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관계, 평화조약을 향해 일보 전진

(사진제공=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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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첫 러∙일 정상회담이 지난 29일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2차 대전 종전 67년이 지난 지금까지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상황은 비정상적인 일이라며 양국의 입장 차를 넘어 평화조약을 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영토분쟁 내용은 성명에서 빠졌다.

지난 29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렘린궁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영접했다. 방러 전에 밝힌 바와 같이, 아베 총리는 “영토분쟁을 해결하고 양국 간 평화조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러·일 관계를 새롭게 진전시키고 쿠릴 열도 소유권 문제에 관한 논의를 지속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정상회담이 끝난 후 두 정상은 투자협력 및 자금세탁·테러지원 관련 금융수사 정보 공유 등을 포함하는 일련의 협정문서에 조인했으나, 영토분쟁에 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정상회담이 끝난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 일본 기자는 러시아가 제3국들과 공동으로 쿠릴 열도의 인프라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러·일 평화조약 체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푸틴 대통령에게 물었다.

푸틴 대통령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저는 당신이 종이에 적힌 질문을 열심히 읽는 것을 봤습니다. 당신에게 그런 질문을 하라고 지시한 사람들에게 영토문제는 우리가 만든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라는 점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양국이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조건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고 말입니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 언론을 포함, 일본 측이 이 문제 해결을 돕고 싶다면, 양국 간에 신뢰를 바탕으로 한 선린관계의 구축을 위한 여건 마련에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제 해결을 방해하고 싶을 수도 있겠는데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 거칠고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시면 됩니다. 그럼 그에 맞는 거칠고 직설적인 대답을 계속 듣게 될 겁니다”라고 리아 노보스티가 푸틴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쿠릴 열도에 현재 러시아 국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정부는 이들에게 충분한 생활여건을 보장하고 보살필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양국 외무부에 적극적으로 평화조약 체결을 준비하도록 지시가 내려졌지만 그렇다고 하루 아침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이는 매우 복잡한 문제라고 밝혔다. 아베 총리도 이에 동의하며 “손짓 한 번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마법의 지팡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양국의 입장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말고 면밀히 협상을 진행해가야 합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이번 대화가 상호 신뢰의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덧붙였다.

아베 총리의 러시아 방문 성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일 총리비서실의 다마히코 다니구치 자문관은 G8, G20, APEC 정상회의 등 양국 정상이 조만간 재회할 기회가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이 평화조약 교섭을 재개하고 가속화하기로 합의를 본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전문가 이시가와 이치오는 아베 총리의 방러 사실 자체가 이미 양국 관계의 개선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 그는 “양국 정상은 지난 10년 사이 상대국을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정상이 아닙니다. 원인은 잦은 정권 교체로 협상의 기회를 갖지 못한 일본 측에 있다고 봅니다. 현 일본 총리는 매우 강력한 의지를 가진 정치인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하고 아베 총리를 협상 파트너로 선택한 것이 분명합니다”라고 러시아 일간 브즈글랴드 지에 밝혔다.

러시아 민간정책자문기구인 외교안보정책회의(SVOP)의 표도르 루키야노프 의장은 관계 개선의 징후가 실제로 관측되고 있지만 아직 특별한 돌파구를 기대하기는 이르다고 보고 있다. 루키아노프는 가장 중요한 현안인 쿠릴 열도 문제에서 긍정적인 진전을 보기는 불가능하다고 확신한다. 그는 양국 정상이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시늉만 내는 표현들을 선택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실적인 가능성은 여전히 제로입니다. 그러나 양측 모두 이러한 사실을 드러내서 말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겁니다. 푸틴 대통령의 표현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그의 말은 알맹이가 없지만 어쨋거나 지금이 막다른 골목을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루키아노프는 이렇게 설명했다.

발레리 키스타노프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극동연구소 일본학센터 소장은 “아베 총리는 쿠릴 열도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돌파구도, 이견을 좁히는 것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가 기대할 수 있는 최대의 성과는 푸틴 대통령과의 개인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푸틴은 과거 대선에 출마하기 전 한 기자회견에서 쿠릴 열도 문제에서 양국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야 하며, ‘히키와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히키와케’는 유도 용어로 ‘무승부’라는 뜻이다. 푸틴은 이 단어를 사용하여 일본측을 크게 고무시켰다.

키스타노프 소장은 “아베 총리로서는 러시아 문제에서 작은 진전이라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본의 전반적인 대외관계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인데요. 일본은 중국, 한국과도 영토분쟁 중인데 이들 중 어느 나라도 영토 문제를 두고 다른 국가 정상들 간에 논의가 있었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고 지적했다.

(vz.ru, 리아노보스티 자료를 러시아FOCUS 편집부가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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