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들의 이름과 그 의미

(일러스트=니야즈 카리모프)

(일러스트=니야즈 카리모프)

러시아 도시명에는 대부분 흥미로운 일화와 굳어진 이미지, 때로는 정치적 맥락이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 지명은 격동적인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두세 번씩 이름이 바뀐 도시도 있는데, 볼고그라드도 그 중 하나다. 1990년대 들어 1925년부터 1961년까지 쓰였던 명칭인 스탈린그라드로 도시 이름을 바꾸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얼마 전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법에 따르면 이는 연방주체와 지방자치단체가 결정해야 할 일이다. 볼고그라드의 경우 주민들이 총투표를 실시해 도시명을 선택해야 한다"고 밝혔다.

볼고그라드 개칭 문제에는 열성적인 찬성파와 그에 못지않게 강경한 반대파가 있다. 찬성파는 스탈린그라드라는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 민족이 세운 공적을 기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파는 잔혹한 폭군이자 독재자로 평가되는 스탈린을 복권하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에 개칭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300년 이상 도시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던 '차라친'이라는 옛 이름을 사용하는 방안은 검토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바로 옛 이름이 쓰이는 곳이다. 1차 대전 전까지 네바 강변의 도시는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불렸다(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18세기 이 도시를 건설한 표트르 대제가 아닌, 성 베드로의 이름을 딴 것이다). 1차 대전이 발발하자 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은 '독일색'이 빠지고 '러시아화' 되면서 페트로그라드로 바뀌었다. 그러나 10년 뒤, 러시아 혁명을 이끈 레닌이 사망하자 도시명은 다시금 레닌그라드로 바뀌었고, 1990년대 초부터는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되었다.

공산주의 지도자가 사망한 뒤 도시를 개칭하는 경향은 20세기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까지 오르조니키제, 쿠이비셰프,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라는 도시가 있었다. 지금도 키로프, 칼리닌그라드(옛 쾨니히스베르크)라는 도시를 지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의 이름을 딴 톨리야티라는 도시도 있다. 이 곳은 소련시절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 '피아트'의 한 차종을 모델로 한 승용차 '지굴리' 공장이 설립된 곳이다.

모스크바와 관련한 관용구로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Москва слезам не верит)'라는 말이 있다. 의지가 강하고 실패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만이 모스크바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모스크바에서 성공을 거둔 세 시골 여자의 이야기를 다뤄 1980년 오스카상을 수상한 영화 제목도 바로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이다.

키예프는 지리적으로 멀고, 가는 길이 어렵지만 여차여차하면 찾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이미지로 민담에서 굳어졌다. '물어 가면 키예프라고 못 가랴(Язык до Киева доведет)'라는 속담이 있다.

'파리를 보고 죽다!(Увидеть Париж и умереть!)'라는 말이 있듯이 파리는 요원한 목적지이자, 이룰 수 없는 '이상'이었다. 지금은 파리에 가기 훨씬 쉬워졌기 때문에, 파리를 보고나서 죽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리우데자네이루도 '12개의 의자(Двенадцать стульев)'라는 유명한 소설 덕분에 이미 백 년 가까이 굳어진 이미지를 갖고 있다. 낭만적인 모험가인 주인공 오스타프 벤데르가 쓸쓸한 러시아 시골 마을에 도착해서 하는 말 "아니, 여기는 리우데자네이루가 아니야..." 덕분인데, 이 표현은 러시아인의 의식 속에 하나의 밈(meme)으로 자리잡았다.

러시아 도시 중에는 외국 도시와 이름이 비슷한 곳도 있다. 벨고로드와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흰 도시'), 리페츠크와 독일의 라이프치히('보리수의 도시')가 그 예다. 미국 지역명 가운데는 모스코우와 세인트피터스버그처럼 러시아 도시와 이름이 아예 같은 곳도 있다. 러시아에는 명칭은 다르지만 의미가 같은 도시들도 있다. 오룔과 흑해의 휴양도시 아들레르는 둘 다 러시아어와 독일어로 '독수리'라는 뜻이다.

소련 해체 이후 옛 소련 공화국들의 수도명과 관련해 여러 해프닝이 벌어졌다. 카자흐스탄에서 알마아타가 아무런 소란 없이 알마티로 개칭된 반면,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표기 문제를 놓고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소련 시절에는 Tallin(Таллин)으로 마지막에 n을 하나만 썼다. 그런데 에스토니아는 독립 이후 수도명을 Tallinn으로 표기하기 시작했으며, 러시아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표기할 것을 요구했다. 이 요구는 몇 년 뒤 러시아가 기존의 표기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할 때까지 지켜졌다. 글자 하나가 언어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된 것이다.

2008년, 조지아의 일부였던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가 러시아-조지아 전쟁 이후 독립을 선포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두 공화국 모두 수도의 이름을 개칭하겠다고 선언했다. 압하지야는 수후미를 수훔으로, 남오세티야는 츠힌발리를 츠힌발로 바꾸었다(여기서 어미 '이'는 지명을 조지아식으로 만들기 위해 붙였던 것). 하지만 조지아는 지금도 이 도시들의 명칭 끝에 '이'를 붙인다. 이 또한 중요한 정치적 문제가 되었다.

또 하나의 언어·정치학적 논란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다. 정확하게는 도시가 아닌 한 나라에 관한 문제다. 러시아어로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말할 때는 '브 아메리케(в Америке, 미국에서), 브 게르마니이(в Германии, 독일에서), 프 키타예(в Китае, 중국에서)' 처럼 '브(в)'라는 전치사를 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에 대해 말할 때는 항상 '나 우크라이네(на Украине)'라는 표현이 굳어져 있다. '나'는 '나 우랄례(на Урале, 우랄에서), 나 쿠바니(на Кубани, 쿠반에서), 나 달녬 보스토케(на Дальнем Востоке, 극동에서)' 처럼 러시아 지역명과 함께 쓰이는 전치사라는 점에서 '브'와 어감의 차이가 있다. 지금도 어떤 방식이 옳은지 일치된 의견은 없다. 언어학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써 온 방식인 '나 우크라이네'가 옳다고 생각하고,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그렇게 쓰는 것이 새로운 정치적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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