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전 러시아 총리 별세

(사진제공=로시스카야 가제타)

(사진제공=로시스카야 가제타)

격동의 90년대 러시아 외무장관과 총리를 역임한 예브게니 프리마코프가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세간에서는 그를 '비행기 기수를 돌린 외교관' 그리고 '러시아를 구원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26일 금요일 모스크바에서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전 러시아 외무장관(1996~98년), 전 총리(1998~99년)가 별세했다고 그의 측근이 인테르팍스 통신에 알려왔다. 프리마코프 전 총리의 손자인 예브게니 산드로도 조부의 죽음을 확인해주었다. 그의 나이 향년 86세였다.

"러시아 역사를 써온 사나이"

프리마코프 전 총리가 별세한 사실은 이미 블라디미프 푸틴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이와 관련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공보실장은 "푸틴 대통령은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전 총리의 친지와 그를 알았던 모든 이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고 발표했다. 페스코프 공보실장은 푸틴 대통령이 프리마코프 전 총리와 친분이 있었으며 정치적으로도 동지관계였다고 밝혔다. "그는 국가위정자, 학자, 정치가로서 매우 큰 유산을 후세에 남겼다"고 페스코프 공보실장은 덧붙였다. 한편 알렉세이 쿠드린 전 재무장관(2000~2011년)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예브게니 프리마코프가 우리 곁을 떠났다. 그는 탁월한 정치가였다. 그는 러시아의 역사를 써온 인물"이라고 적었다.

이리나 하카마다 전 국가두마(하원) 부의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게 있어 예브게니 프리마코프는 엄청난 권위를 상징하는 정치인이었다. 내각에서 그후 의회에서 우리는 함께 일한 시간이 있었다. (중략) 경험 많고 노련하며 정직과 원칙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한번도 어떠한 강성 야당에 몸담은 일은 없지만, 언제나 진실을 추구한 사람이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나다니 가슴 깊이 유감으로 생각한다. 그는 거대한 바위 같은 인물이었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하카마다의 말에 따르면, 정보부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날아가는 비행기의 기수를 돌려 협상을 진행했던 노련한 외교관"이었지만 "언제나 경제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잘 알고 있었다".

1999년 프리마코프가 총리 재임 시절 그의 보좌관이었던 미하일 델랴긴은 "그는 1998년의 끔찍한 디폴프 선언 이후 총리직을 수락했으며 글자그대로 러시아를 구원했다"고 말했다. 프리마코프가 러시아공산당 소속으로 하원의원 생활을 한 3차 소집(1999~2003년) 국가두마의 부의장이었던 겐나디 세미긴 또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 그는 "프리마코프 전 총리는 러시아의 고위급 위정자 중 가장 강직하며 정직한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한 진정한 러시아 애국자였다"고 평했다.

국가두마에서는 별세한 프리마코프 전 총리를 애도하는 1분간의 묵념 시간이 있었다. 니콜라이 레비체프 하원부의장은 모스크바 루뱐카 광장(전 KGB-현 FSB 건물이 있는 곳 - 편집자 주)에 그를 기리는 동상을 건립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대서양 회귀 사건'

중동전문가였던 예브게니 프리마코프는 1997~1985년 소련 동방학연구소 소장직을 맡았다. 80년대 말에 소연방 최고회의 연방회의 의장이 되었으며, 1991~1996년 러시아 해외정보국(SVR) 국장직을 역임했다.

1999년 당시 총리직을 맡고 있던 프리마코프는 역사에 '대서양 회귀 사건'으로 기록된 유명한 외교적 행보를 남겼다. 미국 공식 방문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 위를 날던 중 나토군의 유고 공습 개시에 대한 소식을 들은 프리마코프 당시 총리가 방미 계획을 전격 취소하고 모스크바로 기수를 돌리게 한 사건이었다.

그후 그는 다음과 같은 식으로 여러 차례 러-미 관계에 대한 의견을 표명해왔다. "만약 러-미 관계가 삐끗해서 새로운 냉전으로 돌입하게 된다면 모두가 패자가 될 것이다. 그런 일을 방지하려면, 유감스럽게도 점점 더 그 정도가 강해지고 있는 서로를 자극하는 발언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이는 분명한 결론이다."

러시아 대외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대서양 중심주의를 포기하고 '다극화 세계' 구상을 제안했다고 오늘날 러시아 언론은 프리마코프를 평가한다. 총리직 역임 이후 2000~2001년 짧은 기간 하원의원 생활을 했다. 그후 10년(2001~2011년)을 러시아 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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