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크림 여행을 준비해야 이유 열 가지

흑해의 진주 크림반도의 인공·자연 장관 열 곳을 Russia포커스에서 소개한다. 이 글을 읽고나면 여행배낭을 챙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시리라.

크림은 보물들로 가득 찬 반도이다. 그리스와 오스만, 로마, 스키타이, 기타 많은 위대한 동서양 문명이 크림 반도를 놓고 싸웠고, 이곳에 살며 도시를 건설하고 예술 작품들을 창조했다. 그러나 사람 손으로 만든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들조차도 크림 반도의 자연이 빚어 놓은 예술 작품들과는 견줄 수 없다. 많은 사람이 크림 반도를 '지상의 낙원'이라고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크림 반도가 위치한 북위 45도는 지구의 황금분할선으로 지구에서 기후 조건이 가장 좋은 곳 가운데 한 곳이다.

이유 1: 푸른 만(Голубой залив)

푸른 만
푸른 만 (사진제공=로리/레기언 메디아)

‘푸른 만(Голубой залив)’ 마을은 대도시 얄타에서 20km 떨어진 크림 반도 남쪽 연안에 있다. 마을은 사방에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북쪽으로는 크림산맥, 동쪽으로는 특징적인 윤곽선 때문에 고양이로 불리는 코시카(Кошка)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 기후는 건조하고 따뜻하다.

마을의 역사는 3천 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크림 반도 남부에서 ‘악마의 계단’(Чертова лестница) 고개를 거쳐 서부로 이어지는 길이 바로 이곳을 통과했다. ‘악마의 계단’ 외에도 레멘스카야 계곡과 코시카 산, 아이-페트리 산괴(массив Ай-Петри), ‘백조의 날개(Лебединое крыло)’ 절벽, 디바(Дива)와 파네아(Панеа) 절벽도 둘러볼 만하다.

이유 2: 신세계(Новый Свет)

신세계
'신세계' 마을 (사진제공=Getty Images)

'신세계(Новый Свет)' 마을은 19세기 말 러시아 포도주 양조법의 창시자인 레프 골리친(Лев Голицин) 공작 덕분에 세워졌다. 골리친 공작은 이곳에 발포성 포도주(샴페인) 생산 공장을 설립했다. 마을의 이름은 원래 파라다이스(천국)였는데,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이곳을 방문한 이후 황제의 뜻에 따라 '신세계'로 바뀌었다.

마을에는 골리친 공작의 궁전 두 채와 보스포러스 요새 유적이 보존돼 있다. 포도주 공장도 가동 중이다. 덕분에 '신세계' 마을은 수익성이 꽤 좋은 포도주 관광 중심지 가운데 한 곳으로 탈바꿈했다. 이 밖에도 마을 주변 지역은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노간주 고목 숲과 석굴을 낀 그림 같은 작은 만 덕분이다. 가장 주목할 만한 석굴 가운데 하나는 수백 년 전 흑해를 무대로 활동하던 해적들이 은신처로 애용했던 양 끝이 맞뚫린 '스크보즈니(Сквозный)' 석굴이다. 이 석굴은 고대 그리스인과 무역을 하던 시절부터 해적선들이 정박하곤 했던 '도적(Разбойничья)' 만까지 이어져 있다.

이유 3: 대리석 동굴(Мраморная пещера)

대리석 동굴
대리석 동굴 (사진제공=Getty Images)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이 동굴에는 홀과 갤러리가 많다. 입구는 해수면보다 높은 920미터 높이에 있다. 동굴은 1989년 관광객 방문을 위해 개방됐고 필요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관광 코스 길이는 1.5km로 종유석과 석순으로 가득 찬 '동화(Сказки)' 갤러리에서 시작된다. '페레스트로이카' 홀(유럽에서 가장 큰 홀 중 하나)에서는 암벽 폭포와 종유석 기둥, 산호 꽃들을 볼 수 있다. 동굴 하부 갤러리는 천연 광물학 박물관이다.

이유 4: 성모승천수도원(Успенский монастырь)과 추푸트-칼레 동굴 도시(Чуфут-Кале)

성모승천수도원 (사진제공=로리/레기언 메디아)
성모승천수도원 (사진제공=로리/레기언 메디아)

6세기에 세워진 추푸트-칼레 동굴 도시는 바흐치사라이 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서부 지역에는 동굴을 파서 지은 주택과 모스크(회교 사원) 유적이 많이 있다. 몽골·타타르의 칸(汗) 토흐타미시의 딸이 묻혀 있는 능묘도 여기에 있다. 카라이파 유대교 사원 두 곳과 저택 두 채로 이뤄진 거주용 장원 한 곳도 잘 보존돼 있다.

지하 80미터의 갤러리와 지하 30미터의 우물, 고대 카라이파 유대교도 묘지, 신성한 참나무 숲도 이곳에 있다. 7세기에 세워져 크림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 가운데 하나인 성모승천수도원(Свято-Успенский монастырь)은 추푸트-칼레 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수도원은 암벽을 파서 지은 교회와 예배당 단지로 이뤄져 있다.

이유 5: 제노바 요새(Генуэзская крепость)

제노바 요새
제노바 요새 (사진제공=Getty Images)

30헥타르 면적의 이 요새는 크림 내 제노바의 솔다이아(Soldaia) 식민지를 방어하기 위해 14세기에 건설됐다. 요새는 흑해 수다크(솔다이아) 만 부근 원뿔 모양의 산호초 위에 있다. 12세기 후반에는 베네치아와 피사, 제노바인 등 비잔틴 국가 사절들이 수다크 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러시아와 폴로베츠, 중앙아시아 상인들과 활발한 무역을 시작했다. 보스포러스(현 케르치)에서 케르소네소스(현 세바스토폴의 신시가지)까지 해안 전역을 점차 점령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 제노바인이었다. 카파(현 페오도시야)는 크림 내 제노바 식민지의 수도가 되었으며, 수다크는 군사기지가 되었다. 이들 도시는 제노바 요새 축조와 때맞춰 건설되기 시작했다.

현존하는 수다크 요새 자리에는 그보다 더 오래된 6세기의 방어용 구조물들이 있었다. 이들은 제노바인들에 의해 완공되어 단일 요새로 통합되었다.

이유 6: 타르한쿠트(Тарханкут)와 수중 박물관 '지도자들의 애비뉴(Аллея вождей)'

수중 박물관 ‘지도자들의 애비뉴 (사진제공=로리/레기언 메디아)
수중 박물관 '지도자들의 애비뉴 (사진제공=로리/레기언 메디아)

크림의 서쪽 끝자락 타르한쿠트 반도에서는 이오니아 그리스인들이 세운 칼로스 리멘(Калос Лимен) 폴리스의 유적과 스키타이 무덤들, 2세기의 등대를 볼 수 있다. 이곳 반도에 강은 없지만, 해수 하구가 몇 곳 있다. 가장 큰 하구는 도누즐라프 만(Залив Донузлав)으로 흑해 지역에서 가장 큰 호수이다.

또한 타르한쿠트 반도에는 유명한 자연 유적 '잔굴(Джангуль)' 해안 사면도 있다. 이곳에서는 기암절벽과 붕괴사면, 퇴적토양을 많이 볼 수 있다. 타르한쿠트 반도 해안 전체는 다이빙과 카이트서핑, 윈드서핑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이곳에는 또 해안가에서 100미터 떨어져 있는 수심 12미터의 흑해 해저에 수중 박물관 '지도자들의 애비뉴(Аллея вождей)'가 조성돼 있다. 용기를 내 잠수하면 레닌과 마르크스, 가가린 등 소련 유명 정치인과 예술가, 영웅들의 동상이나 흉상들이 물 속에 가라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잠수 장비를 대여하고 교육을 받기만 하면 수중 박물관에 들어가 볼 수 있다. 박물관은 올레뇹카 마을 부근에 있다.

이유 7: 케르소네소스 타우리카(Херсонес Таврический)

케르소네소스 타우리카
케르소네소스 타우리카 (사진제공=Wikipedia, Dmottl)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고대 도시 '케르소네소스 타우리카'(크림 반도의 그리스어 고칭, 편집자 주)는 유네스코 세계 100대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로 등재돼 있다. 이곳에서는 고대 거리를 따라 산보할 수 있고 오래된 경보종과 중세 사원의 하얀 돌 기둥들을 볼 수 있다. 또 고대 원형극장의 유적을 거닐어 볼 수도 있다. 케르소네소스는 BC 6세기 고대 그리스인들에 의해 세워졌고, AD 5세기에 비잔틴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케르소네소스는 2천 년 이상 흑해 지역의 거대한 정치·문화 중심지였다. 한편 케르소네소스에서는 로마 교황 마르티누스와 폐위된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2세 등 비잔틴 통치자들의 정적들이 유형을 살기도 했다.

이유 8: 케르치(Керчь)

케르치
케르치 (사진제공=Getty Images)

케르치(과거에는 보스포러스로 불렸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 도시 가운데 하나로 케르치 해협 연안에 있다. BC 5세기 케르치의 자리에는 고대 소도시 판티카페이가 세워졌다. 여기서 멀리 않은 곳에서는 BC 6세기 그리스인들이 세운 고대 도시 미르메키의 유적지를 볼 수 있다. 도시 중심부에는 AD 1세기 보스포러스 회화의 고대 유적인 데메테르의 토굴이 있으며, 케르치 부근에는 그리스 폴리스들에서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의 고대 사원에 이르기까지 20개 이상의 고대 유적이 있다. 이 밖에도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불가나크 뻘밭(크림의 화산 계곡)이 펼쳐져 있다.

이유 9: 바흐치사라이(Бахчисарай)

바흐치사라이 (사진제공=로리/레기언 메디아)
바흐치사라이 (사진제공=로리/레기언 메디아)

바흐치사라이는 크림 타타르어로 '정원 궁전'을 의미한다. 크림 한국(汗國)의 수도였던 바흐치사라이는 크림 최고의 관광 명소 중 한 곳이다. 바흐치사라이의 주요 역사 유적으로는 크림의 칸(汗)들이 살던 궁전인 한사라이(Хансарай)를 들 수 있다. 한사라이는 세계에서 유일한 크림 타타르족 궁전건축의 표본이다. 궁전 단지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는 9세기의 위대한 칸 모스크와 15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리-규젤(Сары-Гюзель) 목욕탕 건물을 들 수 있다. 한사라이에 있는 눈물의 분수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낭만적 서사시 "바흐치사라이의 분수"(1822)에서 상찬된 바 있다. 이 밖에도 바흐치사라이에서는 칸들의 묘지와 크림 기레이 칸의 사랑하는 아내가 묻혀 있는 18세기 능묘, 매의 탑(Соколиная башня), 미술박물관도 볼 만하다.

이유 10: 발라클라바(Балаклава)

발라클라바 (사진제공=로리/레기언 메디아)
발라클라바 (사진제공=로리/레기언 메디아)

전설에 따르면, 19세기 중반 크림 전쟁 당시 영국군 병사들이 크림 반도의 도시 발라클라바 근처에서 추위로 심하게 떨다가 발라클라바라는 이름의 뜨개질 모자(눈과 입을 제외한 머리와 얼굴을 완전히 덮어 쓰는 털실로 뜬 방한모자로 주로 등산자와 스키어, 군인 등이 씀, 편집자 주)를 고안해냈다고 한다. 발라클라바는 터키어로 '물고기 자루' 또는 '낚시하기 좋은 날씨'를 의미한다. 이곳의 정착촌은 이미 AD 1세기에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호머는 "오디세이"에서 이 정착촌을 라모스라고 부르며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다. 이 그리스인 마을은 14세기에 제노바인들의 영향권 아래 놓이고, 그들은 이곳에 쳄발로 요새를 짓는다. 요새의 그림 같은 유적들은 오늘날까지도 보존되어 있다. 도시는 그 후 1세기 만에 터키인들에 의해 점령당했고, 그로부터 3세기 후에는 자포로지예 카자크인들에게 점령됐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갈 무렵 발라클라바는 러시아 제국의 인기 휴양지로 변했고, 유수포프와 골리친 공작은 이곳에 자신들의 영지를 세웠다. 소련 시절 발라클라바의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점으로는 이곳에 소련 최초의 다이빙 코스가 개설되었을 뿐 아니라 잠수함 수리와 보급용 지하공장도 건설됐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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