ‘정치연구소’ 대표

“이번 집회는 전국 열 개 정도 도시에서 다 합쳐 수 만 명이 모인 것에 불과하다. 이로써 나발니는 반체제 친서방 야권 지도자임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는 청년층에 초집중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이들은 거리 집회에는 나올 수 있지만 유권자로서는 큰 의미가 없다. 투표소를 꼬박꼬박 찾는 것은 장노년층이지, 거리를 휘젖고 다니는 젊은애들이 아니다. 이번 집회가 어떤 결과를 낳을 지는 아직 모르겠다. 탄압이 심해질 수도 있지만, 자유화의 바람이 불 수도 있다. 모스크바 중심가의 집회를 불허한 이유가 억지스럽고(“가두시위로 주민에 불편을 끼칠 수 있다”) 시위대를 인위적으로 도시 외곽으로 밀어냈는데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자극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러 야권, 모스크바 집회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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