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과 박정희

푸틴은 러시아의 박정희가 될 수 있을까?
(일러스트=단 포토츠키)
(일러스트=단 포토츠키)

블라디미르 푸틴은 러시아에서 인기 있는 대통령이다. 아마도 지난 한 세기 동안 러시아의 어떤 통치자도 십이 년을 권좌에서 보내고 난 후에 그렇게 높은 지지율을 유지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푸틴 집권 당시의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이미 수년 동안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50%에서 70% 사이를 오르내렸다.(현재는 약 60%이다)

물론 러시아에는 푸틴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일부 사회계층에서는 현 대통령에 대한 호감 표시를 금기시하기도 한다. 대도시 지식인들 사이에 푸틴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고, 예술계 인사들도 푸틴에 비판적인 시선을 보낸다. (물론 그 중에는 열성적 지지자들도 있다). 이 부류는 해외에 탄탄한 인맥을 갖고 있고 해외 언론에도 얼굴을 내밀곤 한다. 또 인터넷을 폭넓게 활용하며 러시아 밖에서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곤 한다. 그래서 해외 신문 독자들 사이에서는 푸틴이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오직 권모술수와 야권 탄압만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러시아 일반 국민은 푸틴을 지지하며 야당에 대해선 깊은 의혹의 눈길로 바라본다.

그럼에도 야권이 푸틴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를 향해 퍼붓는 비난 중 상당 부분이 충분히 근거를 갖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권력 최고위층의 부패는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러시아 내 거대 재산가 중 상당수가 푸틴 주변 인물들로, 이들이 재산을 축적하는 데서 푸틴과의 관계가 적지 않은 역할을 담당했음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야권이 푸틴 정권의 권위주의 성격을 자주 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 러시아 정권에 그런 경향이 있다는 데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일반 국민, 특히 중소도시 주민과 저소득층 사이에서 큰 지지를 얻고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두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 ‘경제 성장’과 ‘정치 안정’이 그것이다. 많은 러시아인들에게 공산정권의 몰락 이후 찾아온 1990년대는 사상 유례없는 정치적, 지성적 자유의 시기, 무제한의 가능성의 시기였다. 그러나 그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자유를 가장 먼저 누린 것은 당시 대도시에 살며 좋은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었다. 지금 푸틴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이 바로 이들이다. 

하지만 러시아 국민 대다수에게 90년대는 사회적 혼란의 시대였다. 1991~ 2001년 사이에 평균 수명은 69세에서 65세로 줄었다. 2001년의 연평균 실질 소득은 1991년 수준의 60퍼센트에 불과했다. 교육과 보건 부문이 최악의 위기 상황에 빠졌고, 폭력범죄 발생율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1991년부터 2001년까지 10년간 살인사건 발생건수는 2만 2천 건에서 4만 5천 건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부터 상황이 급속도로 호전되기 시작했다. 2010년 무렵에는 평균 수명이 69세로 원상복귀했고, 평균 실질 소득도 1991년도 수준에서 120퍼센트로 늘어났다(2001년 대비 두 배 증가). 살인사건 발생건수도 2만 건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이 모든 변화가 푸틴의 집권 이후에 일어난 것이다. 물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 아니냐, 고통스러운 전환기가 마침내 끝이 나고 러시아의 주요 수출품목인 석유·가스 가격이 국제시장에서 급등한 순간에 대통령이 된 푸틴의 운이 좋았을 뿐이다, 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이는 야권이 주장하는 바이며 그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다수 러시아인은 훨씬 단순하게 상황을 바라본다. 이들 눈에는 푸틴이 집권하자 경제위기가 끝났고 사회에 안정이 찾아왔으며 삶은 풍요로워지고 안전해진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체제 전환기의 쇼크상태에서 정신을 차리자 이 모든 (긍정적) 변화를 푸틴의 공으로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많은 과오에도 슬쩍 눈을 감아줄 준비가 돼 있는 것이다. 

‘개발독재’ 시대를 살았던 한국의 고령층이라면 이런 논리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60, 70년대 당시 한국민 대다수는 일제 강점기와 피로 얼룩진 한국 전쟁, 50년대의 빈곤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 대다수는 박정희 정권을 차악으로 여기며-여기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수용할 용의가 있었다.

이런 식으로 푸틴을 러시아판 박정희로, 다시 말해 러시아식 ‘개발독재’를 지휘하는 권위주의적 지도자로 볼 수 있을까? 두 역사적 인물 사이에 비슷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꼭 그렇게 볼 수는 없다.

한편으로 푸틴 정권은 박정희 정권보다 더 자유주의적이다. 권위주의적 경향이 분명히 있기는 해도 어쨌든 러시아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러시아에서는 야권의 시각을 대표하는 신문들이 활발히 발간되고 있고 급진정당을 비롯한 다양한 야당이 활동하고 있다. 거리에선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며 정치 검열은 중앙 텔레비전 방송들에서만 나타날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경제개발이란 것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박정희 집권기 한국의 ‘개발독재’는 내부 잠재력에 의지했고, 국내 산업이 경제 발전의 주요 동력으로 기능했다. 반면 푸틴 집권기 러시아에서는 천연자연 수출이 경제 발전에서 지나치게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두 지도자의 지지 메커니즘은 많은 점에서 비슷하다. 양국 모두 상당수 국민이 안정과 경제 성장에 대한 대가로 정치적 자유에 대한 일정 정도의 제한 조치(현재 러시아 상황이 조금 더 낫다)를 수용했다. 이러한 선택이 과연 합리적이었는지는 시간이 더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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