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두박질 치는 국제정세

(사진제공=로이터)

(사진제공=로이터)

탑승자 298명의 생명을 앗아간 보잉 777 여객기 추락 참극으로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정치 게임 과정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러시아 주요 전문가들은 7.17 말레이기 피격 사건 이후의 정세 변화와 러시아와 미국, 유럽연합의 향후 관계 발전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RBTH가 들어 보았다.

세르게이 카라가노프, 정치학자, 고등경제대학 세계경제·국제정치 학부 학장

향후 국제관계 발전은 보잉 777 여객기 추락 조사 결과에 달려 있다. 조사 결과 여객기 추락 책임이 반군에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유럽은 러시아도 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다고 볼 테고 이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게 될 것이다. 또 러시아가 훨씬 더 깊숙이 연루돼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국제관계는 문화적 차원에서만 아니라 정치적 차원에서도 악화할 것이다. 하지만 누구의 책임인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전쟁 중에는 '블랙스완'(불의의 재난을 이렇게 부른다)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들 말한다. 보잉 여객기 추락이 그 증거이다.

서방의 대러 제재는 러시아의 발전을 이미 부분적으로 지체시켰다. 하지만 대러 제재는 국제경제 관계를 떠받치는 토대를 허물어뜨리고 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스스로를 위협하게 될 '무기'를 가동시켰다. 러시아와 미국, 유럽연합의 '소프트' 파워에 기반이 되고 있는 브레튼-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가 그것이다. 국제경제 체제는 표적 제재로 인해 과거의 체제 쪽으로 급전환하게 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에 군대를 투입하길 바라고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소련의 붕괴를 가속화시킨 것이 바로 아프가니스탄 침공이었다.

알렉산드르 코노발로프, 전략평가연구소 소장

보잉 777 여객기 추락은 러시아 대외정책에서 블랙데이(흉일)가 되었다. 이전에는 우크라이나 내 갈등이 유럽의 관심권에서 중심부가 아니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유럽연합은 미국의 대러 제재정책 노선을 아주 쉽게 따라갈 것이다. 이것이 러시아에 공정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 없이 말이다.

물론 진상조사에서 우크라이나 방공부대가 군사작전의 일환으로 여객기를 격추했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크라이나 군대가 민간 항공기를 격추할 만한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한때 형제국이었던 우크라이나와의 관계는 훨씬 더 악화되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러시아의 크림 편입 직후 모든 게 망가질 만큼 너무 먼 길을 가버렸다. 머지 않아 군수산업 분야 협력도 최소화될 것이다. 러시아 헬기용 엔진은 자포로지예의 우크라이나 기업 '모토르시치' 등에서 생산하고 있다. 선박 디젤 엔진도 우크라이나 니콜라예프에서 생산하고 있다. 러시아는 당연히 수입 대체 방안을 찾을 테지만, 이 모든 건 시간이 필요하다. 러시아는 이제 우크라이나를 오랫동안 잃게 됐다.

안드레이 피온트콥스키, 정치학자, 국제정보처리기술아카데미 회원

러시아의 대서방 관계만 아니라 전 세계 관계도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여객기 추락 참사로 자국민을 잃은 호주와 말레이시아에는 언론의 추측성 보도 때문에 추락 사고에 러시아가 최소한 간접 책임이 있다는 여론이 꽤 강하게 형성돼 있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며칠간 긴장을 줄이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푸틴 대통령의 심야 연설에 매우 특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내친 김에 말하자면, 푸틴 대통령의 연설은 무엇보다도 서방의 향후 행보를 주도할 미국과 오바마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었다.

푸틴 대통령을 가장 당혹스럽게 하는 문제는 바로 대러 경제제재다. 이전에는 유럽이 미국의 압력에 저항했지만, 이제 오바마 대통령은 제재 문제에서 유럽연합과 더 쉽게 공조할 수 있게 됐다.

세르게이 미헤예프, 정치동향센터 소장

대체로 일반 유럽인들은 이전에 우크라이나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우크라이나 상황이 유럽의 이해관계에서 최대 관심사로 급부상했다. 미국은 유럽연합에 러시아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청산하라고 계속 설득 중이다. 동조적 입장을 취하는 나라도 있고, 반군과 러시아의 테러 연루를 증명할 증거와 팩트를 매우 조심스럽게 요구하는 나라도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 당국은 상황을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수준으로 바꿔놓으려고 하고 있다. 이들은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의 자칭 인민공화국들을 국제 테러단체로 선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선포되면 앞으로 두 공화국은 일반 유럽인들의 의식 속에서 알카에다와 탈레반과 같은 선상에 놓이게 될 것이다. 또 우크라이나 당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서방 연합군이 개입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평가할까? 미국이나 유럽연합이 세계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실 미국과 유럽연합은 가장 강력한 행위주체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이들과의 관계가 우리에게는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쪽들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상황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는 쪽은 누구이고 아닌 쪽은 누구인지 모두에게 입증해 보일 필요가 있다. 보잉 777 여객기 문제에서 우리의 입장을 확실하게 고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 노선 추종은 유럽 국가 대부분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 이번 참사에 대해 간접적으로라도 러시아에 책임을 묻는 것도 그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보잉 여객기를 둘러싼 이야기가 역사의 수수께끼로 또 한 번 남게 된다면 많은 사람에게 이로울지도 모른다. 러시아의 직접 책임을 증명해주는 증거도 없고, 우크라이나의 직접 책임을 증명해주는 증거도 없기 때문이다.

This website uses cookies. Click here to find out more.

Accept cook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