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과거 청산에 나선 러시아와 미국

알렉셰이 요르스
지난 5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일본 방문이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방일 기간 중 히로시마를 방문함으로써 2차 대전 피폭지를 방문한 첫 미국 대통령이 됐다. 한편 오는 12월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할 계획이다.

중국 ‘호랑이’ 견제

동북아시아 지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지역이다. 그리고 한·중·일 3국은 15조 달러 (약 1경7000조 원)규모로 평가되고 있는 경제통합체 출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중이다. 하지만 그러한 경제통합체의 탄생은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8년의 임기 중에 내건 가장 중요한 이니셔티브라 할 수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구축에 심각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중국과 러시아의 세력 확대를 견제하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참석 및 공식 방일은 미국의 방문 자체 요청에도 불구하고 최근 러시아 소치를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개인적 친분을 강화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러시아에겐 독자적인 경제적·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있다. 그것은 많은 점에서 미국의 이해와 엇갈리지만, 중국의 확장주의 견제라는 측면에선 미국과 일치한다. 이와 관련 러시아 외교전문 잡지 ‘러시아 인 글로벌 어페어스(Russia in Global Affairs)’의 표도르 루키야노프 편집장은 “러시아와 일본이 역내 최강대국인 중국의 성장 견제라는 공동의 관심사를 갖고 있어 양국 관계가 호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아사히 신문 또한 “러·일 양국 정상이 더 자주 만나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중국의 영향력이 급속하게 확대되고 미사일 및 핵 실험 등 북한의 도발이 끊이지 않는 동북아 지역의 안정을 위해서도 이는 필요하다”며 유사한 견해를 피력했다.

중국 요인은 북한의 미사일·핵 위협 해소라는 측면에서 그 정도는 다르지만 러·미 양국에 모두 중요하다. 미국은 이에 일본, 한국과 공동으로 북한의 위협에 맞설 공동 방어체계 구축을 꾀하고 있고, 러시아는 대부분 실패하면서도 끊이지 않는 북한의 미사일 실험 도발을 관망하는 입장이지만 어쨌든 불편한 심정인 것은 틀림없다.

영토분쟁으로 꼬인 타래 어떻게 풀까

지난 5월 초 아베 일본 총리가 소치의 러시아 대통령 관저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났다. 정상회담을 마친 아베 총리의 표정은 상당히 밝았다. 그는 특히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싶다”는 희망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포인트는 푸틴 대통령의 일본 답방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대통령 보좌관의 말에 따르면 답방은 금년 내로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 시기는 12월이 유력하다. 이와 관련 러시아 언론에서는 러·일 양국이 양국간 영토분쟁 대상인 쿠릴 열도 4개 섬(이트루프, 쿠나시르, 시코탄, 하보마이) 모두를 또는 적어도 그중 2개 섬을 일본에 반환하기로 합의를 한 것이 아니냐는 대담한 추측성 보도들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방러 후 몇 주만에 푸틴 대통령은 이러한 추측을 전면 부인했다.  러시아-아세안(ASEAN)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은 “러·일 관계, 그리고 우리가 뭔가를 더 비싼 값에 팔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에 대한 답은 이렇다. 우리는 아무 것도 팔 생각이 없다. 러시아는 많은 것을 사들일 의향이 있지만, 그 어떤 것도 팔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러시아 언론인 표트르 아코포프는 “일본의 새로운 북방영토 정책의 핵심을 이해하려면 지정학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치 러·일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상호 수용 가능한 영토문제 해법을 찾기 위해 과거의 이데올로기가 아닌 새로운 접근방법에 기초하여 대화를 계속하기로 합의했다. 새로운 접근방법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일본 지도부는 ‘영토 확장주의자’라는 명성을 갖고 있는 푸틴 대통령이 결코 북방영토를 반환하지 않을 것임을 깨달고 양국 관계와 영토문제를 분리하기로 결단을 내린 듯하다.

이러한 정황을 고려할 때 올 연말 푸틴 대통령의 일본 방문 때 양국은 광범위한 경제협력 문제 논의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를 위한 준비를 해왔다. 러시아 극동 지역 전체와 관련된 여덟 개 조항의 경협 계획이 그것이다.

일본은 러시아 극동 지역의 주택·교량·병원·공항·항만 건설, 에너지 협력 발전, 토지 개량, 중소기업 간 협력 강화 같은 사업을 러시아에 제안해 왔다.

이러한 계획이 채택된다면, 양국 간 영토분쟁의 대상이자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는 남쿠릴 열도 4개 섬에도 그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이는 결국 정치적 의지와 참신한 접근방법만 있다면 과거에서 물려받은 해묵은 문제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근 히로시마 방문으로 이를 증명했다. 이제 푸틴 대통령의 차례다.

 

본 기사는 Russia Direct 기사를 축약·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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