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대장정에 오르는 러시아

(사진제공=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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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회담은 다수의 계약 체결로 대미를 장식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서는 아마도 양국 정상이 러시아가 지지하는 프로젝트 유라시아경제연합(EEU)과 중국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 ‘실크로드 경제 벨트(SREB)를 통합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공동 성명서일 것이다. 이 계획이 실현되면 중앙아시아에서 러-중 공동 관리 지대 창설로 이어질 수도 있다.

5월 9일 전승 70주년 기념 군사행진 당시 촬영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만 아니라, 또 시진핑 주석의 러시아 방문 결산에서 중요한 상징이 된 중국 인민해방군 병사들의 붉은 광장 군사행진 참여만 아니라 양국 정상의 회담도 적지 않은 상업적 계약을 이끌어냈다. 우크라이나 위기와 서방의 대러 경제 제재 국면 속에서 중국이 러시아에 점점 더 많은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한 2014년 5월부터 다수의 계약이 양국 정상 회담 중에 체결되기 시작하여 이제는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8일 크렘린궁에서는 32건의 계약이 체결됐다. 가장 중요한 계약은 러시아 기업들의 중국 금융 기관 접근성 확보, 특히 위안화 신용장 개설과 관련돼 있다. 상호 결제 시 달러와 유로화 탈피는 2000년대부터 러시아와 중국이 추구해온 목표였다. 서방의 대러 제재가 발효 중이고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 악화 시 자국과 유럽연합(EU) 내 러시아 대기업들의 대리계좌 거부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체 통화로의 결제 전환이 필수 불가결해지고 있다. 따라서 위안화가 태환이 자유로운 통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여전히 위안화를 많이 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말에 따르면, 양국 통화 결제 비율은 양국 총 교역량에서 7%를 차지한다(2014년 이 비율은 러시아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890억 달러, 중국 자료에 따르면 950억 달러를 기록했다). 위안화 차입 협정은 스베르방크(중국국가개발은행(CDB)에서 60억 위안 신용장 개설)와 대외무역은행(CDB에서 120억 위안, 중국수출입은행(Exim Bank)에서 30억 위안 차입), 대외경제은행(CDB에서 케메로보 주 특수강 제조 프로젝트에 39억 위안 차입)이 체결했다. 이 밖에도 러시아직접투자기금(РФПИ, RDIF)은 러시아 기업들의 중국 무대 진출을 위해 중국 CITIC 그룹 계열사들과 합작 투자은행 설립 협정을 체결했고, 중국건설은행(CCB)과는 중국 투자자들의 러시아 내 프로젝트 투자를 용이하게 해주는 합작 신용 매커니즘 설립 협정을 체결했다.

과거 회담에서와는 달리 이번 회담에서 양국은 에너지 분야에서 중요한 협정을 체결하지 못했다. 가스프롬과 중국 석유천연가스집단(CNPC)은 '서부 노선'을 통해 중국에 러시아산 가스를 공급한다는 기본 조건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2014년 11월 10일 양측은 이미 '서부 노선'을 통한 러시아산 가스 공급에 관한 '기본 협정'에 서명한 바 있다. '동부 노선'(차얀다와 코빅타 가스전 내에 자원기지를 갖춘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 관련 계약 체결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가스 매매 계약을 체결하는 데까지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따라서 이번 협정의 목적은 가스프롬의 가스를 구매하는 유럽 소비국들에 경고 신호를 보네는 데 있음이 분명하다. 지난 4월 13일 베를린 연설에서 알렉세이 밀레르 가스프롬 사장은 가스프롬의 신규 '유라시아 전략'에 관해 말하고 러시아산 가스 공급선을 중국으로 바꿀 가능성을 시사하며 유럽 가스 시장에 러시아 자원기지와 인프라가 필요한지 유럽연합이 결정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중국은 러시아를 위해 유럽 가스 시장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중국행 러시아 가스의 '서부 노선'과 '동부 노선'이 건설된다고 하더라도 2020년 이후(최상의 시나리오일 경우) 총 수송량은 2014년 가스프롬이 유럽과 터키에 공급한 146bcm과 비교하면 연간 78bcm에 그칠 것이다. 가스 가격은 말할 것도 없다. '동부 노선'을 통해 공급되는 가스 가격이 독일이 지불하는 가격과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면(하지만 가격 책정은 투명하지 않은데다 가스프롬이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 완공에 중국 차관을 필요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서부 노선'을 통해 공급되는 가스에 대해 중국은 저렴한 투르크메니스탄산 가스 가격(가스프롬이 서시베리아 가스전에서 채굴한 가스에 대해 받고자 하는 가격보다 더 싼 1천 입방미터당 약 150달러)보다 더 지불할 용의가 아직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는 어쩌면 러-중 양국 정상이 EEU와 SREB 건설을 통합하기로 밝힌 공동 성명서일 것이다. 성명서는 두 이니셔티브의 대화를 위한 조율 플랫폼으로 상하이협력기구(SCO)를 지적하고 있는 동시에 "장기적 목표로 EEU와 중국 간의 자유무역지대 창설 추진을 검토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로써 현재까지 러시아와 중국은 전술적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두 통합 이니셔티브가 상호 파트너로 인정됐고 자유무역지대에 관한 민간한 문제는 막연한 미래로 미뤄졌기 때문이다. 두 프로젝트의 통합은 러시아와 중국 모두에 유리할 수도 있다. 러시아는 인프라 개발용으로 '실크로드건설기금'에서 자금을 받게 될 것이고, 중국은 정치적 위험성이 없고 관세동맹의 인프라가 제공되는 믿을 만한 대유럽 운송로를 얻게 될 것이다(이 노선을 통하면 중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길에 세관국경은 모두 2개뿐이다). 이 통합이 실현된다면, 러시아와 중국은 중앙아시아에서 공동 관리 지대를 창설할 수도 있다. 여기서 러시아는 안보를 보장하는 역할을 맡게 되고 중국은 거대한 경제 행위주체로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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