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호와의 증인’ 금지... “우리를 파괴하려고 한 자들의 말로는 모두 안 좋다”

2017년 4월 20일 러시아에서 ‘여호와의 증인’ 활동이 급진주의 관련 혐의로 금지됐다. Russia포커스 기자가 전 세계에 약 800만 명의 신도가 있는 종교단체인 ‘여호와의 증인’ 회의에 언론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참석했다.
Jehovah's Witnesses
러시아 여호와의 증인들 출처 : Getty Images

지난 몇 년간 러시아에서는 ‘여호와의 증인’ 공동체 몇 곳이 폐쇄됐고, ‘여호와의 증인’의 서적 60권 이상이 극단주의 자료 목록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2017년 3월 15일 러시아 법무부는 ‘여호와의 증인’을 극단주의 단체로 확정하고 전면 금지하는 소송을 대법원에 제기했다. 러시아 법무부가 Russia포커스에 설명한 바에 따르면, 다른 종교들에 대한 우월 사상이 담겨 있고 다른 대표자들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전해지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인쇄물이 고소의 근거였다.

경비가 삼엄한 왕국

러시아에서 ‘여호와의 증인’의 행정 본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다. 기자는 ‘여호와의 증인’을 금지하는 재판이 완료됐을 때 이 단체 본부에 전화했는데, 그때는 이미 러시아 법무부가 이 단체 활동을 공식적으로 중단시킨 뒤였다. 이 단체 공식 사이트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해 봤다. 놀랍게도 사무실이 가동되고 있었다. 전화선 다른 쪽 끝에서 상냥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여호와의 증인’ 회의를 취재차 방문하고 싶으며 허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활동 중단’은 법적인 언어로 회의까지도 금지한다는 뜻이지만, 남자는 회의장 주소가 미할콥스카야 거리 36번지라고 알려줬다. 그는 회의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열린다”고 말했다.

출처: '여호와의 증인들' 홈페이지의 스크린 숏출처: '여호와의 증인들' 홈페이지의 스크린 숏

최근 주말 어느 날 나는 미할콥스카야 거리 36번지를 찾아갔다(‘콥테보’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갈 수 있고 크렘린에서는 12km 떨어져 있다). 주소에 따르면, 이곳은 1920년대에 섬유공장용으로 지은 2층짜리 대저택이다. 소련 시절 이곳은 문화궁전이었지만, 러시아 국가등록청에 따르면, 현재는 사유 재산으로 등록돼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곳을 ‘여호와의 증인 왕국의 홀’이라고 불렀다. 이 건물이 완전히 그들 소유임이 분명했다.

‘왕국의 홀’ 근처에는 수 십 명이 줄 지어 서 있었다. 입구에는 하나같이 검은색 재킷 차림의 경비원들이 서 있었다(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들도 ‘여호와의 증인들’이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낯선 나를 보더니 한 쪽으로 데려가 왜 왔는지 오랫동안 캐묻고 나서 들어가게 해줬다. 나는 탈의실에 겉옷을 벗어 놓고 300석 규모의 홀로 들어갔다. 홀이 거의 만석이어서 뒤쪽 열 중 하나에서 빈 자리를 겨우 찾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얼굴이 흉터 투성이인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나에게 다가왔다(그의 배지에는 ‘관리자 아나톨리’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내 신분과 거주지, 언론 관련 여부를 꼬박 10분에 걸쳐 묻고(홀에서 유일한 언론인이었는데, 이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휴대전화기로 이곳 상황을 찍으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하지만 나는 몇 장면을 몰래 찍을 수 있었다). 또 그는 내가 여기서 무슨 일이 있을지 어떻게 알게 됐느냐고 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는 ‘운이 아주 좋았다’. 나는 단순한 모임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1년에 두 번 열리고 ‘여호와의 증인’ 지도부 거의 전체가 모이는 회의에 왔기 때문이다. 내가 들어간 홀(‘작은’ 홀이었다)에서는 참석자들이 영상 중계화면만 볼 수 있었다. 회의 자체는 2층 본관에서 열렸다. 이곳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내 답변을 다 듣고 나서 아나톨리는 트집잡을 만한 점을 찾지 못했지만, 회의가 끝나고 나서 자기를 보고 가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무한한 감사

화면에는 무대에서 서로 마주보고 앉은 두 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그들은 두 형제의 대화를 연기하고 있었다. 동생 부인이 심하게 아파서 수혈을 받아야 했는데,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겐 수혈이 매우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동생이 조언을 받으러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명석한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요.” 이 대화는 “여호와를 믿는 것이 중요하다. 심지어 사람이 죽더라도 여호와께서 그를 되살려 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형의 조언과 함께 끝났다. 홀에 있는 사람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거의 모든 참석자의 손에 성경책과 필기용 노트가 들려 있었다. 청중의 특별한 관심을 끈 마지막 연설은 교구 감독관 니콜라이의 연설이었다(여호와 증인의 ‘교구 감독관’은 50~100명의 신도로 구성된 교구 몇 곳을 감독하고 신도들을 교육하고 그들이 내는 헌금으로 생활한다). 니콜라이는 콤소몰(공산주의청년동맹) 대원 모습과 비슷했다. 그는 시원시원한 눈매에 머리를 깔끔하게 다듬은 젊은이였다. 그는 멈칫멈칫하면서 가장 무서운 죄인 불신의 죄에 관해,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죄를 모면할 수 있는지에 관해 극적인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여호와께서 곧 불의의 낡은 세계를 파괴하실 것이며, 오직 믿음에서 벗어나지 않은 자들만이 완전하게 보상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설이 끝날 무렵에는 니콜라이의 제안에 따라서 홀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일어나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연상케 하는 ‘43번 노래’(‘활기차고, 굳세어라!’)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니콜라이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 회의를 조직한 분들에게 약소하게나마 감사를 표하고 싶지 않습니까?”라고 청중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우렁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홀 안에는 ‘전 세계적 사업을 위한 헌금’이라고 쓰인 큰 상자 두 개가 있었다. ‘여호와의 증인’ 평신도들(공정하게 말하자면, 겁을 집어 먹은 것처럼 보이지도 최면에 걸린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은 상자에 자발적으로 돈을 넣었다. 모인 돈이 모두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1000 루블(약 2만원)에서 5000루블(약 10만원)까지 거금을 상자에 넣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옥의 묵시록

2015년. 러시아 '여호와의 증인들'. 출처: Getty Images2015년. 러시아 '여호와의 증인들'. 출처: Getty Images밖으로 나가는 출구에서 나는 관리인 아나톨리에게 붙잡혔다. 그는 내게 여호와 증인들에 관해 더 알고 싶으냐고 물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가 결혼했는지도 물었다(나중에 알게 됐지만 신도와 비신도와의 결혼은 권장되지 않는다.) 우리는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또 나는 예카테리나로 불리는 중년 여성과도 알게 됐는데,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여는 다과회에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이들은 주말마다 공동체 내 누군가의 집에 모여 다과회를 열었다. 나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금기 사항을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예카테리나에게서 알게 됐다. 공무원이 되면 안 되고 집회에도 참가하면 안된다.(반정부 집회든 친정부 집회든 상관 없다). 군대에도 가지 말아야 하고 애국가도 부르지 말아야 하며 심지어 부부관계 도중 신음소리를 내서도 안 된다.

어떻게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가 됐는지 묻자 예카테리나는 수 년 전 의붓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고 완전히 절망에 빠진 채 신에게 기도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했다. 기도를 하는 바로 그때 사람들이 와서 아파트 문을 두드렸는데 문턱 너머에 ‘여호와의 증인들’이 서 있었던 것이었다. 카탸(예카테리나의 애칭)는 그들에게서 작은 책 두 권을 받았는데, 이 책이 그녀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더 나아가서는 의붓아버지의 삶도 바꾸어 놓았다. 현재 이들은 둘이서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여호와의 증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책도 나눠주고 있다.

이 이야기가 꾸며낸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카탸는 모든 ‘여호와의 증인’ 신도 중에서 가장 전형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여호와의 증인’을 창시한(1931년) 미국인 판사 조셉 러더포드(Joseph Rutherford)도 스스로 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예카테리나와 비슷한 계기로 새로운 신앙을 얻게 됐다. 그는 변호사 공부를 하는 동안 싸구려 책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는데, 고객들을 찾아 다니다 길을 헤매곤 했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젊은 책 장사에게서 꼭 책을 사주리라고 다짐했다. 결국 그는 이 다짐을 실행에 옮겼는데 그가 산 책들은 공교롭게도 ‘성경 연구자들’의 책이었다. 러더포드는 이를 하늘의 계시로 간주하고 신에 대한 봉사에 헌신했다.

카탸는 한 푼도 책을 팔아 번 돈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카탸는 한 달에 6~12만원을 ‘전 세계적인 사업’을 위해 헌금했다. 그녀는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다과회’에 가지 않았다. 그러자 며칠 동안 카탸가 SMS 문자 메시지로 나를 괴롭혔다. 메시지의 의미는 풋내기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화내지 마. 모든 예언이 실현될 거야.” “내가 너에게 말해주려고 한 것은 묵시록 원본에 담겨 있는 내용이야. 반그리스도가 벌써 세상에 나타났어.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고.” “참고로 영화 ‘터미네이터’는 5편 모두 미국의 유대인 구세주들이 찍었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지하철 테러가 일어났던 날에 카탸는 내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묵시록 15장 2절. 확인해 봐. 거기에 유리와 불길로 이뤄진 바다에 관해 쓰여 있어”라고 했다. 극단주의는 전혀 아니었다. 카탸는 그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굴복하지 않는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종파인지, 아니면 돈을 노리는 흔한 사기꾼들인지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들은 언제나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현재 완전히 다른 법에 따라 형사 처벌 위협을 받고 있다(최대 6년간 자유 박탈). 이와 동시에 러시아연방 국가두마 공공협회 및 종교단체위원회 전문가 협의회 위원인 블라디미르 랴홉스키는 “압박이 불가피하다”며 “‘그런 일이 일어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현재 많이 있지만 나는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고 본다. 이미 테스트를 거쳤다. 2009년 타간로그에서 현지 ‘여호와의 증인’ 단체를 금지하고 그 이후 2012년에는 비디오로 회의 개최 사실을 녹화해 형사 사건으로 고소했다. 소송은 오래 걸렸는데, 2015년 말에서야 판결이 나왔다. 벌금과 집행유예만 나왔을 뿐이었지만, 어쨌든 유죄 판결이었다. 지금은 모든 게 더 심각해지고 있다. 단순히 한 교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러시아 전 교구의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관리인 아나톨리에게 전화하여 “법원이 ‘여호와의 증인’을 최종적으로 금지했는데,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하느님께 기도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런 다음에 “우리를 파괴하려고 한 사람들은 모두 말로가 좋지 않았다. 히틀러는 우리를 화덕 속에 불태워 죽이려고 했고, 스탈린은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썩혀버리려고 했다. 근데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나? 그들은 저주를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 있다. 앞으로도 살아 남을 것이다. 우리는 굴복하지 않을 생각이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다름 아닌 아나톨리는 어떻게 굴복할지 않을 생각인가?”라고 묻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 지도부가 대법원 판결에 항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항소 기간은 한 달이다). 폭력과 극단주의 없이도 항소할 수 있다.

러시아 정교회 대 ‘여호와의 증인’

러시아 공식 당국은 ‘여호와의 증인’을 고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기껏 해야 이들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했을 뿐이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금지하고 탄압했다. 예를 들면, 1951년 스탈린의 지시로 ‘여호와의 증인’ 신도 8000 명 이상이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됐다.

모스크바 주. '여호와의 증인들'. 출처: 알렉산드르 아르테멘코프/ 타스모스크바 주. '여호와의 증인들'. 출처: 알렉산드르 아르테멘코프/ 타스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신들에 대한 새로운 공격을 예전보다 훨씬 더 혹독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러시아연방 법무부 산하 국립종교전문지식 수행 전문가 위원회의 로만 실란티예프 부의장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16만 5000명이 여호와의 증인 신자다.

‘여호와의 증인’을 금지하려는 시도는 처음에 심지어 권력에 충성을 다하는 관리들과 사회 활동가들 사이에서조차 당혹감을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면, 러시아 대통령 산하 시민사회발전·인권발전위원회 위원이자 종교전략연구·현대세계정책센터 소장인 막심 솁첸코는 법무부의 소송이 양심의 자유의 기본 원칙들을 위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을 극단주의 단체로 부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어떤 테러에도 연루되지 않았고 어떤 불법 행위도 촉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에 담긴 절대 진실을 설파한다는 혐의로 종종 고소당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은 다른 많은 교회에서도 볼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여호와의 증인’이 박해받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그들이 ‘사람에서 사람으로’라는 원리에 따라 활동하며 많은 지역에서 러시아 정교회에 심각한 경쟁자로 나서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여기에는 분명히 모스크바 총대주교청과 이에 호의적인 특수정보기관 내 고위관리들의 손길이 작용하고 있다” 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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