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인을 일중독자라 할 수 있는 이유

위기가 발생하면 러시아에서는 제일 먼저 일자리가 아니라 월급을 줄인다. 러시아인은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자아실현이 아니라 월급을 꼽는다. 그렇지만 러시아인의 75%는 풍족하게 살 돈이 있어도 계속 직장에 나갈 것이다. 그것도 아마 다니던 그 직장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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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스파스크 시의 노동자 출처 : 비탈리 안코프/ 리아노보스티

러시아인들은 평생 먹고 살 돈이 생기더라도 일을 할 작정이다. 러시아 여론조사기관 ‘프치옴(ВЦИОМ)’의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다해도 일을 계속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러시아인의 3/4가 넘는 79%가 그렇다고 답했다. 게다가 이들 중 60%는 하던 일을 계속 하겠다고 했다.

이는 러시아인에게 돈은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다. 설문 결과를 보면 러시아인에게는 자아실현이나 사회보장이 아닌 바로 월급이 일을 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이기 때문이다.

왜 돈인가?

사회학자들은 조사 결과를 요악하면 러시아인의 의식에서 정직한 노동(일의 과정 자체가 만족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은 소득의 크기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프치옴의 사회학자 율리야 바스카코바는 조사 결과를 “노동이란 돈벌이와 생존의(번영이 아니라) 수단이며, 자아실현은 부차적인 것이다. 러시아인 대부분에게 일에서 얻는 만족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일의 내용이 아니라, 월급과 타성이다. 노동자 대부분은 자녀가 자신과 같은 분야에서 경력을 쌓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논평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사회학연구소 개인성연구부장이자 고등경제대학 대중의식비교연구실 실장 블라디미르 마군은 “러시아인의 경우 월급은 실제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바로 이 면에서 러시아인은 고용보장이나 일에 대한 흥미를 최우선으로 두는 유럽인과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마군 실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는 노동시장의 특성과 된다”고 설명했다. 상황의 변화, 특히 위기가 일어나면 러시아에서는 맨 먼저 일자리가 아니라 월급을 줄인다는 것이다.

마군 실장은 “기업은 더 적게 생산하기 시작하고, 구매도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듯 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적극적인 급여 삭감을 통해서다. 여기서는 해고될 확률이 월급이 깎일 확률보다 훨씬 낮다. 이러한 모델은 수 십 년 전, 시장경제 도입과 함께 그리고 1990년대 개혁 이후에 정착됐다. 오랜 포스트소비에트 시기 동안 고용주는 물론 노동자도 이러한 비즈니스 규칙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다름 아닌 월급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상식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군 실장에 따르면 유럽의 상황은 반대다. 월급에 절대로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에, 시장에 변화가 일어날 경우 사람들은 해고당하지만 임금을 많이 깎거나 회사가 성공한다고 올릴 수는 없다.

어떤 일이든 좋다?

프치옴이 내린 (돈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일하겠다는 79%에 관한) 결론에 모든 전문가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가 1990년대 말부터 참여하고 있는 국제사회조사기구(International Social Survey Program, ISSP)의 자료에 따르면 풍족한 삶을 살 돈이 있어도 일하겠다고 하는 러시아인은 약 40%이며, 이를  종합해 보면 ‘돈이 필요 없다면 일할 필요도 없다’는 입장으로 귀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러시아인은 전반적으로 일을 계속하려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그 일이 바란 만큼의 돈을 벌어주지 못하거나, 반대로 더 이상 돈이 의미 없을 경우에도 말이다.

이유는 실업에 대한 강력한 공포에 있다. 마군 실장은 “러시아의 실업률은 낮게 나오지만, 많은 이가 실업을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러시아 통계청 공식 자료, 즉 직업안정기관에 등록된 자료를 보면 2016년 말 기준 러시아의 실업자는 430만명이며 실업률은 5.6%다.

러시아에서 실업급여로 살아가기란 매우 어려우며 아예 불가능할 때도 있다. 실업급여 최소금액은 850루블(15달러), 최대금액은 4900 루블(86달러)이다. 게다가 실업이 되면 사람들은 불안해지고 위축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던 일을 놓지 않겠다는 또 다른 큰 이유는, 사회에 뿌리 박힌 ‘개인의 적극성이 아니라 인맥, 운, 외부 상황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인식이다.

프치옴의 설문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여성 및 월급이 적은 사람들의 경우 남보다 일을 더 하고 잘 해도 돈을 더 벌지 못한다는 불만이 가장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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