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통합의 날에 즈음하여

드미트리 디빈
160개 이상의 언어를 말하고 세계 모든 종교를 믿는 수십 개 민족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통합 구상은 평화로운 공존과 국가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되고 있다.

11월 4일 우리는 ‘국민통합의 날(День народного единства)’을 맞이한다. 이 날은 2005년 도입된 비교적 새로운 러시아 국경일이다. 국민통합의 날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여러 가지 이유에서 도입됐다. 첫째, 160개 이상의 언어를 말하고 세계 모든 종교를 믿는 수십 개 민족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통합 구상은 평화로운 공존과 국가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되고 있다. 둘째, 새로운 국가, 다시 말해 소비에트 국가가 아닌 러시아 국가의 수립에는 새로운 상징들도 필요했다. 소련 전통과 경쟁할 수 있는 국경일을 제정하려면 11월 7일과 아주 가까운 어떤 사건을 찾아낼 필요가 있었다.

대혼란 시대(Великая смута)가 러시아에서 폴란드 군대를 몰아내고 미하일 로마노프를 새로운 황제로 선출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던 17세기 초에 그 역사적 기원을 둔 국민통합의 날이 바로 그러한 날이 되었다. 그 중요성과 국가적 차원의 의의에서 바로 그렇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국민통합의 날은 결정적인 감정적 공감대를 결여하고 있다. 국가적 기념일에 추상적 개념이 항상 유리한 것은 아니다.

확신컨대, 현대 러시아에는 그 통합의 힘에 있어서 5월 9일 대조국전쟁(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에 필적할 만한 국경일은 없다. 이 전쟁은 지금도 모든 러시아 시민의 가슴 속에서, 그들의 운명과 인간적 관계 속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전쟁의 기억과 승리에 대한 자부심, 자기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들에 대한 자부심은 당연히 소비에트 역사와 새로운 러시아 역사를 통합시켜 준다. 현대 러시아인들에게서 소비에트 과거에 대한 태도는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러시아인들은 소비에트 시절의 사람들보다 자신들의 판단에서 훨씬 더 자유롭다. 우리는 이동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재산권 등 소련에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모든 인간 권리를 헌법에 따라 보장 받았다. 현대 러시아는 자본주의 국가인 동시에 국가가 국민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 경제상황이 매우 악화되고 있음에도 그렇다. 사회 생활에서 종교의 역할도 변했다. 러시아 헌법에 명기된 양심의 자유는 러시아정교와 이슬람교, 유대교, 불교 등 모든 러시아 전통 종교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시민들의 바로 이런 다종교성으로 인해 이들 종교 중에서 어느 하나도 국교가 될 수는 없다. 게다가 러시아는 세속 국가다.

소련은 현대 러시아에 양질의 교육을 받은 시민들을 남겨 주었다. 계몽된 사람들은 대개 현대적 삶에 대하여 복잡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견해가 급진적이기 때문에 그들과 합의를 보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 잘못된 것이다. 완고함은 러시아인들의 특징이 절대 아니다. 우리는 복잡하고 극적인 상황들에서 타협을 찾을 줄 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입장과 견해가 무시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유명한 작가 미하일 즈바네츠키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주먹싸움에는 약하지만, 전쟁은 승리한다(В драке не поможем - в войне победим).” 국가적 시련은 대개 러시아인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국민으로 단결시켜 준다.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러시아를 상대로 도입한 경제 제재는 오히려 대다수 국민을 통합시켜 주었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을 높여 줬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도 러시아 지도부는 전 세계에서 고립되는 것을 전혀 바라지 않는다. 우리의 정책은 논의되고 있는 문제들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파트너들과 계속해서 대화할 필요가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오늘날 애국주의를 모종의 국가 이데올로기로 간주하는 일이 자주 있는데, 이는 내가 보기에 잘못된 것이다. 애국주의를 그렇게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애국주의는 부모에 대한 사랑처럼 대개 인간의 정치적 확신과는 무관한 정상적인 인간 감정이다. 애국주의의 발현은 당연히 교육에 달려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사회와 개인들이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애국주의는 모든 민족에게 내재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애국주의는 러시아인들에게 내재해 있는 것처럼 타타르인, 바시키르인 또는 체첸인들에게도 내재해 있다. 당연히 모든 민족은 저마다 자체 언어와 함께 관습과 전통, 행동 규범, 예술문화 같은 무형의 유산을 갖고 있다. 심지어 하나의 언어 집단이나 공통의 종교에 속하는 민족들 사이에서조차도 모든 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민족 관계 같은 미묘한 분야에서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러시아는 다문화주의가 모든 시민에게 공통적인 어떤 행동 규칙들과 결합되어 있는 나라다. 어깨를 맞대고 함께 살고 있는 여러 다른 민족들의 이해관계를 조화시키기가 극히 어려운 때가 종종 있다는 것도 숨기고 싶지 않다.

러시아는 변화의 나라이지만, 그와 동시에 깊은 타성에 빠져 있기도 하다. 이 점은 러시아의 거대한 공간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비극적인 역사와 관련돼 있다. 안드레이 콘찰롭스키는 최근에 이런 러시아적 삶의 보수성에 관한 영화 ‘집배원 알렉세이 트랴피친의 백야(Белые ночи почтальона Алексея Тряпицына)’를 찍었다. 그런가 하면, 2013년 5월 세상을 떠난 알렉세이 발라바노프는 2000년대 찍은 자신의 모든 영화들에서 러시아 역사의 급격한 방향전환을 단적으로 체험했던 러시아인들의 심리적 격동을 그려냈다.

그리고 원로 거장들에서 젊은 세대까지 러시아 영화감독들은 ‘인간과 전쟁’이라는 주제에 계속해서 관심을 보여 왔는데, 이 주제는 러시아 삶과 문화의 영원한 일부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삶 전체가 축제의 기다림이다. 하지만 삶 자체가 놓칠 수 없는 큰 축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생에는 초안이라는 게 없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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