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지도자 보리스 넴초프, 크렘린 앞에서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

(사진제공=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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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야권 지도자 중 한 명인 보리스 넴초프가 27일 밤 크렘린 부근에서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수사당국은 청부사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미 이 사건을 "계획된 선동(намеренная провокация)"이라고 표현했다. 보리스 넴초프의 동료들은 그가 러시아 지도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되어 있다는 증거를 담은 보고서를 준비 중이었다고 지적하면서 그의 죽음을 "정치적 살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7일 밤(현지시간) 모스크바의 중심부 크렘린 부근 '볼쇼이모스크보레츠키' 다리(모스크바강대교) 위에서 자유민주계열 '러시아공화당-국민자유당' 공동대표이자 옐친 전 대통령 집권기 제1부총리를 역임한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가 괴한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수사기관 발표에 따르면, 붉은광장 쪽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친 넴초프가 키예프에서 온 23세의 여성과 함께 다리 위를 걷고 있을 때 지나가던 흰색 외제차에서 그를 향해 조준 사격을 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를 향해 7발의 총탄이 발사됐으며, 넴초프는 그중 4발을 등에 맞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동행한 여성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아직까지 범인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것이 없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혐의자나 체포된 자도 아직 없다. 현장 목격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증언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연방수사위원회 모스크바지부 대변인 율리야 이바노바는 "청부살인을 포함하여 모든 가능한 원인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넴초프는 죽기 얼마 전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적극적인 반정부 활동을 펼쳐왔으며, 3월 1일로 예정된 대규모 반정부-반위기 집회 '베스나(Весна, 봄)'를 조직한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살해당하기 며칠 전 넴초프는 러시아 상하원 의원 133명의 탈세 사실을 폭로하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한편 그의 야권 동료들은 그가 러시아 지도부의 돈바스 러시아군 지휘 사실을 증명하는 보고서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부살인 가능성 높다"

넴초프 살해 소식을 접한 푸틴 대통령은 이번 사건이 "청부살인의 가능성이 높으며 십중팔구 선동적 목적을 가진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공보실장이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은 넴초프 살해사건 수사과정을 자신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페스코프 공보실장은 '코메르산트-FM'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그(넴초프)는 러시아 현 지도부와 푸틴 대통령에게 어떠한 정치적 위협의 대상도 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푸틴 대통령과 현 정부 전체의 인기, 지지율 등을 보리스 넴초프와 비교한다면, 넴초프는 보통 시민 수준을 조금 넘어서는 정도"라고 덧붙였다.

보리스 넴초프의 변호사 바딤 프로호로프은 몇 개월 전 SNS 상에서 넴초프에 대한 살해 협박이 있었지만, 그것이 이번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프로호로프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정치적 살인으로 확신한다면서, 범인은 최근 우크라이나 교전지역에서 돌아온 이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넴초프는 우크라이나를 자주 드나들었으며, 우크라이나 정부와도 접촉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망 전 넴초프는 야로슬라블 주의회 의원도 겸임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료 의원들과 러시아공화당-국민자유당 소속 동료 정치인들은 이번 살인이 지방의회에서의 그의 활동과는 상관이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넴초프와 함께 러시아공화당-국민자유당 공동대표를 맡아온 미하일 카시야노프 전 총리는 자신의 동료이자 친구인 넴초프의 죽음에 대해 "이것은 복수극이다. (...) 다양한 단체가 그를 탄압해왔으며, 더러운 모함을 뒤집어 씌웠다. 그는 러시아를 인권이 가장 존중받는 자유국가로 만들기 위해 투쟁한 사람이다. 야권 지도자가 크렘린 앞에서 버젓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진실을 위해 죽었다"고 '코메르산트'지에 밝혔다.

야권은 이미 3월 1일 열릴 예정이던 반정부 집회 장소를 모스크바 교외 마리노에서 모스크바 시 중심가로 옮기고 집회의 성격을 반정부-반위기에서 추모 집회로 변경하는 문제를 놓고 모스크바시당국과 협의를 시작했다.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석유회사 '유코스' 전 회장도 이번 사건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다. "보리스의 죽음은 나와 내 가족의 슬픔이다. 우리는 모두 그를 좋아했다. 저돌적이었지만,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살해 장소에 꽃과 초를 가져다 놓고 있다.

보리스 넴초프는 1990년대~2000년대 러시아 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정치인이다. 1991년부터 1997년까지 니즈니노브고로드 주 제1주지사, 그후 연방정부로 자리를 옮겨 연료에너지부 장관(1997년)을 거쳐 제1부총리 자리에 올랐다. 국가독점기업과 정경유착에 대한 비판으로 유명했다. 한때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후계자로 기대를 한몸에 받기도 했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국가두마(하원) 의원으로 활동했고, 그후 재야로 나가 강한 반정부 활동을 해왔다. 2004년에 넴초프와 '우파세력연합'은 우크라이나 대선후보 빅토르 유셴코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넴초프는 유셴코의 임시자문관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 이후 다양한 야권세력을 형성하고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조직해왔다. 2011년, 2012년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일련의 집회도 그가 조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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