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인 재봉사에서 샤넬, 버버리까지 – 러시아 퍼스트레이디의 의상 담당들

Russian President Boris Yeltsin (right) and Naina Yeltsin (center) at Orly Airport during their visit to France

Russian President Boris Yeltsin (right) and Naina Yeltsin (center) at Orly Airport during their visit to France

블라디미르 로디오노프/ 리아노보스티
누구는 옷을 선택할 때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지만 누구는 격에 안맞는 모자나 재킷 때문에 아직도 세계인의 기억에 남아있다.

소련 시절 국가 수반의 부인들이 다 통상적인 의미에서 퍼스트레이디였던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를 공식 방문할 때 국가 수반 옆에 배우자가 같이 서는 외교상 예의는 소련 지도자들에 적용되지 않았다. 그들의 부인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아도 됐고 심지어 자국민들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었다.

검박함이 강조되었고 데콜테(목·어깨·가슴을 드러낸 네크라인 스타일-역주)는 덕이 있는 사람의 옷차림이 아니었다. 그들은 수 많은 소련 여성들이 입는 대로 옷을 입었다. 도발이나 우아함 같은 것은 공산주의 건설이라는 목표에서 확실히 비켜 나 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니나 흐루쇼바와 함께 변했다. 흐루쇼바 여사 얘기부터 시작하자.

니나 흐루쇼바와 홈가운 드레스

재클린 케네디(왼쪽 3번째)와 니나 흐루쇼바( 왼쪽 4번째). 사진 제공: Vostock-photo재클린 케네디(왼쪽 3번째)와 니나 흐루쇼바( 왼쪽 4번째). 사진 제공: Vostock-photo

니키타 흐루쇼프의 부인 니나 흐루쇼바 여사는 당서기장과 함께 외국을 공식 방문한 제1호 배우자였는데 그 사실만으로도 퍼스트레이디라고 불릴 만하다. 거기다 니나 흐루쇼바 여사는 독특한 취향때문에 쏟아지는 조롱을 받았던 첫 번째 영부인이기도 했다. 그녀는 ‘국민과 닮아 친근한 사람’이라 불렸고 ‘시골 스타일’을 좋아했다. 프린트 된 꽃무늬에다가 조잡하고, 자루를 쓴 것처럼 헐렁한 스타일이었다. 이 맞춤새는 니나 여사에게 잔인할 만큼 우스꽝스러웠다.

역사적인 미국 방문길에 오르면서 니나 흐루쇼바 여사는 여름 꽃무늬 롱재킷을 선택했고, 사람들은 그 의상에 ‘홈 가운 드레스’라는 별명을 붙였다. 당시 미국 스타일의 아이콘이었던 재클린 케네디 여사가 공식 사진촬영을 위해 옆에 서자 상황은 더 나빠졌다. 수수하다 못해 거의 집에서 입는 옷차림을 한 니나 흐루쇼바는 재클린 케네디 옆에서는 만회할 기회가 얻을 수 없었다. 이 사진은 세계 전체로 퍼져 나갔고, 그 덕분에 니나 흐루쇼바 여사는 전형적인 소련 여성인 집단농장 여성 일꾼의 화신으로서 영원히 역사에 길이 빛날 듯하다.

이 모든 것이 더욱 놀라운 이유는, 니나 흐루쇼바의 의상을 담당한 사람이 당시 모스크바에서 유명한 재봉사였던 니나 구팔로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스탈린 딸의 옷과 감각 없다는 말은 결코 들어 본 적이 없었을 유명 여배우들의 옷을 만들었던 사람이다.

한편, 흐루쇼프가 당서기장이었던 시절인 1959년 서구 유행을 선보이는 패션 쇼가 모스크바에서 처음으로 열렸는데, 당시 크리스티앙 디오르(Christian Dior) 하우스를 책임지고 있었던 이브 생로랑이 쇼 참석차 모스크바에 다녀갔다. 이 패션 쇼에는 정치 지도부 등 엘리트 계층만이 참석할 수 있었다.

빅토리야 브레즈네바와 칙칙한 앙상블

빅토리야 브레즈네바 (왼쪽 3번째). 사진 제공: 블라디미르 아키모프/ 리아노보스티빅토리야 브레즈네바 (왼쪽 3번째). 사진 제공: 블라디미르 아키모프/ 리아노보스티

소련의 일반 대중 여성 사이에서 튀어 보이지 않는 전통은 차기 영부인인 빅토리야 브레즈네바에도 이어졌다. 공개 석상에 나오려는 의향조차 없었던 그였지만 대중 앞에 등장했던 흔치 않은 날들이 있었고, 그런 날에는 검소하고 조화롭긴 하지만 많은 이들이 칙칙하다고 평했던 앙상블을 입었다.

모든 당 간부들과 마찬가지로 빅토리야 브레즈네바 여사의 옷도 쿠즈네츠 다리에 있던 유명한 ‘모델들의 집’에서 맞췄다. 이곳에선 옷을 디자인하고 소련 옷 공장에선 디자인된 옷을 생산했다.

그 당시에도 소련에서 외국 상품을 구할 수가 있었는데, 예를 들어 붉은광장에 있는 중앙백화점 ‘굼(GUM)’이나 외교관들을 위한 특수상점 ‘베료스카(자작나무)’에서 외국환을 주고 물건을 살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 외환은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빅토리야 브레즈네바 여사는 이 문제로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는데, 여기서 남편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서기장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진정한 댄디여서 외국에서 셔츠와 넥타이를 엄청 사들였다. 심지어 ‘청바지 열풍’마저 그를 비껴가지 않아 그는 데님으로 만든 재킷을 입고 등장하기도 했다.

라이사 고르바초바 – 러시아의 재클린 케네디

라이사 고르바초바. 사진 제공: 니콜라이 말르세프/ 타스라이사 고르바초바. 사진 제공: 니콜라이 말르세프/ 타스

라이사 고르바초바 여사는 러시아의 재클린 케네디라고 불린다. 항상 상황에 딱 맞아 떨어지는. 세련된 실루엣의 의상은 국민적 질투를 일으키기도 했다. 라이사 여사를 두고 서방에서는 ‘파리지앵처럼 시크한 공산주의자 레이디’라고 불렸지만 소련 내에서는 퍼스트레이디가 이브 생로랑이나 피에르가르뎅 같은 값 비싼 명품을 나랏돈을 주고 파리에서 들여온다고 혹독하게 비난받았다..

라이사 고르바초바 여사가 파리 쿠튀르 디자이너들과 친분을 쌓고 패션 쇼에도 참석하곤 했지만 실제로 여사의 의상은 쿠즈네츠 다리에 있던 그 ‘모델들의 집’ 디자이너인 타마라 마케예바가 만들었다. 그렇긴 하지만 피에르가르뎅, 이브 생로랑 같은 브랜드가 소련 시장에 진입하도록 고르바초바 여사가 적극적으로 도왔고, ‘Burda moden’하우스가 모스크바에서 문을 열 수 있게 힘을 쓴 것도 사실이다. 이후에 고르바초바 여상의 의상은 쿠튀르 디자이너 발렌틴 유다시킨이 담당했는데 그는 포스트 소비에트 시대의 디자이너 제1호로 불린다.

니나 옐치나와 류드밀라 푸티나

보리스 옐친 러시아 초대 대통령(가운데)와 니나 옐치나. 사진 제공: 블라디미르 로디오노프/ 리아노보스티보리스 옐친 러시아 초대 대통령(가운데)와 니나 옐치나. 사진 제공: 블라디미르 로디오노프/ 리아노보스티

라이사 고르바쵸바 이후의 퍼스트레이디들은 소련식 전통을 이어나갔고 여전히 남편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그들의 의상은 주로 고상한 고전적인 스타일, 밝은 톤과 베이지 톤, 보수적인 스타일의 옷이 지배적이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부인 나이나 옐치나 여사는 나라의 외모를 바꾸었다. 부르고뉴 의상과 한번 하면 6개월씩 파마 머리로 대변되는 ‘파격적’인 80년대식 스타일에서 차분하고 고상한 고전적 샤넬(Chanel)식 스타일로 변화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어른쪽),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그리고 류드밀라 푸티나. 사진 제공: 알렉세이 파노프/ 리아노보스티엘리자베스 2세 여왕( 어른쪽),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그리고 류드밀라 푸티나. 사진 제공: 알렉세이 파노프/ 리아노보스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전(前) 부인인 류드밀라 푸티나 여사는 모노 톤의 고전적 의상을 좋아했다. 재킷에 자수 놓는 것도 좋아했는데, 그래서 주변 정치인들의 부인들에게 자수 놓기가 빠르게 유행하기도 했다. 푸티나 여사는 이고르 차푸린, 빅토리야 안드레야노바, 슬라바 자이체프 같은 러시아 유명 디자이너들의 조언을 들으러 가끔 이들을 찾아갔다. 슬라바 자이체프가 2003년 영국에서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 바 있는 바로 그 엄청나게 챙이 큰 모자를 쓰라고 했는데, 영국 여왕의 리셉션에서 푸티나 여사의 모자가 여왕의 모자보다 더 컸다. 러시아 언론의 보도 내용을 보면 푸티나 여사는 기성복을 선호하는데, 특히 버버리(Burberry) 컬렉션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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