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바이칼 일기: 곰의 흔적을 좇아 위아래로

동 시베리아에 사는 여성 안나 그루즈데바는 시베리아를 더 가까이 느끼고 이 지역의 어떤 면이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지 경험하기 위해 자바이칼 변방 주에서 있는 코다르 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코다르 산에서. 출처 : 세르게이 포포프코다르 산에서. 출처 : 세르게이 포포프

긴 여정과 기차 속의 묵상

자바이칼 변방 주의 북쪽으로 가는 나의 여행은 기차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밤(BAM) 철도를 탔다. 크라스노야르스크(모스크바에서 동으로 4173km 떨어진 도시)에서 출발하면 기차로 이틀 걸리고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발하면 훨씬 더 걸린다. 즉, 세베로바이칼스크(모스크바에서 5741km 떨어진 도시)에서 다른 기차로 갈아타야 하며 모스크바에서부터 총 100시간이 넘게 걸린다.

가차에서. 출처 : 세르게이 포포프기차에서. 출처 : 세르게이 포포프

갑갑한 플라츠카르트(개방형 6인실)를 공격하는 덜컹거림을, 끊임없이 꼬이는 파리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다, 속도가 느린 순간 이동 장치쯤으로 생각하자. 내 침대 매트리스의 편안함에만 익숙했는데, 벌써 불편함에 적응해가며 기차의 2층 칸에 누워 있다. 생업으로 머리는 항상 분주했고 손에서 핸드폰을 놓을 겨를이 없이 살았지만, 지금 기차 칸에 누워서는 모든 걱정거리를 내려놓는다. 어차피 인터넷도 안되니까. 일상에서는 고층빌딩에 시선을 두고 살았다면 지금 이곳에서는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을 보며 벌써 이틀째 때 아닌 명상 중이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닥터 지바고>에서 쓴 풍경 속에 들어 있는 듯하다. ‘태양이 색을 앗아간 듯 뿌옇고 뜨거운 먼지 구름 속에서 마치 백색광처럼 러시아가 날아간다. 들판과 초원, 도시와 농촌 마을들이’.

이 기차 여정을 짠 이유는 산속에서 2주간 은둔하며 지내려는 계획 때문만이 아니었다. 밤(BAM) 철도를 타면 ‘세베로바이칼스크’ 역에서 고온 또는 저온으로 훈제한 맛있는 바이칼 오물(물고기 종류)을 먹어볼 드문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기차가 정차하는 40분 동안 호숫가에서 바이칼을 볼 수도 있고, 15km 길이의 세베로무이스크 터널이 빨아들이는 암흑 속에 침잠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르스키에 모래사막. 출처 : 세르게이 포포프차르스키에 모래사막(Чарские пески). 출처 : 세르게이 포포프

곰의 흔적을 따라 가는 산길

코다르 산으로 가는 우리 팀의 노선은 복잡했다. 레프린도 역 – 하다트칸다 고개(2263m) – 베르흐네-사쿠칸스키 고개(2193m), 메드베지 고개 (2174m), HMS 산장 – 차르스키에 모래사막과 노바야 차라 마을로 일정이 이어졌다. 세 명이 져야 할 짐은 80kg이었고 그래서 생긴 멍 자국만 모두 70곳이었다. 14일 만에 150km를 행군해야 했다. 길에는 인적이 전혀 없고 젖은 신발을 벗을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에 맞설 준비가 돼 있었다. 정말로 코다르의 심장부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코다르 산. 출처 : 세르게이 포포프 코다르 산(Кодар). 출처 : 세르게이 포포프

코다르를 가장 잘 표현하는 날은 기분 나쁜 습기가 자욱한 아침, 우리가 다시 길을 떠났던 바로 그날이다. 사위가 짙은 안개로 덮여 있었다. 등산화는 얼어 붙었고 손은 굳어서 감각이 없다. 등산로를 찾을 수 없어 네비게이션(인터넷이 없어도 사용 가능한 네비로 보임. 편집자 주) 이 표시하는 대로 따라 걸었다.

가파른 벼랑을 둘러 나가자 산 사이에 숨어있던 놀랄 만큼 푸른 옥빛 호수가 불쑥  나타났다. 거기서 더 가자 베르흐네-사쿠칸스키 고개에 솟아오른 암벽이 있다. 이곳에 흔적을 남기고 두어 시간 전에 떠난 것으로 보이는 (곰의 배설물을 보고 알았다) 곰이 간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계속 걸었다.

코다르 산. 베르흐네-사쿠칸스키 고개. 출처 : 세르게이 포포프코다르 산(Кодар). 베르흐네-사쿠칸스키 고개(перевал Верхне-Сакуканский). 출처 : 세르게이 포포프

오르막길로 펼쳐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황홀한 광경이라니! 구름이 순식간에 위로 달음박질 한다. 꼭대기에서 우리는 잠시 둘러본다. 한쪽으로는 엄청난 호수와 끝없이 이어지는 얼음 벌판이, 다른 한편으론 길게 이어지는 바위 골짜기가 보인다. 거칠고 험하고 우리에게 무심한 이 모든 것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코다르의 풍경이었다.

코다르 산. 설원. 출처 : 세르게이 포포프코다르 산. 설원. 출처 : 세르게이 포포프

계속 설원을 따라 내려갔다. 설원을 따라가다가 불편하게 굴렀던 것으로 보이는 곰의 흔적을 좇아 걸었다. 이끼로 미끈거리는 바위도 뛰어 넘었다. 이주므루드나야 강 푸른 계곡을 따라 자유롭고 편안하게 걷다가 폭포, 눈잣나무와 버드나무 덤불, 강여울 같은 장벽을 다시 만났다. 오후가 되면 내리쬐는 태양과 빗방울, 안개와 청명함, 절망과 희열, 오르막과 내리막이 뚜렷이 대조되는 코다르에는 어중간한 것이 없다.

갤러리 산장

코다르 산의 HMS 산장. 출처 : 안톤 페트로프코다르 산의 HMS 산장. 출처 : 안톤 페트로프

‘여기 날씨는 항상 이런가?’, ‘이번엔 날씨 운이 나빴어’, ‘산장 내부는 21도까지 올라가지만 밖은 지금 영하 40도, 모두 2월 23일(러시아의 ‘남성의 날’) 축하해요!’ 이런 메모들이 산장의 노트에 쓰여있다. 이 산장은 과거 기상 관측소의 지소가 있던 건물이라 지금은 ‘HMS 산장’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코다르를 여행하는 모든 사람이 머물렀다가 가는 대피소가 됐다.

이곳에는 2층으로 만들어진 침상, 기다란 탁자, 벽난로, 목욕탕에 딸린 옷을 말릴 수 있는 탈의실이 있다. 이것뿐이 아니다. HMS 산장은 나름의 여행 박물관 역할도 한다. 벽에는 지도, 여행객들의 사진, 천 깃발, 공사장용 헬멧, 나무로 만든 부적이 걸려 있고, 수많은 손 글씨가 벽과 천정을 가득 메우고 있다. 우리가 왔다 갔던 작년과 비교했을 때 새롭게 선보인 ‘전시품’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작년 겨울 이곳에 왔던 프랑스 여행객들이 연필로 그린 그림도 있었다. 진정한 영웅들이었다. 그들은 장장 3개월을 여행했다! 그들의 마지막 여정을 장식한 것은 ‘밤(BAM)’ 철도였다. 우리도 도보여행에 대한 메모를 산장에 남긴 뒤 차르스키예 사막으로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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