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학교에서 최하점을 주지 않는 이유는?

표도르 레셰트니코프 ‘또 2점이야’ 복제본. 캔버스, 유화. 국립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사진제공=발라바노프/리아 노보스티)

표도르 레셰트니코프 ‘또 2점이야’ 복제본. 캔버스, 유화. 국립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사진제공=발라바노프/리아 노보스티)

러시아의 시콜라(초중고 과정)에서는 벌써 100년 넘게 5단계 채점법이라는 성적 평가방식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2점, 3점, 4점 및 5점 등 4개 등급만 부과한다. 1점은 어디로 간 걸까?

소련의 화가 표도르 레셰트니코프의 작품 중에는 '또 2점이야(Опять двойка)'(1952년 作)라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에는 학교에서 또 나쁜 점수를 받아 온 소년이 묘사돼 있다. 우등생인 누나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엄마는 암담한 표정을 하고 있으며, 남동생은 히히덕거리고 있고 오직 개만 기쁘게 소년을 반긴다. 가장 낮은 점수로 1점이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2점은 최하점이 아니다. 그런데 왜 식구들은 가장 나쁜 점수를 받기라도 한 듯 이 불행한 소년을 바라보는 걸까?

17세기 러시아 교사들은 학생들을 조건에 따라 세 등급으로 나눴다. 첫 번째 등급에는 훌륭한 성적의 학생들이 들어갔다('학업성적이 괜찮은, 믿음직한, 좋은, 성실한, 훌륭한, 칭찬할 만한'). 두 번째 등급에는 중간 성적의 학생들이('중간의, 평균적인, 나쁘지 않은'), 세 번째 등급에는 평균 이하의 학생들('약한, 형편없는, 매우 나쁜, 가망 없는, 게으른')이 들어갔다. 당시 학교는 학년이 나눠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등급들은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의 위치만 표시하는 것이었다.

농촌 학교에서는 19세기 중반까지 이런 시스템이 유지됐다. 톨스토이 작품의 주인공 중 학교에 가는 것이 꿈인 필리포크라는 소년이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학교에 가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날 집에 할머니와 둘이 남게 됐을 때 소년이 아버지의 모자를 눌러쓰고 달려간 곳이 바로 그런 학교였다.

0점, 1점 그리고 회초리

학생의 등급을 나누는 시스템이 아니라 성적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최초의 시도는 19세기 초에 이뤄졌다. 당시에는 5단계 채점법 외에도 추가로 징벌적 점수인 '0점'이 있었다. 숙제를 한 번 안 하면 '0점'을 받을 수 있었고, 두 번 안 하면 체벌이 가해질 수 있었는데, 그것도 같은 반 학생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받는 체벌이었다. 교사들이 좋아하는 체벌 도구는 회초리였고 주로 손과 어깨를 때렸다. 1864년 체벌이 금지되면서 '0점'도 사라졌다. 그리고 '징벌적 점수'는 '1점'이 됐는데, 숫자 모양이 막대기를 닮았다는 이유로 '말뚝(кол)'이라 부르게 됐다.

소련 시절 정부는 5단계 채점제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 새 제도는 아무리 해도 완전히 안착하지 못했다. 1940년대 말까지 학생들은 이런 저런 장난, 반항을 이유로 1점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점수는 흔히 교사가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주의를 주려는 경우에 부여됐다. 그러나 벌써 1950년대쯤 해서 거의 사용되지 않게 됐다.

"나는 1944년에 시콜라에 입학했는데 숙제를 안 하면 1점을 받았다. 우리는 1점을 '말뚝'이라고 하지 않았다. 훨씬 모욕적으로 들리기 때문이었다. 나는 1점을 받은 적이 없지만, 1학년 때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남자아이가 받아쓰기 시간에 내 것을 베꼈던 일을 기억한다. 나는 5점을 받았고, 그 애는 베꼈다는 이유로 1점을 받았다. 우리가 졸업할 때쯤에는 내가 이미 1점을 주는 선생님들은 없었다." 필자의 지인의 할머니 클라브디야 이바노브나(77세)가 말한다.

1점은 어디로 간 걸까?

'1점'의 '징벌적' 성격은 왜 대학에서 이 점수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는지를 말해준다. 대학생이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 그 학생은 십중팔구 제적 처리를 받았다.

교육역사가들도 최하점을 주지 않으려는 경향에 대해 언급한다. 이들은 러시아 시콜라에서 4단계 채점제를 선호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 경우 최하점인 1점은 주로 징벌적 성격을 띠거나 아는 게 전혀 없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지식은 탁월(отлично), 우수(хорошо), 양호(удовлетворительно), 미흡(неудовлетворительно)한 것이라 간주되어 왔다. 1990년대에 들어와 시콜라들은 스스로 원하는 성적평가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모스크바에는 알파벳등급으로 평가하는 학교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암묵의 규칙은 존재한다. 성적 평가에 있어 5단계 채점방식에서 1점을 사용하지 않듯이 최하점은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 모스크바 시콜라 저학년부 책임자인 예카테리나 비시네베츠카야가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제 러시아에는 교사가 어떤 채점방식으로든 학생의 일일 성취도를 평가하도록 강제하는 규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교사가 학생에게 1점을 주기를 싫어하는 현상은 무엇보다 심리적인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1점'을 종종 '말뚝'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1점이 쓰이지 않게 된 주 이유인 듯 하다. 문제는 '말뚝'이라는 단어가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연상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인데, 그래서 이 점수는 거의 전혀 쓰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말뚝'이란 몽둥이, 날카롭게 깎인 막대라는 뜻인데다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숙어에서 자주 사용되기 때문이다. "아무렇게나 튀어나와 있는 물체를 두고 러시아어로 '말뚝처럼 서 있다(стоит колом)'고 한다. 또한 삼키기 어려운 맛없는 음식을 두고도 그렇게 말한다." 모스크바의 한 시콜라 고등부 국어 교사로 일하고 있는 타티야나 쿠친스카야가 말한다. "학생에게 '말뚝'을 주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럴 때면 '말뚝에 꽂아죽이다(посадить на кол)'라는 표현이 머리에 맴돈다. 옛날에 범죄자를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처형했기 때문이다." 쿠친스카야 선생님은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어떤 성적평가방식을 사용하느냐는 학교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아직도 일부 학교에서는 1점을 받은 학생들이 종종 있다고 한다. 모스크바의 한 시콜라 학생은 Russia 포커스의 질문에 농담처럼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런 학교가 있으면 정말 선생님을 잘 만난 거죠!"

한편 '말뚝'을 기피하는 전반적인 경향은 단일국가시험(ЕГЭ) 평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국가가 주관하는 이 시험은 시콜라 졸업시험인 동시에 대학 입학시험이다. 2001년에 처음 시험적으로 시행됐으며, 그 후 해마다 이 시험을 의무제로 도입하는 지방이 늘어났다. 단일국가시험은 100점 만점제 평가방법을 사용하는데, 이 시험에서도 공부를 등한시한 학생이 '말뚝'을 피할 수 있는 모양이다. 통계상 전국 최하점은 20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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