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앗아가는’ 러시아 화가들의 불운한 그림들

2017년 6월 30일 엘레나 김, Russia포커스
“화가의 붓을 두려워하라. 그가 그린 초상화가 모델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숨쉴 수 있다.” 15세기 과학자이자 연금술사였던 하인리히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 폰 네테쉼은 이렇게 썼다. 때로 유명한 그림들은 어떤 신비스러운 힘과 부정적 에너지를 내재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 그림들에는 불운한 그림이라는 별명이 따라붙는다. 어떤 그림은 화가 자신에게, 다른 그림은 그 모델이나 그림의 소유자 또는 심지어 예민한 관람객에게까지 화를 미쳤다.
출처 : 로이터

운명을 그리는 화가

러시아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화가라면 당연히 일리야 레핀이다. 이 거장의 모델이 됐던 사람들 대부분이 머지않아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그중에는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로 유명한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유명한 러시아 외과의사 니콜라이 피로고프, 작가인 표도르 추체프, 이반 투르게네프 등과 같은 유명인과 지위가 높은 사람들도 있었다.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출처: Wikipedia.org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출처: Wikipedia.org

레핀의 가장 섬뜩한 그림 중 하나는 차리 이반 뇌제가 자신의 아들을 살해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살해 장면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묘사해 그림을 본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낄 정도였다. 이반 뇌제의 모델로 레핀은 시인 겸 화가였던 그리고리 먀소예도프를, 왕세자의 모델로는 작가 프세볼로드 가르신을 택했다.

그후 일어난 일들이 물론 모두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몇 년 후 정신이 이상해진 가르신은 계단으로 떨어지면서 세상을 마감했다. 계단에서 떨어질 때 그가 부딪힌 머리 부분은 불운한 그림에서 왕세자가 피를 흘리는 부분과 같았다.

출처: Wikipedia.org출처: Wikipedia.org

그후 일리야 레핀은 <국가소비에트의 경축회의(Торжественное заседание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совета)>란 제목의 엄청난 대작을 주문받았다. 그림은 1903년 말에 완성됐는데 몇 년 후 혁명이 발생하자 그림에 묘사된 관리들 모두가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화를 입었다. 지위를 잃는 데 그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명을 잃은 사람들도 있었다. 1909년 레핀은 사라토프 시의회의 주문으로 스톨리핀 총리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림이 완성되자마자 스톨리핀이 키예프에서 총에 맞았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국가소비에트의 경축회의>. 출처: Wikipedia.org<국가소비에트의 경축회의>. 출처: Wikipedia.org

이러한 예는 끝이 없다. 레핀의 믿을 수 없는 사실주의 화풍 또는 어떤 다른 힘에 의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모델이 됐던 사람들 대다수가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추락한 화가

출처: Wikipedia.org출처: Wikipedia.org

미하일 브루벨의 마지막 작품 <추락한 악마(Демон поверженный)>는 그의 운명에서 서글픈 역할을 했다. 마지막 그림을 완성한 후 브루벨의 상태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급격히 악화된다. <추락한 악마>가 이미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전시됐는데도 그는 그림을 더 낫게 만들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놀란 관람객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림에 덧칠을 하기도 했다. 그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선 브루벨이 이 그림을 그리면서 영혼을 악마에 팔아버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브루벨 자신은 러시아어로 모두 악마를 의미하는 ‘쵸르트(черт)’, ‘디야볼(дьявол)’, ‘데몬(демон)’이라는 단어를 명확히 구분했다. (‘악마(демон)’ 연작을 그린) 그에게 ‘데몬’은 악귀가 아니라 정열과 공포, 희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영혼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슬프지만, 생의 마지막까지 브루벨은 자신의 영혼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전달하지 못했다. 그는 병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추락한 악마>의 수정 작업에 매달렸고 병원에 실려간 지 얼마 안 돼 세상을 떠났다.

불운의 미지의 여인

미스터리한 전설이 연관된 그림 중에서 이반 크람스코이의 작품 하나를 언급해야 하겠다. 1883년작 <미지의 여인(Незнакомка)>은 러시아 회화사에서 가장 신비한 그림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얼핏 보면 초상화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다. 열린 마차를 타고 넵스키 대로를 달리는 미녀가 보일 뿐이다. 하긴 전시 첫날부터 “이 여인이 누구냐?’는 질문이 사람들 사이에서 터져나왔다.

출처: Wikipedia.org출처: Wikipedia.org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귀족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녀가 걸친 의상(모피와 푸른 공단 리본으로 테를 두른 세련된 빌로드 외투와 세련된 베레모, 검게 칠한 눈썹과 붉은 립스틱, 화사하게 칠한 볼)을 꼼꼼히 살펴보면 그녀가 화류계, 십중팔구 상류층 인사나 부유한 상인의 정부일 거라는 정당한 의심을 품게 한다. 여인이 실존인물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크람스코이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하곤 했다고 한다.

<미지의 여인>이 미스터리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그후 개인 소장품으로 이손에서 저손으로 넘겨지기 시작하면서였다. 그림의 첫 번째 소유자는 아내에게서 버림받았고 두 번째 소유자는 집이 불에 타버렸으며 세 번째는 파산했다. 이러한 불행의 원인을 사람들은 불운한 그림에 돌렸다. 그림을 소유했던 자들은 그림이 자신의 생명력을 뺏어갔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메세나인 트레티야코인조차 그림의 매입을 거절했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컬렉션에 이 그림이 추가된 것은 1925년이었다. 그후로 그림과 관련된 이상한 사건들은 멈췄다. 어쩌면 그림 스스로가 자신의 역사적 고향으로 돌아오고자 한 것은 아닐까?

혼인을 앞둔 처녀들에게 위험한 그림

출처: Wikipedia.org출처: Wikipedia.org

여인이 연관된 또 하나의 미스터리한 그림이 있다. 1797년 블라디미르 보로비콥스키란 화가가 젊은 공작부인 마리야 로푸히나의 초상화를 그렸다. 신비한 눈빛의 아름답고 건강한 젊은 여인의 초상화였다. 하지만 그림이 완성되고 얼마 후 그녀의 건강이 나빠졌고 외사들은 폐결핵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내린다. 18세기에 결핵은 불치병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작부인은 짧고도 불운한 생애를 마쳤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공작부인의 부친은 신비주의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심지어 프리메이슨 로지(lodge)의 회원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가 죽은 딸의 혼을 초상화에 “이식”했다고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혼인을 앞둔 처녀가 있는 집에 이 초상화를 놔두면 그녀들도 마리야와 같은 불행을 맞게 된다고 말했다. 1880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이 이 그림을 입수해 관람객들에게 공개했다. <미지의 여인>의 경우에서처럼 그후로 초상화가 저주받았다는 소문은 뚝 끊겼다.

본 기사는 러시아와 관련된 미스터리와 초자연적 현상을 탐사 보도하는 ‘러시아 엑스파일’ 시리즈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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