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의 역사 이해 없는 유럽과 아시아

드미트리 디빈
전후 세계 질서 거부를 바라보는 시각

일본 헌법 조항 가운데 하나를 개정하려는 아베 신조 정부의 의도를 둘러싼 논쟁들이 현재 기념일들(일본의 항복 70주년 외에도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도 있다)과 맞물려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자체 군사력 보유 금지는 일본 헌법의 기본 원칙 가운데 하나였다. 몇 년 후 이 원칙은 일본 영토 밖에서 모종의 행동을 취할 권리를 갖지 않는 자위대를 허용하는 단계까지 완화됐다. 아베 신조 총리가 아시아 지역과 세계에서 일어난 주요 변화를 거론하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제한 조치다. 헌법 개정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문제는 수정 내용에 있다기보다는 원칙에 있다. 원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도 선례를 남기는 셈이기 때문이다.

일본 내부 논쟁은 바로 70년 전 유엔 창설과 함께 탄생한 전후 시대 세계 질서의 운명과 관련된 과정의 한 부분이다.

세계 질서는 전쟁 결과에 대한 일정한 도덕적·정치적 해석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유럽에서 이 세계 질서는 1990년대에 의문시됐다. ‘두 번의 점령’이라는 동유럽식 개념, 다시 말해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동일시하는 개념이 점점 더 큰 역할을 담당했다. 유럽에서 이 과정은 국제 질서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심화하고 있다.

2014년부터 러시아와 그 반대 국가들은 다양한 점을 염두에 두고 전후 세계 질서 위반에 대해 서로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러시아는 서방이 균형의 법칙과 얄타-포츠담 체제의 토대가 된 이해관계 영역에 대한 상호 고려를 무시했다고 생각한다. 유럽과 미국에서 얄타 평화회담은 이미 거의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은 러시아가 1945년부터 무력에 의한 영토 확장 선례를 처음 남겼다고 지치지 않고 되풀이하고 있다.

아시아 상황도 그에 못지 않게 흥미롭다. 여기서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과 비슷한 재판이 있었지만, 유럽에서와 같은 도덕적·정치적 선명성은 결코 달성하지 못했다. 아베 신조 등 일본 총리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왔다.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1940년 벌어진 사건들에 대한 책임을 충분히 지지 않고 있어 이웃 국가들의 큰 불만을 사고 있다.

20세기 이념 대결의 시대에 아시아 내 이견은 기본 대립이 어쨌든 아시아에서 펼쳐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해 묻히고 말았지만, 이제는 표면으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에 중국은 2차 세계대전에 상당히 무관심했지만, 이제는 ‘역사 정치’(탈공산주의 세계에서 현재적 목적으로 역사를 이용하는 것과 관련해 등장한 용어)의 전면에 등장했다. 일본군의 항복은 중국 공산당이 아니라 장카이섹(장제스) 국민당 정부가 받았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종전일인 9월 3일이 작년부터 국경일로 지정돼 항일투쟁에서 중국 인민이 승리한 날로 경축되고 있다.

항일 역사 요소가 제도적으로 강화되고 있다(2014년에는 난징 대학살 희생자를 기념하는 국경일도 제정됐다). 이 밖에도 러시아의 중국학자인 예브게니 루먄체프의 언급에 따르면 중국은 국제 경제와 정치에서 차지하는 현재의 비중에 걸맞게 2차 세계대전에서 담당한 중국의 역할 개념을 정립할 계획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일본을 패배시킨 주요 공로를 미국과 소련이 아니라 바로 중국에게 돌리고 있다.

러-중 파트너십 강화 안에서 중국은 유럽의 ‘전쟁 결과 재평가’를 불허하는 데서 상호 연대를 보여준 대가로 우리에게 익숙한 것과는 다른 중국판 아시아 내 2차 대전 해석을 러시아가 수용해 줄 것을 사실상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제안은 비대칭적이다. 서방의 전쟁사 무대에서 중국이 보여준 지지는 러시아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럽은 이 문제에서 중국의 입장에 별로 관심 없다. 하지만 아시아 ‘전선’에서 러시아가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갈등들에 연루되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들로 가득 차 있다. 러시아는 아시아에서 훨씬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여러 행위주체들과 균형 있는 관계를 수립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진행되는 과정들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추세는 똑같다. 과거 패전국들-독일과 일본-은 대체로 지난 세기의 파국들과 관련된 역사의 한 장이 넘어 갔다고 (각자 나름대로) 평가하고 있다. 과거 승전국들은 냉전 이후 각자의 경험에 따라 훨씬 더 다양하게 세계 질서를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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