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기회

빅토르 이샤예프 러시아극동개발부장관이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푸틴 대통령을 대신해 올 9월 상트 페테르부르크 G20 초청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빅토르 이샤예프 러시아극동개발부장관이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푸틴 대통령을 대신해 올 9월 상트 페테르부르크 G20 초청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우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기회는 놓쳤다. 소련 해체이후 러시아는 우리에게 좋은 협력국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 북방정책을 통하여 사회주의 국가와 수교에 성공하였지만 수교 이후 어떻게 접근하고 협력을 구체화시킬 것인지 결정하기에는 당시 우리의 외교역량은 충분하지 않았다. 러시아 역시 한국을 올림픽을 치룬 성공한 국가라는 이미지 이외 딱히 우리나라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후 오랜 기간 양국은 일정한 선을 넘어서는 협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또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우리의 외교역량은 G20, 핵 안보 정상회의를 유치하면서 한층 신장되었다. 또한 앞으로 2년 동안 UN 안전보장이사회에 비상임이사국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녹색성장을 도와줄 환경 분야의 세계은행인 녹색기후기금(GCF)의 사무국도 유치하였다.

이렇게 우리의 외교 역량이 한층 강화된 이 시기에 국제정세와 한반도 주변정세는 다시 크게 변화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보다 표면화된 미국과 중국 간 협력, 경쟁, 갈등의 다양한 양상은 오바마의 재집권과 시진핑의 시대가 열리면서 더욱 다양하게 전개될 것이다. 이러한 국제환경 변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우리에게 러시아, 특히 극동 시베리아 지역은 신북방정책의 가장 중요한 공간이 될 수 있다.

유럽의 재정위기가 당분간 계속될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신흥시장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왕이면 멀리 있어 접근성이 떨어지는 국가보다는 가까운 러시아는 우리에게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러시아도 유로-태평양 국가임을 천명하면서 유럽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아시아로 협력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정부 조직내 극동개발부를 신설하였고 시베리아·극동 개발 공사 창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극동과 시베리아 지역의 현대화 계획과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러시아의 에너지와 자원을 확보하고 우주항공 분야의 첨단기술이 필요하고 러시아는 우리의 IT기술과 생산성 향상 기술, 마케팅 및 자본력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상호보완적인 협력을 이루기위해서는 지정학적 위험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북핵 위기 등 지정학적 위기가 상존한다면 러시아의 극동지역 개발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조달은 불가능하다. 우리 역시 지정학적 위험이 높다고 한다면 러시아 에너지가 중동에서 들여오는 에너지 자원과 비교하여 안전하고 싸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극동·시베리아 지역은 남북러 경제협력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극동시베리아와의 철도 연결과 여기로부터의 에너지 운송로 확보는 북한 개방과 맞물려 있으며 동북 3성 개발의 협력 공간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러시아도 진정으로 강대국으로서 위상을 강화하고자 한다면 극동과 같은 변방을 더 이상 버려진 땅으로 놔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강대국의 변방은 세계로 나가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극동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으면서 서로의 이해관계를 절충하여 실현할 수 있는 한국은 러시아의 에너지 다각화와 신동방정책의 핵심 축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다시 찾아온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나라와 러시아 양국은 협력의 폭과 깊이를 더할 수 있도록 협력을 제도화하여야 한다. 협력의 제도화는 양자 형태도 좋고 다자간 형태도 좋다고 생각한다. 한·러 교류기금을 만들어 양국 간 기술협력을 지원해도 좋으며 동북아 개발은행을 창설하여 극동, 창지투, 북한 개발 협력에 주요 이해관계자들을 모두 참여시키는 방안도 좋다. 이렇게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노력이 있어야 협력의 위험은 낮추면서 그 효과는 배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행되어야 동북아 지역의 닫힌 공간들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동북 3성은 태평양으로, 극동시베리아는 아시아로, 북은 남으로, 남은 북으로 또 대륙으로. 그래야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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