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따라 대외정책 펼치는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13번째 연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13번째 연설

세르게이 보블료프/ 타스
지난 12월 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연방의회(상원) 연례교서에 담긴 대외정책의 분위기는 조건이 갖춰지면 서방과의 ‘리셋’을 또 한 번 시도한다는 입장을 시사한다.

지난 12월 1일 공개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연례교서는 권력 엘리트와 선출직 관리, 최고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13번째 연설이었는데 최근 들어 확인되는 점은 대외정책 의제보다 국내 문제들이 우선되는 전통이 확실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연단의 메시지는 러시아가 적이 아닌 친구들을 찾고 있음도 큰 소리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새로운 시도와 함께 검증된 외유내강 전술을 담은 푸틴 대통령의 교서는 유화적이면서도 도전적으로 들렸다.

푸틴 연설의 방점은 분명히 세계와의 대화에 있다. 이는 2014년 시작된 러시아와 서방의 험한 관계가 직접 충돌의 우려를 낳으면서 냉전적인 대치 상황에 빠졌기때문에 국익 보호에 전념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접근법이다. 양측의 직접 충돌은, 힐러리 클린턴이 대선에서 승리해 백안관에 입성하고, 그녀가 장담한 대로 시리아에 ‘비행 금지구역’이 설정됐다면 거의 불가피했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외교정책의 이익과 주권을 확실히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러시아는 이익이 침범받는 상황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푸틴 집권기 러시아 사회는 나치 독일과 아돌프 히틀러가 아리안의 인종 우월성 교리를 앞세워 소비에트 러시아의 전멸과 인종몰살을 시도했던 2차 세계대전의 실존적 위협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다음 상황 대비

‘AI-모니터: 러시아-중동’의 편집인이자 러시아 국제문제위원회(RIAC) 전문가인 막심 수치코프 박사는 Russia포커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외교정책 개념’은 2013년과 달리 표현과 내용 면에서 더 거칠다”고 말했다. 위협에 더 집중하고 있고 안보 관련 이슈를 우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전략은 ‘러시아의 안보와 주권, 영토적 통일성을 확보하고’ ‘국제사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중심 가운데 하나로 러시아의 위치를 강화하는 것’을 최우선순위로 간주한다.”

“여기에는 새로울 게 없다. 러시아는 한동안 이러한 패러다임을 축으로 가동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현대 세계에 대한 러시아 엘리트들의 비전이 반영돼 있다. 그들은 세계가 대체로 우호적인 상황이 아니고 갈수록 경쟁이 더 심해진다고 본다. 나아가 러시아가 그런 개념을 전제로 끈기 있게 전진한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러시아 현대사에서 어쩌면 최초로 ‘소프트 파워’라는 용어가 새 외교정책 개념에 적용됐다는 점이 특히 두드러진다. 이 용어도 러시아가 국제정치의 최고 리그에 머무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크렘린이 이 도구를 비판적으로 업데이트 해야할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러시아 엘리트들은 만일에 대비해야 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재발견했다. ‘로엔젤레스 타임스’가 지적했듯이, 러시아는 한 발이면 ‘텍사스나 프랑스’ 크기의 지역을 파괴할 수 있는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사탄 2’에 의지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전쟁 도발이나 으스대기가 아니다. 푸틴은 러시아가 다른 나라들에 적대 행위를 하려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 대외정책 우선순위 변화

3년 전 대외정책 개념에서도 그렇듯이 새 외교정책 개념에서도 최우선 순위로 꼽힌 것은 독립국가연합(CIS)과 유럽연합(EU) 국가들과의 협력 발전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의 관계에 대한 러시아의 접근 방식도 바뀌지 않았다. 새 외교정책 개념은 러시아가 NATO의 확대와 러시아 국경 쪽으로 접근하는 NATO 군사 인프라, 러시아 접경 지역들에서 늘어난 NATO의 군사 활동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한다.

또 러시아는 ‘보호 책임’이라는 개념 속에 수행되는 다른 국가들에 대한 군사 개입에도 반대한다.

2016년 대외정책 개념은 문명 경쟁과 ‘다른 국가들에 자국의 가치 척도를 강요하려는 시도’에 더 주목하고 이를 국제관계의 불안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다.

푸틴의 트럼프 따라 하기는 우연의 일치일까?

푸틴이 간략하게 개괄한 새 대외정책 우선순위들은 러시아의 이익이나 심지어는 견해조차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으며, 신중하게 강조한 일부 노선에서는 협력할 의사가 있다는 점도 명시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는 지난 11월 8일 미국 대선 승리 이후 “우리는 항상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면서 모든 사람, 즉 모든 민족, 모든 국가와 공정하게 거래할 것임을 국제사회에 말하고 싶다. 우리는 적대 행위가 아니라 공통 기반을, 갈등이 아니라 협력을 찾을 것이다”라고 천명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발언을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푸틴의 연설문 작성자들은 트럼프 당선인의 메시지를 표절한 것일까? 그러나 이것은 ‘복사’나 다름 없어 보인다.

놀랄 만한 인기를 여전히 누리고 있는 푸틴이 의회 연설 문구를 트럼프의 입에서 그대로 따온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우리는 누구와도 대립하는 걸 원치 않는다. 우리는 대립이 필요 없다. 우리는 적들을 찾고 있지도 않고 과거에도 결코 찾은 적 없다. 우리는 친구들이 필요하다’는 문장이 그렇다.

크렘린궁과 미국 대통령 당선인 사무실에서 나온 발언가운데 이 부분은 어조와 문체가 일치한다. 이는 좋은 출발점이다.

2016년 4월 27일 워싱턴에서 있었던 첫 주요 대외정책 연설에서 트럼프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오만하다”면서 그 원인을 중동에서 급증한 폭력과 불안에서 찾았다. 나중에 그는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이 이슬람국가(ISIS)를 만드는 바람에 중동과 미국의 안보를 해쳤다”고 비난했다.

어떤 면에서 트럼프는 ‘국내 정책은 우리를 좌절시키기만 할 수 있을 뿐이지만, 대외정책은 우리를 죽일 수도 있다’고 경고했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말에 동의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은 오직 안전하고 예측 가능하고 우호적인 국제 환경에서만 이룰 수 있다는 개념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그의 새 대외정책에서 핵심 요소이자 최대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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