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도자기 300년사

러시아에서 가장 역사 깊은 ‘황실도자기공장(Императорский фарфоровый завод)’이 270주년을 맞는다. 공장 장인들의 작품은 세계 최고의 박물관, 소더비 경매장과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볼 수 있으며, 황실도자기공장의 도자기 세트는 세계 각국 정상들이 참여하는 국제회의의 테이블을 장식하고 있다.

(사진제공=아나토리 메드베드)

제조법 입수부터 생산까지

황실도자기공장은 1744년 표트르 대제의 딸인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 여제의 명령에 의해 세워졌다. 엘리자베타 여제는 도자기 생산을 위해 색슨계 전문가 크리스토프 훙어(Christopher Hunger)를 데려왔다. 그의 보조는 러시아 최초의 화학자 중 하나이자 저명한 러시아 학자 미하일 로모노소프의 동료인 드미트리 비노그라도프로 정해졌다.

크리스토프 훙어는 사기꾼으로 밝혀졌다. 러시아식 도자기를 개발하는 것은 고사하고 심지어 독일 도자기를 재현해내지도 못했다. 겨우 찻잔 6개를 만들어냈으며 그나마 품질이 형편없었다. 1746년 가을 그는 직위에서 해제됐고, 공장 운영은 비노그라도프에게 맡겨졌다.

황실도자기공장 제품은 러시아와 구소련 공화국들은 물론 몇몇 유럽과 미국 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탈린과 파리, 밴쿠버와 뉴욕에 매장이 있다. 곧 오스트리아 빈에도 개점한다. 파리의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과 '프랭탕' 백화점 등 유럽 유수의 백화점에도 상트페테르부르크산 도자기가 진출해 있다.

비노그라도프는 1747년 1월이 되자 벌써 귀중한 도자기 제조법을 알아냈다. 어떻게 몇 달 만에 유럽과 중국이 철저하게 지켜온 비밀을 밝혀낼 수 있었을까? 역사가 콘스탄틴 피사렌코가 쓴 바에 따르면 제정러시아 군대의 알렉세이 블라디킨 준위가 중국에서 비밀을 빼내왔다고 한다. 그는 중국어에 능통했으며 무역(그리고 물론 정보수집도)을 하면서 중국 대신들과 교류했다. 블라디킨 준위는 이미 1741년에 중국의 서책에서 도자기 제조의 비밀을 알아냈으나, 1746년에야 그것을 러시아에 전할 수 있었다. 도자기는 비노그라도프가 지휘하는 공장에서 바로 블라디킨이 가져온 제조법에 따라 생산되기 시작했다. 찻잔의 품질이 중국 것보다 못하지 않았다. 러시아 도자기 발명가라는 명예는 비노그라도프에게 돌아갔으나, 블라디킨의 공도 잊혀지지는 않았다. 군대에서 진급했으며 다음 중국행 무역단의 대표로 임명됐다.

도자기 묘지와 도자기 지하철역

약 300년 동안 황실도자기공장의 면적은 5.5 헥타르까지 확대됐으며 지역의 명칭에도 영향을 끼쳤다. 공장 옆에는 '도자기역(станция Фарфоровская)', '도자기 묘지(Фарфоровское кладбище)', '도자기 육교(Фарфоровский путепровод)'가 있다. 가장 가까운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역의 이름 또한 이 공장을 기념하여 '로모노솝스카야(Ломоносовская)'라 지어졌다(소련 시절 공장 이름이 '로모노소프도자기공장'으로 바꿨었다).

타티야나 틸레비치 황실도자기공장 대표이사가 밝힌 것처럼, 현재 공장에는 약 1,200명이 일하고 있다. 연질자기(동물상 ), 경질자기 및 본차이나 공장 등 세 생산시설이 가동되고 있다. 본차이나를 재료로 한 제품들은 매우 얇아 말 그대로 빛이 투과될 정도다.

황실도자기공장의 유럽 주요 경쟁사는 영국의 '웨지우드(Wedgwood)'와 독일의 '마이센(Meissen)'이다. 그러나 이 회사들은 이미 오래 전 생산시설은 동남아 국가들로 이전하고 유럽에는 브랜드와 디자인만 남겨뒀다. "황실도자기공장은 생산시설을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유럽브랜드 중 하나다." 타티야나 틸레비치 회장이 말한다. "우리 제품은 이미 270년 동안 생산되고 있는 이곳과 분리할 수 없다." 그러나 운영과 기술장비, 노동력이 러시아 국적이라면 원료는 해외, 즉 우크라이나에서 들여온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관계가 위기를 맞자 공장은 원료를 1년치 미리 구매해야 했다. "우리는 이 분쟁이 조속히 해결되길 바라며 지켜보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매장 몇 개가 있었는데, 현재는 운영을 중단했다. 매장 경영자들은 앞으로도 협력하길 바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다." 틸레비치 대표는 말했다.

무엇이든 만들어 내는 장인들

황실도자기공장의 메인 아티스트 넬랴 페트로바는 이곳에서 40년을 일하면서 도자기에 이력이 난 지는 오래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자기가 굉장히 변덕스러운 재료라고 털어놓는다. 13~14% 수축된다는 점, 굽는 동안 일어날 수 있는 변형을 고려해야 하고, 물론 안료에 따라 굽는 온도가 다르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도자기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어 식탁이나 샹들리에가 있다. 우리 공장에는 도자기 조각들로 한 벌의 드레스를 만드는 재주를 지닌 아티스트가 있다." 페트로바가 말한다. "도자기라는 재료는 장식품을 위해서가 아니면 쓸모가 없다. 너무 깨지기 쉽기 때문이다."

장인들에게는 그들만의 업계용어가 있다. 유약이 발려있고 안료를 칠하지 않은 백색 도자기는 '속옷(бельё)'이라고 한다. 유약을 입히지 않은 도자기는 '스폰지케이크(бисквит)'라 하며, 묽은 진흙은 '실리케르(шликер, 독일어로 점토액을 의미하는 Schlicker을 차용)'이라고 한다. 점토액은 색깔과 농도가 코코아와 비슷하다. 이 점토액을 구멍이 있는 석고 거푸집에 붓는다. 하나의 작품에는 여러 개의 거푸집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머리 주조를 위한 거푸집, 몸통 주조를 위한 거푸집... 이런 식이다. 점토액이 굳으면 각 부분을 하나로 합쳐 가마로 보낸다.

가마에 들어가지 전 찻잔과 찻접시의 문양은 완전히 검은 색으로 보이나, 수 시간 가마에서 고통을 견디고 나면 황금색이 된다. 이 금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 빛을 잃지 않는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깨지기 쉬움에도 불구하고, 도자기는 수백 년 세월에도 살아남으며 그 모든 화려함과 굴곡을 유지하며 역사의 시험을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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