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볼쇼이극장에 관해 잘 모르는 사실 5가지

볼쇼이 극장의 공보실
금년 3월 28일은 볼쇼이 극장 개관 240주년이 되는 날이다. Russia포커스가 리디야 하리나 볼쇼이극장 박물관 관장에게서 러시아 대표 극장의 역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들어 보았다.

대중극장 설립 입찰

볼쇼이 극장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1776년 3월에 시작된 것으로 간주된다. 표트르 우루소프 공작이 예카테리나 여제에게서 모스크바에 대중극장을 개관할 수 있는 허가를 받은 것이 그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1766년에 예카테리나 여제가 궁중극장이 아닌 대중극장 설립을 위한, 오늘날로 말하면 입찰공고 같은 것을 공표했다는 사실이 최근에야 확인됐다. 당시 제출된 신청서는 4개였다. 하나는 프랑스인이, 두 개는 이탈리아인들이, 나머지 하나는 러시아인인 니콜라이 티토프가 제출했다. 티토프의 신청서가 선정됐고 야우자 강가에 있는 ‘오페라회관(Оперный дом)’이 그에게 제공됐는데, 1766년 2월 이곳에서 첫 공연이 이뤄졌다. 볼쇼이극장의 역사도 바로 이 ‘오페라회관’에서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다.

(사진제공=볼쇼이 극장의 공보실)(사진제공=볼쇼이 극장의 공보실)

외국인 보스들

3년 후 티토프는 세금 때문에 사실상 파산하여 황실이 부여한 극장운영권을 매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운영권은 이탈리아인 벨콘티와 친티에게 팔렸고 2년 후에는 또 다른 이탈리아인인 그라티에게 되팔렸다. 그리고 5년 후에야 비로소 우루소프 공작의 차례가 왔는데, 바로 그로부터 오늘날 볼쇼이극장의 역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우루소프가 지은 건물은 개관도 하기 전에 화재로 전소됐고 우루소프는 황태자 파벨 페트로비치에게 과학을 가르쳐주기 위해 초빙돼 온 옥스포드대학교의 수학자인 영국인 마이클 메독스에게 사업을 매각키로 결정했다. 오늘날 볼쇼이극장이 서 있는 자리에 부지를 선정해 3층짜리 벽돌 건물을 지은 것이 바로 메독스다. 극장은 1780년 12월 30일 성대하게 개관했다.

‘박수꾼’들

메독스의 극장은 약 1천 석의 객석과 무대, 오케스트라 악단석을 포함하고 있었다. 무대 바로 위에는 칸막이로 이뤄진 특별석이 마련돼 있었는데, 이곳에는 거의 모두가 귀족으로 이뤄진 ‘애호가’들이 앉아 있었다. 바로 이들이 관객들에게 신호를 줬다. 예를 들어 이들이 손가락 두 개를 보여주면 모두가 큰소리로 박수 갈채를 보냈다. 필시 이들은 오늘날 박수꾼들의 선조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볼쇼이를 철거하라”

1918년 블라디미르 레닌은 볼쇼이극장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페라가 부르주아 예술이고 관리 비용이 많이 드는데다 예술가들은 거만하고 돈만 원한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볼쇼이 철거를 막은 것은 이오시프 스탈린과 소련 초대 문화부 장관이라 할 수 있는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였다.

소비에트식 뮤즈

(사진제공=볼쇼이 극장의 공보실)(사진제공=볼쇼이 극장의 공보실)

‘아폴론과 뮤즈’라는 제목의 벽화가 그려진 볼쇼이 극장 천장은 19세기 중반에 거장들이 완성했다. 하지만 1940년 소련 당국은 뮤즈를 ‘소비에트 노동자 스타일’로 다시 그리기로 하고 그림 공모전을 개최했다. 공모전에는 예브게니 란세레(Евгений Лансере)와 콘스탄틴 유온(Константин Юон) 같은 유명 화가들이 대거 참가했다. 2차 세계대전 초에는 이 천장이 폭격 피해를 입어 복원해야 했는데, 파벨 코린이 그린 ‘여자 농부들(Крестьянки)’이 새로운 뮤즈들로 천장에 등장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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