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 성벽을 지키는 부동자세의 근위병들

(사진제공=니콜라이 코롤료프)

(사진제공=니콜라이 코롤료프)

두 병사가 모스크바 크렘린궁 벽 앞 무명용사의 묘를 지키며 ‘차렷’ 자세로 서 있다. 아이들은 그들을 동화에 나오는 장난감 병정이라 생각한다. “엄마, 엄마, 저 사람들 살아있는 거야? 헉, 눈을 깜빡였어! 살아있어!”라거나 “엄마! 이거 로보트야?”라면서 말이다. 보초병들이 근무 중 기침을 참는 법, 그리고 ‘꺼지지 않는 불꽃(Вечный огонь)’ 앞에서 중국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RBTH에 전했다.

그들은 러시아 전역에서 크렘린 경비연대(대통령 근위대)로 선발돼온 평범한 청년들이다. 선발 조건은 지원동기, 고등학교 졸업 이상, 유죄판결을 받은 사실과 경찰에 구속된 사실이 없을 것, 정상적인 도덕관념과 심리상태 등이다. 물론 외모도 본다. 얼굴 생김새가 단정해야 하며 키는 175cm 이상 190cm 이하로 문신과 흉터가 없어야 한다. 그중 일부는 특수 근위중대로 차출되는데, 크렘린 성벽 앞에 부동의 자세로 서있는 보초병들이 바로 그들이다.

인생의 한 주를 차렷자세로 보내다

제1 명예 근위중대 사병 알렉산드르 마카르체프는 9개월 복무 중 벌써 150번의 교대식을 진행했다. 교대식은 다리를 90도 각도로 들며 초소까지 행진하는 의식이다. 알렉산드르는 일생의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초소에서 차렷 자세로 보낸 셈이다. 초소 근무를 하는 근위병들이 범하게 되는 가장 큰 '실책'은 지나가는 여자나 자신과 비슷한 제복을 입은 군인한테 한눈을 파는 것이라고 알렉산드르는 말한다. 복무를 하면서 알렉산드르는 러시아인과 외국 관광객을 구별하는 법을 배웠다. "러시아 사람은 얼굴이 좀더 둥글고, 유럽인들의 얼굴은 대칭적이고 입이 일자로 다물어져 있어요. 러시아 사람이 더 웃는 상이죠."

(사진제공=니콜라이 코롤료프)

보초병은 근무 중 무슨 생각을 할까? 알렉산드르의 동료, 제1 명예 근위중대 사병 예브게니 린딘이 다음과 같이 알려준다. "나보다 먼저 이곳에 서있었던 사람들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무명용사의 묘가 갖는 의미를 생각하죠. 우리 모두를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이 묻혀있는 곳이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 정신을 바짝 차려 보초를 서게 됩니다."

'꺼지지 않는 불꽃' 앞의 셀카

무명용사의 묘는 모스크바 근교 독일 군 궤멸 25주년을 기념해 1966년 크렘린궁 옆 알렉산드롭스키 정원에 조성됐다. 이 기념물은 대조국전쟁(2차대전)에서 전사한 모든 군인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또 다른 명칭은 '초소 1호' 또는 '국가 최고 초소'이다.

"가족들이 아이들과 함께 온 것을 보면 기뻐요"라고 알렉산드르는 말한다. "경례를 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어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보통 성호를 긋고 헌화를 합니다. 러시아 풍습을 알아 무명용사의 묘 앞에서 땅에 대고 세 번 절을 하는 중국인들을 보면 기분이 좋죠." '셀카'를 찍으러 오는 젊은이들도 있다. '같이 가자'고 소리치면서 근위 초병들에게 장난을 치는 경우도 있다. 알렉산드르는 이미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익혔다. "그럴 때는 위쪽을 쳐다보면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려고 노력해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무슨 말을 하는지도 들리지만 구애받지 않는 경지에 오르는 거지요."

보초병들만의 비법

알렉산드르는 햇볕에 그을린 손등을 보여주고는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렸다. 그러자 하얀 피부가 나왔다. "어제 모스크바에 이상고온이 찾아왔어요. 그늘 온도도 38도나 됐는데, 여기는 화강암이 열을 받는데다 불꽃의 열기도 있어서 다 하면 거의 50도에 달했죠. 그렇지만 어쩔 수 없어요. 참아야죠." 그가 비밀을 알려준다. 말벌이 와서 앉으면 절대로 놀라지 말 것. 그러면 스스로 날아간단다. 기침이 나오려고 할 때 혀를 입천장에 대면 기침이 들어간다. 재채기는 속으로 삼킨다. 하품하는 것과 긁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동료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다. 무명용사의 묘 근처에 경비병 또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갑자기 기념물에 다가가려 하면 바로 그가 호각을 불어 경고 신호를 보낸다. 보초병들에게는 도움이 필요할 때 쓰는 비밀 신호가 있다. 그들은 "내 쪽으로 와"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집게 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꼬질대를 잡고 총신에 때려 쨍그랑 소리를 내면 경비병이 보초병에게 다가와 매무새를 고쳐주거나 얼굴을 닦아주거나 한다. 그들의 손에는 스미르노프 자동장전식 카빈소총이 들려 있다. 이 카빈소총의 총알은 1.5km 거리밖의 표적도 사살할 수 있다. 그러나 알렉산드르의 말에 따르면 심지어 무기가 사용될 때에도 보초병은 주위 사람들의 안전을 걱정하기 때문에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화가, 미용사, 19세 남성

(사진제공=니콜라이 코롤료프)
(사진제공=니콜라이 코롤료프)

크렘린 경비연대가 다른 부대보다 복무하기 편하다는 인식이 있다. 특수 근위중대 병영에는 병사들에게 요즘 나오는 애국적 영화를 보여주는 극장까지 있다. 병사들은 취미활동도 즐길 수 있다. 연대에는 '낙관주의자들'이라는 이름의 오케스트라도 조직돼 있다. 또한 극장으로 질서정연하게 행진한다. 그러나 알렉산드르는 이렇게 말한다. "이곳은 여느 군대와 같아요. 소년에서 남자로 만들어주죠. 편안한 집과 자유로운 삶의 기쁨에서 멀어지게 되면 예전에 자신이 누구였는지, 돈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돼요." 알렉산드르는 처음에는 모두 자기의 부정적인 면들을 숨기려고 하지만, 곧 본성이 드러난다고 한다. 모두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중국 전통무술 우슈를 하는 사람도 있다. 알렉산드르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근위병 교대식을 다음 그림의 주제로 생각중이며 어머니나 동료에게 선물할 예정이다. 또한 알렉산드르는 이발 자격증도 갖고 있다. 보초병의 군모 속에 감춰진 머리들은 그의 작품이다. 그는 이곳 병영에서 자신의 '고객들'을 커다란 가죽 의자에 앉힌다. 이 의자는 예전에 보리스 옐친 러시아 초대 대통령이 머리를 깎을 때 쓰던 것이다. 이 의자는 처분되어 크렘린 경비연대에 선사됐다.

크렘린 경비연대 복무는 병사들에게 이런저런 혜택을 준다. 복무 후 모든 병사는 구직에 도움이 되는 추천서를 받게 된다. 대학 입학시에도 혜택이 있다. 전역 장병은 모스크바 국립대학(러시아에서 가장 유서 깊은 명문 대학)에 사실상 시험 없이 입학이 가능하다. 알렉산드르 마카르체프는 이 특혜를 활용해 다음 학년도에 모스크바 국립대학에 입학원서를 낼 예정이다.

알렉산드르의 복무 기간은 3개월 남았다. 그는 지금 이렇게 말한다. "저는 바로 이곳에서 사람들이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상상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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