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나 나호바…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러시아 대표 인터뷰

(사진제공=Press photo)

(사진제공=Press photo)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5월 9일 일반에 개방된다. 처음으로 여성 예술가 팀이 러시아관을 제작하고 있다. 러시아관 커미셔너(기획운영책임자) 스텔라 케사예바(Стелла Кесаева)가 개념주의 미술가 이리나 나호바(Ирина Нахова)와 미국 큐레이터 마르가리타 투피치나(Маргарита Тупицына)를 비엔날레 작업에 초청했다. 소련 미술가 중 최초로 모스크바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 직접 ‘총체적 설치(total installation)’를 선보인 예술가가 바로 나호바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개막을 앞두고 이리나 나호바가 Russia포커스에 베네치아 프로젝트와 자신의 작업, 그리고 국제적 커리어에 관해 말했다.

- 베네치아 프로젝트는 어떤 프로젝트인가?

"'녹색관(Зеленый павильон)'이라는 명칭은 마르가리타 투피치나가 생각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이 명칭은 매우 중립적이어서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는다. 모든 줄거리를 숨겨두고 있지만,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것이 관람객들이 보게 될 첫번째다. 최근 몇 년간 전시관은 마른 샌드케이크 색이었다. 일년 전 처음으로 전시관을 봤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색깔이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후 역사가들과 이야기를 해 보니 원래는 녹색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건축가 알렉세이 슈세프(Алексей Щусев, 1873~1949) 본인이 그렇게 고안한 것이다.

이라나 나호바 (사진제공=Press photo)
이라나 나호바 (사진제공=Press photo)

안에 무엇이 들어갈지는 아직 비밀이다. 슈세프와 '협력'한 총체적 설치물이 된다는 것만 말할 수 있다. 나에겐 그와 나눈 대화가 있다."

- 최초의 총체적 설치를 본인의 아파트에 했다. 이유는?

"사실상 내가 그것을 제작한 이유는 절실한 필요에서였다. 스스로에게 다른 공간을 창조해줌으로써 당시의 끔찍한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 어떻게 모든 것이 시작됐나?

"모든 일은 내가 13세때 시작됐다. 나는 개념주의 미술가 빅토르 피보바로프(Виктор Пивоваров)와 그의 가족을 알게 됐다. 우습게도, 나는 거기서 그의 갖난 아들 파샤 페페르시테인(Паша Пеперштейн)을 안고 있었는데 30년 후에는 그와 함께 런던 전시회에 참가하게 됐다. 당시 나는 빅토르 피보바로프의 작품에 큰 인상을 받았다. 매우 신선하고 독특했다. 그는 나를 자신의 그룹에 들어오게 했고, 수많은 미술가와 작가를 소개해 주었다. 다름 아닌 그와의 만남이 나의 미술가로서의 장래 운명을 결정했다.

내 아파트에 설치한 작품에 얽힌 이야기는 1980년대 초반에 시작됐다.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고 있다. 방의 크기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다. 3.95m*3.95m다. 그림을 많이 그렸지만, 나를 항상 흥분시키고 흥미를 갖게 만든 것은 공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첫 설치물을 나 개인을 위해, 종이와 물감으로 만들었다. 서로 이어붙인 거대한 와트만지(두꺼운 고급 도화지) 위에 회화를 통해 나를 둘러싼 공간을 확장시킨 것이다."

- 당신의 첫 개인전은 뉴욕에서 열렸다. 어떻게 뉴욕에 가게 됐나?

"1988년 모스크바에서 처음으로 소더비 경매가 열렸다. 그곳에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와 현대 작가들이 있었다. 절충주의적 컬렉션이었다. 나는 가장 젊은 참가자 중의 하나였다. 그때는 이 전시회가 예술과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매우 의심스러웠고, 일종의 정치적 제스처라고 생각했다. 폐쇄된 국가에 서양 수집가들과 박물관 관계자들이 많이 왔으니까. 유명한 미국 갤러리스트 필리스 카인드도 있었다. 그녀는 작품을 마음에 들어했고, 러시아 작가들을 자신의 뉴욕 갤러리에서 선보였다. 에리크 불라토프도 있었고, 나도 있었고 다른 작가들도 있었다."

- 개념미술 이후 예술사에 새로운 경향이 탄생했다고 보는가?

"좋은 질문이다. 물론이다. 매우 많다. 예를 들어 도시의 정치적 행동주의, 도시 예술이 있다. 도시에 개입하고 플래시몹을 펼치고 벽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 등 다양한 미술가들이 있다. 개념미술은 1960년대에 단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깊은 내면적 필요와 본질이 있었다. 그러나 아마도 현재 그러한 필요성이 회귀하고 있는 것 같다."

This website uses cookies. Click here to find out more.

Accept cook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