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다 해주실 거야

알렉셰이 요르스
푸틴 대통령의 14번째 ‘국민과의 대화’...전국에서 접수된 질문 3백만 개

국가 지도자와 국민이 질의응답 형식을 통해 정기적으로 소통하는 관행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진행 시간도 몇 시간에 달한다. 러시아에서 이렇게 소통한 지도자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이전까지는 아무도 없었다.

푸틴 대통령의 첫 번째 ‘국민과의 대화’는 2001년 12월에 열렸다. 그 이후로 매년 열리고 있다. 바뀐 게 있다면 이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몇 시간씩 추위에 떨며 서 있지 않아도 되는 따뜻한 봄으로 시기가 옮겨진 것뿐이다. 올해 푸틴 대통령은 3시간 반에 걸쳐 80개의 질문에 답변했다. 하지만 전국에서 접수된 질문의 수는 총 3백만 개가 넘었고 그 대부분은 사전에 전달됐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사람들이 반드시 대통령으로부터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편지를 쓰고, 전화를 걸고 동영상을 찍어 보내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에 참여함으로써 자신도 ‘통치행위’에 어떻게든 참여하고 있다는 위안을 얻는다. 자신의 생각, 의견이 최고 통치자에게 직접 전달되면 그가 문제를 다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푸틴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 관례를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매주 진행된 그의 방송 프로그램 ‘여보세요, 대통령님’에서 빌려 왔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사실 통치자와 국민의 이런 소통 방식은 러시아 역사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그 본질은 특정 시점에 최고 통치자가 국민과 일대일로 소통한다는 데 있다. 러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귀족관리들이 중간에서 최고 권력의 진정한 의도와 정책을 왜곡한다는 인식이 뿌리깊게 존재한다. 이러한 인식에 따르면, 국가 1인자만이 최고 정의를 구현한다.

러시아 역사 초기에 사람들은 억울한 일이 생기면 대공에게, 이후에는 차르에게  ‘잘로브니차(жалобница)’라는 탄원서를 올렸다. 이반 뇌제 치하에서는 중앙집권국가 체제가 형성되면서 좀 더 넓은 의미의 청원 제도가 생겼는데 ‘첼로비트나야(челобитная)’로 불렸다. ‘첼로비트나야’는 오늘날 대통령 공보실이나 행정실 법무부서의 전형(典型)으로 볼 수 있는 특별 부서 ‘청원국(Челобитный приказ)’으로 보내졌다. 이곳에서는 탄원서뿐 아니라 청원서, 고소장 등 차르에게 직접 올리는 다양한 소원 신청서들이 접수됐다. 사실 당시 정부 기관들에 보내는 모든 소원서의 수신자는 황제였다. 오늘날로 치면 농부가 농업부에 보조금을 요청하면서 ‘자애로운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폐하께’라고 시작하는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보면 된다. 국가와 법이 차르 한 사람으로 의인화되어 있었다는 의미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차르는 언제나 자애로운 통치자였다. 그가 ‘그로즈니’였다고 해도 말이다. (‘그로즈니(Грозный)’는 이반 ‘뇌제’를 가리키는 말로 ‘무시무시한’, ‘폭군’을 의미 - Russia포커스)

개인을 위한 ‘첼로비트나야’ 제도는 18세기까지 계속 유지됐다. 하지만 이후에 ‘진정(прошение)’, 또는 ‘청원(петиция)’이라는 이름이 더 흔히 사용됐다. 그러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법과 재판소가 있지만 그 위에, 그리고 이른바 ‘법집행관들’, 즉 도둑질을 일삼는 귀족들이나 부패한 관리들의 위에 최고의 정의,  최고의 재판소가 군림하고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것은 차르(황제)였으며 더 이상 진실을 밝힐 방법이 없을 때 바로 그에게 직접 호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소비에트 권력이 수립된 이후 권력당국에 호소하는 관행이 정착했다. 사람들은 고래로부터 체득한 지혜로 권력과 공개적인 마찰(거리 폭동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법정이라고 할지라도)을 빚느니보다 진정서를 제출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당국도 최선을 다해 이에 동조했다. 그 시절 사람들은 개인 진정서나 집단 진정서 제출을 통해 당국과 어떻게든 많은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제도가 작동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개별 진정 절차를 통해 갖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아파트를 배당받는 문제, 병원 치료를 도와달라거나, 감옥에 갇힌 친척을 석방시켜 달라거나 횡포를 일삼는 직장 상사 징계, 특정 장소의 기강 확립 등 별의별 문제들을 모두 이런 식으로 해결했다. (이러한 문제들은 지금도 생방송 ‘국민과의 대화’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방송 전에 접수된 질문들은 나중에 대통령 행정실이 직접 처리하는데, 모든 질문에 답변서를 발송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들이 스탈린, 흐루쇼프 또는 브레즈네프 서기장에게만 진정서를 쓴 것은 아니었다. 공산당 주당위원회, 인민대표대회 대의원들, 신문사들에도 편지를 보냈다. 특히 신문사에 편지를 보냄으로써 상황을 바꾸고 정의를 회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 언론의 권위는 많이 실추됐다. 다른 많은 사회, 정치제도에 대한 신뢰도 마찬가지다. 오직 대통령의 권위만이 상승하고 있다. 한 인간으로서, 국가 권력으로서 그렇다. 그리고 대통령은 앞으로도 사회제도와 국가제도의 비효율성을 보상해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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