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이 존재하지도 않는 상품을 광고한 이유

정부가 모든 회사로 하여금 수익의 1%를 광고에 쓰게 했기 때문에 소련 유일의 광고회사는 가상의 상품을 홍보하는 수 백 개의 광고를 찍어냈다.
오피니언
Moskvich
소련의 광고 출처 : Getty Images

있지도 않는 상품의 TV 광고를 누가 제정신으로 찍어 내겠는가? 1967년에서 1991년 사이 소련 유일의 광고회사는 말 그대로 수 천 개의 광고를 찍어냈는데, 국영기업이 생산하지도 않았고 생산할 생각도 전혀 없는 상품들을 위한 것이었다. 저민 닭고기부터 온풍샤워기와 이중 변기시트까지, 에스토니아의 ‘에스티 레클람필름(Eesti Reklaamfilm, ERF)’은 실제 상품과 가상 상품 모두를 포함한 온갖 제품의 광고를 6000개 이상 제작했다.

소비자 중심 자본주의 사회에서 광고의 목적은 사람들이 경쟁사의 제품이 아니라 자사 제품을 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체제에는 경쟁이 없기 때문에 TV 광고의 목적과 역할이 전혀 달랐다. 호주 잡지 ‘스미스 저널(Smith Journal)’에 따르면 ‘그 목적은 가장 단순하게 말해서 풍부라는 서사를 결핍의 경험에 익숙해진 대중에게 투영하는 것이었다’.

ERF 뒤의 두뇌

이 기이한 이야기의 핵심 인물은 공산당 임원들의 선전을 제작한 ERF 창립자 페두 오야마다. 1966년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소비재, 특히 사치품 중심 산업 정책을 추진하자 오야마는 새로운 기회를 직감했다. 소련 정부가 모든 기업에 수익 중 1%를 광고에 쓰도록 지시하면서 ERF는 횡재를 맞았다.

출처: Youtube

ERF와 ERF가 대변한 소련 기업들은 시장 경제에서 고객과 광고회사가 하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았다. 소련 체제 하에서 근본적으로 공산당의 하수인인 사장들은 ERF의 작업에 지침이 될 스크립트를 오야마에게 건넸다. 그러나 ERF의 창작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광고를 만들었고, 광고를 검토할 때 당의 윗사람들은 모두들 다 잘 됐다는 듯이 가장했다.

기본적으로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제품이 진짜라면 공급부족이 만연한 나라에서는 어쨌든 팔릴 것이었다. 유령 제품의 광고라 해도 역시 문제는 없었다. 팔 물건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ERF에 관한 다큐멘터리 ‘더 골드 스피너스(The Gold Spinners)’를 공동 감독한 하디 볼머는 프라하 다큐멘터리영화학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익의 1%를 광고에 써야 한다는 계획이 확정됐다면 모든 소련 기업은 돈을 써야만 했다. 광고의 질이 좋든 나쁘든, 효과가 있든 없든 정말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광고 홍수

분명 ERF에게는 윈윈이었다.

광고 분야의 독점 지위를 이용해 ERF는 창립 첫 해에 130개의 광고를 제작했다. ‘사우스 저널(South Journal)’에 따르면 거의 모든 제품이 마치 완전 최첨단 제품인 것처럼 보이도록 묘사됐다. 한 마가린 광고에서는 배우가 “사용하기 편해요”라고 떠벌린다. “빵에 바르기만 하세요!”

지나치게 이상하다거나 돈이 많이 든다고 평가되는 아이디어는 없었다. 우유 광고는 화려한 알프스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소련 자동차는 파리의 거리를 이리저리 누비는 모습을 보여줬다. 에스토니아 배우들은 겨우 포도를 먹는 모습을 찍기 위해 멀리 떨어진 시장까지 갔다.

총 예산의 1%를, 아직 개념도 잡히지 않는 새로운 광고에 써야 한다는 압박은 소련 기업들에게 특이한 문제들을 안겨줬다. 예를 들어 상품이 아직 준비 중에 있고 이름도 정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광고하겠는가? 게다가 소련 소비재 산업의 전설적인 비효율성으로 인해 계획된 어떤 상품을 광고할 시점도 예측 불가능했다. ERF의 해결책은 상품을 보여주지 않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소련 대중의 오락거리

인내심 강한 소련 대중이 보기에 광고들은 혼란스러웠지만 즐거웠다. 소련 대중은 상품의 질이 좋다면 왜 광고를 하겠느냐고 생각했다. 양질의 제품들은 소련 상점에서 빠르게 사라졌고 보통은 비축됐다. 광고되는 상품은 분명 조잡할 것이라는 생각이 전국민의 일반적 합의였다.

다른 한편으로 광고는 널리 인기를 끌게 됐다. 광고 시간이 휴식 시간인 자본주의 사회와 달리, 소련 시청자들은 광고를 기다렸다. 토요일 오후면 가족들은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인 20분 연속으로 이어지는 광고들을 기다렸다.

최고의 광고는 믿음을 만드는 것이었다. 광고는 소련 시민들을 길게 늘어선 가스 배급 줄, 반쯤은 텅 빈 슈퍼마켓 선반에서 벗어나게 하고 늘 태양이 빛나고 흥겨운 노래가 흐르며 아름다운 여자들이 있는 세상, 심지어 ‘핑귄’ 아이스크림 광고처럼 적당히 선정적인 세상으로 보내줬다. 웹사이트 ‘레트로 소비에트 애즈(Retro Soviet Ads)’에서는 “소련 광고는 상품을 판매한다거나 특정 소비자를 목표로 한다는 생각을 무시해버렸기 때문에 광고 자체가 소비할 상품이 됐다”고 한다.

출처: Youtube

ERF는 다른 방법으로도 시스템의 단물을 우려먹었다. 예를 들어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광고를 찍어서 추가 요금을 받았다. ‘더 골드 스피너스’의 공동 감독 키울 알마에 따르면 주된 이유는 돈이었다. “계획 경제에서 모든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은 어느 관청이 정한 고정 가격이었다. 광고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기 때문에 고정된 가격이 없었다. 그래서 ERF의 프로듀서들은 광고를 ‘다큐멘터리’라고 설명하고 2분짜리 광고에 대해 60분짜리 다큐멘터리에 해당하는 보수를 받았다.”

국제적 인식

ERF의 놀라운 생산량은 국제적 이목을 끌었고 1985년에는 칸 광고제에 초대돼 가정에서의 에너지 절약에 관한 광고로 동사자상을 수상했다. 더없이 영광스러운 이 때에 아이러니하게도 소련은 세계 최대의 에너지 생산국이었고 두 번째로 큰 수출국이었다. 에너지 절약은 소련의 우선순위에서 하위권이었다.

그러나 끝 모르고 잘 나가던 ERF의 쉬운 돈벌이는 계획경제가 붕괴하면서 중단됐다. ERF는 새로 직면하게 된 자유시장에 대처하지 못하고 1992년 파산했다. 오야마는 2014년에 사망했다.

제작된 약 6000개의 광고가 중 단 5%에 해당하는 약 300개의 광고만 보존됐다. ERF의 광고들은 할리우드 영화 ‘보랏’에 삽입됐다.

결국 광고들은 ‘부패한 시스템의 표면에 바른 래커’였다고 키울 알마 감독은 말한다. “기록 보관소에 있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것이 존재했다는 것을 아무도 실제로 믿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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