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화선(火線)에 설 수도 있는 유럽

(사진제공=키릴 칼린니코프/리아 노보스티)

(사진제공=키릴 칼린니코프/리아 노보스티)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가 위기에 빠지면서 냉전 말기에 구축된 러-미 관계 기반이 계속 붕괴되고 있다. 중거리핵전력조약(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 INF)도 위협을 받고 있다. INF가 폐기되면 유럽은 다시 열강들의 핵 대립 무대로 바뀔 수 있다.

1987년 체결된 INF는 소련과 미국의 핵 분쟁 위협을 줄이는 길로 가는 주요 행보 가운데 하나였다. "INF에 따라 매우 위험한 종류의 미사일들이 폐기됐다. 이들은 목표물까지 도달하는 비행 시간이 짧아 아무리 작은 사태라도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크게 높여 놓았다." 이반 티모페예프 러시아국제문제위원회(РСМД, RIAC) 프로그램 책임자가 Russia포커스 기자에게 이같이 설명했다. 첨언하자면, INF 체결 이후 미국이 유럽에서 미사일을 철수시킴으로써 유럽은 더 이상 소련 미사일의 표적이 되지 않았다.

심각한 위협인가, 아니면 으름장인가?

현재 미국은 INF를 파기할 뜻을 시사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은 러시아가 벌써 2년 동안 조약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러시아 외무부는 러시아가 언제 무엇을 위반했는지에 관해 미국 측으로부터 구체적인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대신 중단거리 미사일의 유럽 배치 등을 통한 대응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영국 정부는 이에 관해 이미 서면 동의를 표했다).

이반 티모페예프의 견해에 따르면, 앞으로 3년 안에 조약이 파기될 가능성이 크다. "매파 정치인들이 조약 파기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 밖에 러-미 양측의 군산복합체 로비스트들도 조약에 반대하고 있다. 조약이 파기되면 군비경쟁이 재개되기 때문이다."

드미트리 오피체로프-벨스키 고등경제대학 부교수의 말에 따르면, INF 조약의 불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최근 3년간 러시아 군사복합체 로비스트들 사이에서 특히 자주 들을 수 있다. "미국이 러시아가 침략할 경우를 상정하고 많은 동유럽 국가를 준 핵 보유국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점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관점들도 존재한다. 드미트리 수슬로프 고등경제대학 유럽·국제종합연구센터 부소장은 미국이 조약 파기를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고는 평가하지 않았다. "으름장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1980년대 상황으로 되돌아갈 정도로 심각한 군비경쟁을 벌일 뜻이 있음을 러시아에 분명히 하고 있다. 또 현재 미국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익을 확실하게 고수할 계획임을 미국과 그 동맹국 시민들에게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수슬로프 부소장이 Russia포커스 기자에게 이같이 설명했다.

조약 파기 나토 분열될 수 있어

만약 미국이 협정을 파기한다면, 그로 인한 결과는 특히 러시아와 서방이 게임의 법칙을 여전히 마련하지 못한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상황에서 볼 때 매우 심각할 수도 있다. "유럽 안보 상황이 급격히 악화할 것이다. 분쟁 위험이 커질 테고, 군비경쟁이 시작되고 그로 인해 예기치 못한 긴장이 고조될 위험성이 있다." 이반 티모페예프의 평가다.

"나토의 내분이 일어날 수도 있다. 프랑스와 독일이 조약 탈퇴를 반대할 것이다. 이들은 러시아 미사일 표적이 또다시 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드미트리 수슬로프 부소장이 계속해서 말했다. 물론, 미국은 이를 구실로 자신의 미사일방어체계(MD)를 지지해 달라고 유럽을 설득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수슬로프 부소장은 이런 도박이 통하지는 않으리라고 말했다. "MD는 효율성 면에서 공격 무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수슬로프 부소장의 평가다.

러시아, 유럽과 직접 대화해야

러시아 당국은 미국이 INF를 파기하면 칼리닌그라드에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것을 서둘지 말라고 권고한다.

"미국이 조약을 파기하면, 러시아는 극도의 신중성을 갖고 정치적 차원에서 문제를 논의하려고 해야 한다. 유럽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조약이 파기될 경우 가장 큰 피해자는 유럽이라는 점을 설명해야 한다. 미국의 미사일이 유럽에 배치될 테고 그러면 러시아 미사일이 그에 따라 유럽을 겨냥하게 될 것이다." 이반 티모페예프의 말이다.

"조약 파기 가능성을 먼저 밝힌 쪽은 러시아가 아니라 바로 미국이었다." 드미트리 수슬로프 부소장이 이같이 상기시켰다. "이 점을 유럽과의 집중적인 대화를 시작하는 데 이용해야 한다. 나토 내분을 일으키거나 유럽 안보의 토대를 바꾸는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까지 없었던 안보 대화를 시작할 수는 있다. 그것도 미국이 참여하지 않는 대화 말이다." 그리고 러시아와 유럽의 관계 정상화 과정도 바로 이렇게 실제적인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화를 통해서 전개되리라는 점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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