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장 노선의 트롤리버스 여행 맛보기

2017년 1월 11일 페기 로제, Russia포커스
우리의 독일 관광객들이 얄타에 가기 위해 택시 대신 트롤리버스를 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바닷가를 따라 거의 100km를 달려왔다.

사진제공: 알렉산더 류민/ 타스사진제공: 알렉산더 류민/ 타스모스크바에서 비행기를 타고 심페로폴에 도착해 공항 밖으로 나오자 한 무리의 기사들이 “알루쉬타든, 세바스토폴이든, 바흐치사라이든 반도 내의 도시라면 어디든 데려다 주겠다”며 모여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크림의 명물 즉, 세상에서 가장 긴 심페로폴-얄타 간 트롤리버스 노선을 타고 휴가지로 가기로 이미 결정한 상태였다.

트롤리버스 No.52가 공항 근처의 정류장에서 크림의 남부 해안까지 20분마다 한 대씩 운행되는데 교통비는 129루블(약2470원). 그 정도면 합리적인 것 같다. 버스는 심페로폴과 크림 산맥을 지나 흑해 연안을 따라 3시간 동안 96km를 달린다. 이 트롤리버스는 산악 지역에서 운행되는 트롤리버스로 세계에서 유일하다.

그런데 이 코스는 심페로폴에서 크림의 관광 명소인 남부 해안까지 가장 저렴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가장 느린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도 왜 관광객들은 이 코스를 택할까?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자연 풍경을 느긋하고 주의깊게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티켓은 정류장 옆 흰색 작은 부스에서 바로 살 수 있었다. 버스의 안은 거의 비었고, 한 나이많은 부부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여자 기사는 창문을 닦는다. 이상도 하지. 왜 크림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도 트롤리버스 운전 기사는 여성들의 직업으로 돼 있을까? 잠시 후 티켓 검사와 출발. 여행이 시작됐다.

사진제공:  Lori/Legion-Media사진제공: Lori/Legion-Media

심페로폴에서

공항에서 심페로폴 도심까지는 직선 도로다. 창밖으로 멀리 언덕을 보고 있는 동안 반대 차선에서는 건설 장비들이 아스팔트를 다지고 도로를 확장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정류장마다 승객들이 탄다. 노동자들도 있고, 가방을 든 학생들과 할머니들도 있다.

철길 위로 놓인 다리를 천천히 여유 있게 지난다. 기차 역사 건물 주위에는 인적이 없고, 플랫폼은 한산하다. 옆에 앉은 승객이 “여기는 아무것도 안 다녀요. 아침에 근교 도시로 가는 기차 2~3대가 전부예요”라고 말한다. 장거리 기차는 2014년 국민 투표 이후 폐지되었다.

사진제공: Lori/Legion-Media사진제공: Lori/Legion-Media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뛰어가는 사람, 뭔가 먹는 사람, 소리치는 사람, 티켓을 사는 사람, 거의 출발하려고 하는 버스에 올라타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정류장은 기차 역과는 정반대다. 우리가 탄 트롤리버스가 꽉 찼다. 우리 좌석 맞은 편에는 학생 두 명이, 통로 옆좌석에는 할머니 두 분이 앉았다. 젊은이들이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노인들은 고맙다고 인사한다. 날씨, 도로, 지난 휴일에 대한 화제로 이야기 꽃이 피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가장 긴 메인 도로를 따라 달린다. 도로명이 ‘키예브스카야’이다. 심페로폴은 기대와 달리, 잿빛 도시이다. 플래카드, 광고판, 사람들, 공사장은 형형색색인데, 건물들은 회색이다. 바람에 날려 오는 황사로 사방이 뿌옇다. 맞은편에 앉은 학생들이 화이트 초콜릿을 나누어 먹는다. 트롤리버스가 도심을 벗어나 이윽고 시골길로 접어든다.

이 노선을 따라 벌써 50년 이상 트롤리버스가 오갔다. 심페로폴-알루쉬타 노선은 1959년 개통됐고, 얄타까지 연장 노선이 1961년 개통되었다. 걸리는 시간은 그때나 다름없고 차만 달라졌다. 40년 전에는 ‘스코다’ 같은 차가 크림 산맥을 따라 오르내렸는데, 지금은 러시아제 차량이 운행된다. 예를 들면, 볼로고드스키 공장에서 생산되는 신형 저상 트롤리버스 ‘아방가르드’이다.

산지를 따라

사진제공:  Lori/Legion-Media사진제공: Lori/Legion-Media차창 밖으로 갑자기 산이 불쑥 솟아났다. 트롤리버스는 능선을 따라 위로, 아래로 침착하게 달린다.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산과 숲이 우리를 둘러쌌다. 여기 분명히 버섯이 있을 텐데, 얼마나 올라가야 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맴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버스가 숨을 헐떡이 듯 오른다. 크림 산맥의 중간쯤에 갑자기 대형 십자가가 보였다. 검문소이자 도로에서 제일 높은 지점인 ‘페레발노에’(해발 752m)에 온 것이다. 이곳에 트롤리버스 기념비가 있다. 이 고개는 초기 러시아제 차량들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던 한계 선이다. 어느새 트롤리버스 안은 입석까지 가득 찼다. 이제는 바다를 향해 내려갈 차례다.

해변 언덕을 따라

바다는 우리 여정의 첫 휴양지인 알루쉬타를 지나자 곧바로 나타났다. 알루쉬타에선 우리 운전 기사가 새 기사가 교체됐다. 오래 운전하면 피곤하기 때문이다. 안에 꽉 들어찬 사람들이 밀고 밀리기 시작했다. 정류장에 설 때마다 현지 주민들뿐만 아니라 점점 더 많은 관광객들이 탔다. “식물원에 가려면 어디에서 내려야 하나요?” 하고 관광객의 한 여성이 바로 옆 승객들에게 물었다. “니키타에서 내려야 해요. 제가 어디인지 알려 드릴게요”라고 한 명이 답한다. 또 다른 사람도 가세 한다. “저도 거기에서 내리니까 알려 드릴게요.” 니키타 식물원까지 얄타 방향으로 몇 km를 더 가야 하는데도, 불안한 관광객들은 다 온 거 아니냐고 계속 묻는다.

유럽에서는 대중 교통이 러시아에서처럼 이렇게 혼잡한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짜증을 일으키는 소형 버스, 기차 또는 트롤리버스안의 상황이 유럽인들에게는 흥미로운 모양이다. 일주일만이라도 기차의 칸막이 없는 침석(寢席)을 이용해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여행해 본다면 현지인들을 볼 수 있고, 아는 러시아어를 총동원해 말을 나눌 수 있다. 단순히 택시를 타고 호텔까지 가거나 견학 여행만 해서는 한 나라를 알 수 없다.

알루쉬타에서 얄타까지는 흑해의 가파른 해변을 따라 33km를 더 가야 한다. 가는 도중에 이곳저곳에 기념품, 야채, 과일 및 와인을 파는 노점이 있다. 각 마을의 도로는 어떤 때는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오르막길이고 또 어떤 때는 바닷가 쪽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이다. 크림의 트롤리버스 노선은 ‘루스키에 고르키(러시아 롤러코스터)’와 비슷하다.

마산드라 궁전, 청소년 캠프장 ‘아르테크’와 식물원을 지나는 동안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타고 내린다. 관광객들의 카메라와 안경이 햇빛을 받아 번쩍거린다. 우리 왼쪽 창밖으로 크림의 여러 도시가 보이고, 아래쪽으로는 드넓은 바다가 반짝이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포도 농장과 그 소유주의 저택이 보인다.

사진제공: Lori/Legion-Media사진제공: Lori/Legion-Media우리가 와인 공장 ‘마산드라’ 앞의 마지막 내리막길을 지나 얄타 버스 터미널로 들어가자 또 다시 한 무리의 택시 기사들이 모여든다. 우리는 크림의 ‘초보’ 관광객들이지만, 트롤리버스를 타고 여행하는 동안, 크림에서 휴양을 하다 보면 빼어난 경치만 감상하게 되는 게 아니라 착하고 마음이 여유로운 많은 사람들과도 함께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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