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이중 국적자를 찾아라 … 2개월내 신고 안하면 벌금·처벌

러시아에서는 이중국적이 가능하다. 단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왼쪽은 러시아 여권, 오른쪽은 미국 여권 (사진제공=PhotoXpress)

러시아에서는 이중국적이 가능하다. 단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왼쪽은 러시아 여권, 오른쪽은 미국 여권 (사진제공=PhotoXpress)

크세니야 바탈로바는 모스크바 시민이지만 남편은 미국인이어서 동시에 미국 국적자다. 이른바 이중국적자다. 지난 8월 4일 러시아에선 크세니야와 같은 이중국적자를 겨냥한 '이중 국적 등록법'이 발효됐다.

이 법에 따라 러시아 정부는 지금 해외 국적 소지자의 명단을 만들고 있다. 2개 이상의 국적 보유자는 직접 신고해야 한다. 그런데 신법 발효 몇 주가 지난 지금 사람들은 신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고는 우체국이나 이민청을 방문해 할 수 있지만 그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크세니아는 "필요한 서류와 사본을 다 만들어 벌써 세 번이나 우체국에 다녀왔다. 처음 간 우체국의 담당 부서는 지난 며칠간 하필 오늘 더는 받지 않는다면서 왜 그런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다음에 방문한 부서에서는 가져간 신고서가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러시아 연방 이민청 사이트에서 뽑아 간 것인데도 말이다. 세 번째 부서에서는 신고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점심시간까지 못 맞출 것 같다며 서류를 받지도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이 법은 지난 3월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연방회의(상원)의 합의에 따른 것이다. 당시 안드레이 클리샤스 러시아 상원 헌법위원장은 "러시아 국민이 이중국적 여부를 신고하고 이를 숨길 시 처벌을 받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러시아에 누가 살고 있고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알아야 하고 또 알 권리가 있다"며 "다만 너무 빠르게 밀어붙이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 법안은 클리샤스 위원장 주도로 마련됐다가 중간에 전권이 '외국엔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폴로늄 독살 사건 용의자'로 알려진 안드레이 루고보이 안보위원장에게 넘어갔다. 둘은 논쟁을 벌였다. 클리샤스 위원장은 "이중국적 문제는 행정 책임과 관련된 것"이라고 했고, 루고보이는 "형사법으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루고보이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해서 러시아 국민은 이중국적 취득 후 2개월 안에 신고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500~1000루블(약 1만4000~2만8000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 의도적으로 숨기면 20만 루블(약 564만원)의 벌금 또는 사회봉사 400시간을 선고받는다. 자녀의 이중국적도 신고해야 한다.

러시아 헌법은 러시아 국민의 이중국적을 허용하지만 그래도 국제 조약에 규정된 경우 외에는 러시아 국민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가 그같은 국제 조약을 체결한 나라는 타지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두나라 뿐이다.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루고보이 위원장은 "애국심 고취를 위해 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이중국적은 러시아 국적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이중국적을 갖고 있다는 것은 러시아 국민이면서 동시에 다른 국가의 헌법에 따라 그 나라의 의무도 다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 '해외의 적들'이 있음을 상기해야 하며 러시아가 지금 '공격받는 상황에 처해 있어 정부는 누가 이중국적 소지자인지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클리샤스 상원위원장은 "미국과 라트비아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중국적 소지자들이 의무적으로 이들 국가의 이익을 위해야 한다는 맹세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원들 사이엔 '이중국적 소지자가 러시아뿐 아니라 다른 나라 정부와도 정치적·법적으로 연결돼 있어 각 나라 법에 명시된 헌법의 의무와 다른 여러 의무를 지니게 되기 때문에 이들은 그런 의무를 다하려 할 수 있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러시아 사법기관도 이중국적 문제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다.

정부의 우려는 '스파이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러시아 인구의 대거 해외 유출 가능성 때문일 수도 있다. 이중국적자들이 러시아를 떠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全)러시아여론연구센터 '프치옴'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국민 중 12%가 해외 거주를 원한다. 다만 실제로 이민 준비를 하는 사람은 그의 절반 정도다. 이민 규제 강화가 러시아 국민의 유출을 줄일 수도 있다. 이 법이 겨냥하는 또 다른 측면은 관료 가운데 법적으로 금지된 불법 이중국적 취득자를 가려내는 것이다.

어쨌든 다중국적 소지자들은 이 법을 어떻게 따라야 할지 막막하다. 이중국적 소지자인 나탈리야 사벨로바는 독일에 살고 있지만, 부모님이 계신 러시아로 곧 들어올 계획이다. 그는"벌써 이틀째 이민청에 전화하고 있지만, 연결이 어렵다. 어디에서도 어떻게 신고해야 하는지 방법을 찾아볼 수 없다. 해외 거주 러시아인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는 말도 있다. 독일에 살지만 러시아에서 자주 몇 달씩 머무르는 나 같은 사람은 신고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독일에 지내는 시간이 훨씬 많은 나 같은 경우 정부가 이것을 왜 알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불만이다.

인터넷도 이 문제로 끓었다. "러시아인은 다른 나라 여권을 가질 수 없고 러시아 여권으로만 출국할 수 있다 해도 출국자에게 다른 여권이 있는지를 알 방법이 없다" " 변호사라면 누구나 이 법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법정에서 입증해 보일 수 있다. 러시아인들은 이미 외국 여권 발급 신청 시 관리들에게 이중국적을 신고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주장들이 나왔다.

'권위 있는 반론'도 있다. 러시아 대통령 직속 인권위원회 미하일 페도토프 위원장은 "러시아와 조약을 체결하지 않는 국가들의 국적을 인정하지 않는데, 이처럼 우리가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국적 보고의 의무를 지우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말"이라고 했다. '시민지원위원회' 스베틀라나 간누시키나 위원장도 "정부는 이 법으로 스파이와 이중국적 소지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에게 꼬리표를 붙여 놨다"면서 "사람들은 이제 관료들과 만나는 일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이중국적 소지에 대해 더욱 숨기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This website uses cookies. Click here to find out more.

Accept cook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