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폴리트콥스카야 사망 10주기... ‘피살 사건은 결코 해결되지 않았다’

모스크바에서는 ‘의뢰자는 밝혀지지 않았다’라는 슬로건 아래 그녀를 기리는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는 ‘의뢰자는 밝혀지지 않았다’라는 슬로건 아래 그녀를 기리는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AP
10년 전 피살된 안나 폴리트콥스카야의 추모식이 모스크바에서 열리고 있다. 그녀는 러시아 탐사 저널리즘의 상징이 됐다. 당국은 그녀의 피살 사건이 해결됐다고 생각지만, 동료들은 흐지부지 된 것으로 생각한다.

‘노바야 가제타’ 신문의 기자 안나 폴리트콥스카야(2006년 10월 7일 피살됨)가 사망한 날부터 10년이 지났다. 모스크바에서는 ‘의뢰자는 밝혀지지 않았다’라는 슬로건 아래 그녀를 기리는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노바야 가제타 신문의 평론가로 탐사보도가 전문인 그녀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근거리 총격을 받았다. 폴리트콥스카야가 집중한 주제는 체첸 공화국, 그곳의 고문 사태, 인권 침해, 범죄였다. 그녀는 그 뒤에는 공화국 최고 지도부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폴리트콥스카야의 동료들은 자신들의 사이트에 소위 ‘피켓영상’(영상에서 그들은 주요 사실, 살해 수사의 중요한 단계와 수사에 대한 질문이 담긴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을 올렸다. 편집부 건물에는 그녀의 포스터가 걸렸고, 부편집장 세르게이 소콜로프는 신문사 사이트에서 왜 그와 그의 동료들은 살해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썼다.

출처: Youtube

‘체첸의 흔적’이 아니라 런던의 흔적

“기자들은 우리, ‘노바야 가제타’의 직원들이 이 날, 2016년 10월 7일에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묻는다. 연약하지만 대담하고, 아름답고 강한 여성인 안나 폴리트콥스카야가 자기 집 문턱에서 근거리 총격을 받고 살해된 지 10년이 지나고 나서 말이다. 내 대답은 ‘분노’다.” 세르게이 소콜로프의 칼럼은 이렇게 시작된다. 칼럼에서 그는 범죄가 해결됐다는 대검찰청과 수사위원회의 발표를 그와 동료들이 믿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범죄 하수인들이 유죄 선고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는 정치적 살해 사건이 해결됐다고 볼 수 없다. 그럴 수는 없다. 아직 의뢰자가 처벌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콜로프는 이렇게 썼다.

그는 살해 후 며칠 만에 검찰총장이 한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대부’였다가 ‘적 1호’가 된, 런던으로 망명해 살고 있던 신흥 부호 보리스 베레좁스키를 의뢰자로 사건에 포함시켰던 점을 지적한다. 수사위원회가 ‘의뢰자는 외국에서 은둔하고 있는 신흥부호 중 하나인 러시아의 적’이라고 판단한 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 이후 내내 노바야 가제타는 자체탐사를 통해 이를 반박하기 위해 노력했다. 살해가 체첸 공화국 실로비키의 손에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용의자들에 대한 1심은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로 끝났다. 그러나 2심(2013년)에서 법원은 현 내무부 직원들과 연방보안국 FSB 출신자들이 살해에 연루됐음을 공식 인정했다. 총 6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이들은 살해 조직자들과 실행자들이었다.

의뢰자 수사는 단 1명의 수사관이 맡게됐다. 수사관은 혼자 러시아 포브스 편집장 폴 흘레브니코프의 살해 사건 수사를 계속했다. 그 후 그는 은퇴했고 수사는 다른 직원들 간에 분배됐는데, 수사관 수준을 장군급에서 소령급으로 격하시켰다(러시아 경찰은 군과 같은 계급 사용). 소콜로프는 “더 이상 수사와 관련해 아무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의뢰자는 한시름 놓고 또 다른 누군가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릴 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 그러지 않았다면”이라고 글을 맺었다.

‘그녀는 체첸 사람들이 생각하기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썼다’

어떤 이들은 그녀의 피살을 ‘선물’이라 했고, 다른 이들은 ‘도발’이라 했다. 안나 폴리트콥스카야는 체첸 공화국 수장 람잔 카디로프 대통령의 생일 이틀 후, 그리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생일 날에 살해당했다. 이때부터 10월 7일이면 언론에서는 러시아 대통령과 관계된 사진 갤러리가 피살된 폴리트콥스카야를 기리는 갤러리와 나란히 등장하게 됐고, 그녀의 죽음은 러시아의 최근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적 살해 중 하나가 됐다.

그녀는 체첸 공화국의 많은 이가 생각하기조차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고 썼다. 안나 폴리트콥스카야의 활동은 이러한 말로 자주 특징 지워진다.

그녀는 캅카스 전사나 테러리스트들과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2002년 모스크바에서 두롭카 연극 센터를 점령한 테러리스트들은 폴리트콥스카야를 협상을 해 볼 여지가 있는 사람 중 하나로 꼽았다. 2004년 9월 1일 테러리스트들이 베슬란 초등학교를 점령했을 때도 폴리트콥스카야는 협상을 하려고 비행기를 탔었다. 그러나 비행기 안에서 심각한 식중독을 앓았는데 동료들은 이를 음모라고 의심한다.

폴리트콥스카야가 노바야 가제타에 마지막으로 쓴 기사는 연방 무력기관 편에서 싸우는 체첸 부대들의 활동에 관한 내용으로 제목은 ‘징벌 공모(Карательный сговор)’였다. 가까운 시일 내에 발간될 신문에는 체첸 공화국의 고문 및 당시 체첸 총리였던 람잔 카디로프의 납치 가담에 관한 그녀의 보도가 실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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