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고령 배우들의 젊음 유지 비결

블라디미르 젤딘 (사진제공=리아 노보스티)

블라디미르 젤딘 (사진제공=리아 노보스티)

얼마 전 99세 생일을 맞은 세계 최고령 배우 블라디미르 젤딘은 무대에서 연기뿐 아니라 춤까지 소화한다. 젤딘을 비롯한 고령 배우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그런 활기와 젊음을 황혼기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 의아해진다. 그리곤 이런 결론에 이른다. 이들은 일을 놓지 않고 관객의 사랑을 받은 덕분에 건강과 활기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세 명의 유명한 러시아 배우와 한 고령 영화 감독의 삶을 들여다보자. 이들은 각기 다른 운명을 살았고, 맡은 배역이나 성격도 모두 다르다.

만인의 연인

블라디미르 젤딘(В. Зельдин)은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는 비법을 숨기지 않고 얘기해준다. 금연과 절주, 소식, 자신을 혹사하지 말 것, 주위 사람들과 부딪히지 말 것, 여자를 사랑할 것. 바로 이것이 비결이었다. "나는 늘 사랑에 빠져 있다. 내가 활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그 덕분이다."

수많은 증언에 따르면, 젤딘은 100살에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여자들에게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젊은 시절 그는 무용학교에 입학하려고 했지만, 심장이 약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평생 춤을 췄고 99세라는 나이에도 '선생님과 춤을(Танцы с учителем)'이라는 연극 무대에 서고 있다.

젊은 시절 젤딘은 사랑에 빠지는 남주인공 역할을 도맡아 했다. 그의 출연작 중에서는 이반 피리예프(И. Пырьев) 감독의 '돼지치기 처녀와 목동(Свинарка и пастух)'이 가장 먼저 히트 쳤다. 이 뮤지컬 코미디 영화를 찍은 때는 1941년으로,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직후였다. 그러던 중 젤딘은 전방으로 징병되어 전차학교로 보내졌다. 하지만 곧 촬영장으로 복귀했다. 인민의 사기를 높여줄 코미디 영화 촬영을 계속하라는 명령을 스탈린이 친히 내렸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젤딘은 모스크바에서 열린 농업 박람회에서 돼지 치는 러시아 여인을 보고 정신 없이 사랑에 빠지는 다게스탄 출신의 양치기 목동 역할을 맡았다. 유대인인 젤딘이 러시아 농촌여자를 사랑하는 캅카스 출신 무슬림을 연기한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의 두 남녀는 소비에트 시민이었다. 그들 사이에 문화적 차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할 수도 없었다.

독재자 감독

유리 류비모프 (사진제공=이타르타스)
유리 류비모프 (사진제공=이타르타스)

영화 감독 겸 배우인 유리 류비모프(Ю. Любимов)는 얼마 전 96세를 맞이했다. 그는 스탈린 시대의 행복한 농촌 사람들을 그린 유명한 뮤지컬 코미디 영화 '쿠반의 카자크인들(Кубанские казаки)'에 출연했다. 이 영화가 제작된 시기는 전쟁 직후로 나라 전체가 굶주릴 때였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라에 밝은 분위기가 필요한 시기에 피리예프 감독이 축제 분위기를 낸 것이다. 영화 속 농민들은 불과 얼마 전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모두 풍요롭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1960년대에 류비모프는 소련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되는 타간카 극장(Театр на Таганке)을 설립한다. 정치적 색채가 짙은 작품을 주로 무대에 올리던 이 극장의 공연 표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극장 앞에 선 줄이 수 킬로에 달한 적도 있었다. 류비모프는 정권과의 지속적인 충돌에도 굴하지 않고 굳건히 자기의 노선을 지켰다. 그러다 1984년 소련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이후 그는 5년간 전 세계 무대에 연극을 올렸다. 밀라노의 라스칼라 극장과 런던의 코벤트가든, 파리의 그랑 오페라 등 유명 극장에서 그의 공연이 상연됐다. 그러다 4년 후 자유주의자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에 러시아로 돌아왔다.

2010년에는 류비모프와 극단 단원 사이에 충돌이 빚어졌다. 류비모프가 93세일 때였다. 당시 문을 박차고 극장을 나온 류비모프는 극장으로 복귀해달라는 오랜 설득을 고사했다. 그는 현재 96세로 볼쇼이극장과 바흐탄고프 극장 등 유명 극장에서 공연 연출을 계속하고 있다.

위대한 코미디언

블라디미르 에투시 (사진제공=이타르타스)
블라디미르 에투시 (사진제공=이타르타스)

블라디미르 에투시(В. Этуш)는 현재 91세이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바흐탄고프 극장에서 잘 나가는 배우이고 연극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에투시는 소련 시절을 대표하는 유명한 코미디 영화인 '캅카스의 여자 포로(Кавказский пленница)'(1966), '12개의 의자(Двенадцать стульев)'(1971), '이반 바실리예비치 직업을 바꾸다(Иван Васильевчи меняет профессию)'(1973)에 출연한 에투시다. 이 영화들은 당시로서는 신세대 코미디 영화로, 초기 할리우드 영화와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프랑스의 '누벨 바그'에 영감을 받은 소련 감독들이 1950년대 말부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영화를 찍으면서 탄생했다. 지금 스탈린 시대의 코미디 영화를 보면 구닥다리로 느껴지지만, 1960년대에서 70년대 초 코미디 영화는 지금 봐도 충분히 현대적이다.

에투시는 장수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매일 케피르를 마신다"고 농담 섞인 대답을 한다. 그는 전쟁이 발발하자 전방에 자원해 출전했다. 그는 용맹치하훈장도 받았다. 에투시가 훈장을 받을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영화에서와 같이 그런 성대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우리는 적을 공격하는 중이었다. 내 옆에서 같이 돌격하던 연대장이 내게 훈장을 건네며 말했다. '에투시! 네가 받은 훈장이니 나나 네가 아직 살아있을 때 가져가라'고."

당대의 영웅

알렉세이 바탈로프 (사진제공=PhotoXPress)
알렉세이 바탈로프 (사진제공=PhotoXPress)

1981년 소련 영화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Москва слезам не верит)'가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차지했다. 이 영화에서 알렉세이 바탈로프(А. Баталов)는 지식인 노동자이자 모든 방면에서 이상적인 중년 남성 고샤라는 주인공을 연기했다. 그때는 모든 소련 여성이 그의 매력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바탈로프가 스타 반열에 오른 것은 이 영화가 나오기 훨씬 전으로, 소련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인 1958년 출연작 '학이 난다(Летят журавли)'가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이다. 그는 현재 85세이다.

Moscow does not believe in tears (동영상제공=YouTube)

1960년 바탈로프는 안톤 체호프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Дама с собачкой)'에서 주연을 제의받았다. 그런데 캐스팅이 거의 확정되는 순간 영화 고문이 바탈로프가 안짱다리 걸음을 걷는 걸 보고 체호프가 살던 시기에는 그렇게 걷는 사람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바탈로프는 이 영화에 너무나 출연하고 싶은 나머지 자신의 걸음걸이를 바꾸겠다고 맹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의 걸음걸이는 바뀌지 않았다. 크림 반도의 얄타 시에서 촬영을 준비하던 중 분장한 바탈로프에게 한 연로한 지역민이 달려와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진짜 체호프 같군요. 모자하며 걸음걸이 하며..." 이 일이 있은 뒤로 그의 걸음걸이를 문제 삼는 이는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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