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 부산까지 48일간의 여정

(사진제공=슬라바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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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인 1864년 1월, 한국인 14가구(65명)가 처음으로 조선의 북부 지방에서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에 왔다. 오늘날 15만 명 이상의 후손이 러시아 전역에 걸쳐 살고 있고, 30만 명 가량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의 구소련 공화국에 거주하고 있다. 고려인 자동차 랠리 경로는 바로 이 국가들을 통과하도록 짜여졌다. 랠리팀은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48일만에 여러 국경을 통과해 한반도에 왔고, 비애의 38선을 지나 한반도를 종단했다. 이렇게 특별한 방식으로 고려인들은 선조의 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기념한 것이다.

랠리는 7월 7일 모스크바에서 이고리 슬류냐예프 지역개발부 장관이 깃발 신호로 공식출발을 알리면서 시작됐다. 15,000km가 넘는 대 여정이 참가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일곱 팀이 출발했고, 중간에 세 팀이 더 합류했다. 총인원은 40명이었고, 고려인과 러시아인뿐 아니라 한국인과 외국인도 섞여 있었다.

랠리 루트는 니즈니노브고로드, 사마라, 타시켄트, 비슈케크, 알마아타, 노보시비르스크, 크라스노야르스크, 이르쿠츠크, 블라디보스토크 등 고려인이 많이 사는 큰 도시와 고려인 역사에 의미있는 장소들을 통과했다. 랠리팀은 카자흐스탄에서 독립운동의 영웅 홍범도와 계봉우의 묘를 참배했다. 고려인이 영원히 기억할 카자흐스탄의 우시토베 시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1937년 소련 당국이 강제이주시킨 고려인들을 태운 열차가 지나갔던 도시이기 때문이다.

(사진제공=슬라바 리)
(사진제공=슬라바 리)

이곳은 2차 대전 당시 고려인 젊은이들이 전쟁터와 노동전선으로 실려간 곳이기도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11명의 동지들과 이토 히로부미의 처단을 맹세했던 장소를 방문했다.

타시켄트에서는 랠리 덕분에 같은 홀, 같은 테이블에서 남북한 외교관이 만나는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다. 단순히 만나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함께 랠리 참가자들을 축하하고, 한국 노래와 러시아 노래를 불렀으며, 참가자들의 건강과 한반도 통일을 위해 건배했다. 행사 막바지에는 빅토르 박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협회 회장이 남북 외교관의 손을 잡고 기념사진을 찍음으로써 남북한 대표가 상징적으로 하나 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랠리 중에 정말 친해져서 여행이 끝날 무렵엔 서로가 한 가족 같았다고 말했다. 성대한 환영식과 아름다운 자연, 역사적 명소뿐 아니라 상태가 나쁜 도로나 악천후, 엄청난 피로도 함께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운전사 예브게니 자우에르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 이틀 정도는 보통 질서정연하다. 다른 운전사의 운전 습관이나 특징을 익히면서 약간 긴장한 채 운전했다. 그 후엔 편해진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밤에 이동하는데, 먼지는 일고, 보이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고, 시속 5, 10km로 가는 데다 주위엔 마을은커녕 불빛 하나 없어 고생했다. 하지만 아침에는 다들 어려움을 모두 이겨내고 먼지투성이에 지치긴 했어도 뿌듯하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러시아 한인 이주 150주년 기념 국제 자동차 랠리가 성공리에 끝났다.
(사진제공=슬라바 리)

여정 34일째인 8월 9일, 러-한 국경에 다다른 참가자들은 감회가 새로웠다. 언젠가 선조들이 러시아로 떠나왔던 곳인 여행의 최종 목적지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후에 만찬에서 참가자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두만강을 건너 한국을 떠났고, 지금 우리는 150년이 지나 이곳에 왔다. 그때 선조들은 두만강을 눈물의 강이라 불렀지만, 우리에게 이 강은 기쁨과 귀환의 강이다."

8월 16일도 랠리 여정에 있어 커다란 분기점이었다. 북한 구간 이동을 마치고 38선을 지날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랠리팀도, 이들을 맞는 사람도 모두 긴장했다. 랠리팀 단장 에르네스트 김은 연설에서 "우리는 랠리를 통해 남북한이 평화 대화에 이를 수 있도록 이바지하려 노력한다. 자동차 랠리는 민족 의지의 상징이며, 커다란 민간 외교적 사명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38선에서 랠리 팀을 맞이한 이해찬 의원은 누구든 자유롭게 한반도 남북을 왕래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8월 23일, 여정 시작 48일 만에 자동차 랠리는 동해항에서 성대하게 막을 내렸다. 이번 랠리는 어디에 살고 있건 한국인들의 통일에 대한 뜨거운 염원을 잘 보여준 특별한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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