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미 롤러코스터

전문가들은 시리아 내 군사 사건들을 미국과 러시아가 국지적으로 무력 충돌할 가능성에 대한 사전 여론 정비 작업으로 해석하고 있다.
오피니언
Putin Obama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 미국 대통령 바라크 오바마 출처 : 로이터

러시아와 미국이 서로 언성을 높인 것은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 분위기는 양국 관계가 암울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 국무부 당국자는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다시 패배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고, 러시아 국방부는 흐메이밈 공군기지에 배치된 S-300과 S-400 방공 시스템의 사정 거리를 미국 ‘전략가들’에게 상기시켰다. 정보분야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1980년대 초 최악의 상황에 근접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심지어 그 이상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미-러의 군사 충돌이 가능한 이유

현 상황은 대결의 무대를 공개된 장소로 전환할 준비가 돼 있는 서방의 정치, 심리적 준비 상황을 드러낸다. 서방의 최고 지도부는 ‘현지의 분파’가 조장한 사건에 쉽게 휘말려 들 수도 있다. 무장단체들과 자국 ‘파트너들’을 통제하는 미국의 힘이 약화됐음을 보여주는 징후들은 아주 많다. 그게 아니면 상황이 미국도 모르게 전개되고 있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이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베트남전 이후 형성된 미국 정치 문화와 행태가 식민주의적인 무력분쟁 방식으로 ‘융해된’ 결과이다.

시리아가 러시아와 서방이 무력 대결을 하는데 매력적인 무대가 된 이유를 일각에선 간단하게 설명하려 한다. 시리아에는 중요한 이익이 걸려 있지 않으므로 러시아가 갈등을 국지적 교전 수준으로 유지시키고 전투 양상을 최대한 짧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러시아가 파병한 군사력이 패배해 크렘린이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러시아는 특별한 정치적 조건 없이 병력 철수를 합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위 ‘최소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가동되면 러시아는 ‘작은 것을 희생하고 큰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제안하면서 상황을 미국이 선호하는 ‘정치 거래’ 포맷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시리아에서의 러시아 군인들. 출처: 로이터시리아에서의 러시아 군인들. 출처: 로이터하지만 주로 미국 엘리트와 국가 안보 자문기구가 갖고 있는 그런 시각은 러시아가 이미 오래 전부터 시리아를 ‘큰 그림’의 일부이자 ‘강대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를 결정하는 중대한 시험대로 간주하고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관점이다.

러시아는 시리아 상황을 단순히 큰 게이 아니라 ‘굉장히 큰’ 이해가 걸린 상황으로 간주하고 있다. 러시아 지도부에게는 어쩌면 크림 반도를 둘러싼 이해관계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미국의 전략적 계산

미-러 관계를 둘러싼 상황의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미국도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러시아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긴장을 고조시킬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를 위험한 요소로 평가하지만, 흑해와 우크라이나, 긴장이 높아져도 미국이 유감스러워 하지 않을 수 있는 발트해 연안 지역처럼, 이미 방향이 정해져 있고 미국에 ‘편안한’ 지역들에서만 러시아가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러시아가 ‘그 범위를 넘어갈’ 가능성을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둘째, 미국은 러시아 언론과 엘리트가 교묘하게 조종하는 여론은 불안정하며 강한 일격에 쉽게 와해 될 수 있고, 이는 엘리트의 컨센서스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러시아 엘리트의 컨센서스는 미국에 유쾌하지 않은 현실이었다.

미국의 군사 전략은 매우 단순하다. 러시아와 관련된 하나의 사건이나 연쇄 사건을 유발하고 이를 국지적이며 적절한 규모의 무력으로 공격할 수 있는 합법적 근거를 선전 차원에서 조성하는 일이다. 이는 미국이 러시아 엘리트 내부의 우호적 그룹이나 잠재적 우호 그룹들을 대상으로 정치적인 조작을 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조성해 준다.

러시아를 겨냥한 미국의 무력 정치는 어떠한 군사적 승리도 예견해 주지 않는다. 심지어 ‘판정승’ 전망 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미국으로선 ‘승리했다’고 선언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내거나 러시아에게 특정 수준의 대결을 계속할 뜻이 없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안정적인 순환 주기들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엘친과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 출처: 로이터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엘친과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 출처: 로이터

다른 한편, 정치평론가 표도르 루키야노프는 우울해 할 필요 없다고 평가했다. 러-미 관계의 궤도는 ‘냉전’ 이후 대체로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궤도는 선거 주기와 연결돼 있는데, 주기 내부에서는 이런 저런 변동이 있을 수 있지만, 한 주기가 끝날 때 쯤이면 반드시 긴장이 고조된다는 것이다.

1999년 옐친 대통령이 “러시아는 체첸에서 취한 행동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말에 강하게 반발한 사실을 기억해 보라. 당시 서방은 제재를 준비하고 있었다. 엘친 대통령은 “미국은 러시아에 압력을 가하려고 했다. 그런데 클린턴은 러시아가 어떤 나라인지, 러시아엔 핵무기가 가득 들어찬 무기고가 있다는 사실을 1초, 1분, 30초 동안 잊은 것 같다. 클린턴은 힘으로 밀어 붙이려고 했다. 그런 클린턴에게 지금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 잊지 않도록 말해주고 싶다. 클린턴만이 전 세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시하는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흥미롭게도 당시 이 상황을 수습해야 했던 사람은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였다.

루키야노프에 따르면, 이 일화에는 완곡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현재 목격하고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릇된’ 행동을 응징하겠다는 경고, 군사적 잠재력을 상기시키면서 보인 러시아의 격한 반응, 이를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미국의 태도 등등이다.

러-미 관계는 지도자들의 개인적 관계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러-미 관계의 근간은 옐친 대통령의 1999년 12월 베이징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구조적으로 러시아는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와 어울릴 뜻이 결코 없었지만, 심각한 도전장을 던질 힘도 없었다. 한편, 미국은 실제로 이 세계를 건설할 힘이 전혀 없었지만, 이러한 구상을 포기할 뜻도 없었다. 순환적이고 단계적인 상황 악화는 이제 매우 위험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는데, 그 원인은 25년 전 예상했던 세계 질서 모델이 완전히 한계를 드러낸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문제는 전환이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이루어 지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상징적인 점은 짜릿한 감각을 좇는 사람들이 즐기는 놀이 기구가 러시아에선 ‘미국 롤러코스터’로 불리지만, 미국 문화에서는 ‘러시아 롤러코스터’로 불린다는 사실이다. 스릴은 똑같지만, 스릴의 원인을 상대의 특징에서 찾는다. 그점은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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