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라즐롬나야의 ‘해적들’

(일러스트=세르게이 욜킨)

(일러스트=세르게이 욜킨)

극의 자원과 경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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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자원과 경계선

지난 9월 18일 북극 페초라 해에서 그린피스 환경운동가들이 러시아의 첫 북극 해양 석유 시추 플랫폼 '프리라즐롬나야'에 접근했다. 두 명의 환경운동가가 이어 플랫폼 진입을 시도했다.

사태를 파악한 러시아 해안경비대는 악틱 선라이즈 호 위쪽으로 경고사격을 하고 활동가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며 악틱 선라이즈 호를 에워싸고 있던 보트들을 들이받았다. 플랫폼에 기어오르려던 환경운동가 두 명은 즉시 체포됐다.

다음날 해안경비대는 헬리콥터를 타고 현장으로 돌아와 악틱 선라이즈호에 승선하여 배에 남아 있던 운동가 28명을 억류하고 선박을 무르만스크로 압송했다. 9월 24일 발표된 많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환경운동가들에 해적혐의가 적용될 것이 거의 분명했다. 그리고 10월 3일 환경운동가들이 전원 기소됐다.

이 사건을 두고 국제사회에서 벌어진 논쟁은 대부분 법적 논쟁, 그중에서도 사법권 논쟁으로 발전했다. 대개 유엔해양법 협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즉, 해적혐의 적용의 적절성과(혹은) 러시아 해양수비대가 감행한 그린피스 선박 승선 및 나포의 적법성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분명 많은 사람이 환경운동가들에게 해적 혐의를 적용하는 것이 정당한가를 놓고 논쟁하고 있다. (더욱 아리송한 부분은 2010년 러시아 석유 플랫폼을 점유했던 실제 소말리아 해적은 기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러시아는 관련 국제법이 너무 모호해서 기소하지 않았다고 했다.)

법적, 혹은 도덕적 평가가 어떻든 간에, 이런 행위들에는 비슷한 선례가 있다. 올해 2월만 하더라도 미국 상고법원은 고래사냥에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들을 해적으로 선언한 판결을 확정했다. 물론, 여기서 포경 반대 환경운동가들이 쓴 전술이 악틱 선라이즈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전에도 훨씬 강경한, 심지어는 끔찍하다고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운동에 대한 '방어'(라고 쓰고 '탄압'이라고 읽는다) 사례들이 있었다. 가장 악명높은 사건은 1985년 프랑스 정보기관 해외안전총국(DGSE)이 그린피스의 레인보우 워리어호(Rainbow Warrior)를 침몰시킨 일이다.

여기서 법적 사실이나 윤리적 사실들을 두고 – 혹은 그 해석을 두고 - 이견이 있었다면 이 사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라는 측면에서는 논쟁의 여지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비무장 상태의 활동가들이 총으로 위협받으며 무릎이 꿇려지고 영장 없이 연행되어 최대 15년 징역형이 선고될 수도 있는 혐의로 기소되는 광경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사회적으로 중대한 사안에 관심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바로 이런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고 믿을 만한 증거들이 상당히 많다.

러시아 밖에서는 환경운동가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다양한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45개국에서는 항의 시위도 열렸다. 수많은 해양·국제법 전문가들은 환경운동가 억류의 절차상 문제와 러시아의 결정을 비판하며 이번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계속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역시 환경운동가들에 대한 해적혐의 적용과 억류에 불만을 표시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러시아를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중재절차에 즉각 회부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췄다. 러시아 내에서도 가스프롬 모스크바 사옥 밖에서 시위가 열리고 공인들이 성명을 발표하는 등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물론 대다수의 의견은 아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조차 억류된 환경운동가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들이 해적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건들이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하지만 1930년 간디의 아마다바드 - 단디 행진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간디가 원한 것은 도중에 체포되는 것이었다. 1960년 내슈빌에서 일어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연좌농성 참가자들이 원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린피스 운동가들의 의중엔 그런 계획이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을 받는 비무장 시민 운동가들을 체포하는 것이 공권력에 유리하게 작용한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는 아주 많다. 물론 이번 사건이 어떻게 결론이 날 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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