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러시아의 미인(美人)의 기준은?

2017년 6월 30일 엘레나 김, Russia포커스
슬라브 민족을 포함해 중세의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모성애와 결부돼 있었다. 이때문에 무엇보다 풍만한 몸매, 듬직한 체격, 큰 키, 당당한 자세가 미의 기준이 됐다. 그런가 하면 젊은 아가씨들에겐 ‘슬라부트노스티’가 있어야 했다. ‘슬라부트노스티’란 과연 무엇이고 러시아 미인의 진정한 기준은 무엇일까?
출처 : Flickr.com/ 알렉세이 예판친체브

‘명성 높은’, ‘영예로운’이란 뜻의 단어(славный)에서 파생된 ‘슬라부트노스티(славутность)’는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가진 단어다. 호감가는 외모, 매력, 예의바름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고결한 이름으로 그것을 잃는 것은 큰 수치로 여겨졌다.

혈색이 좋아야 미인

출처: 콘스탄틴 마콥스키출처: 콘스탄틴 마콥스키

여러가지 자료에 따르면 과거 러시아 여성들은 80kg은 넘어야 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러한 기준은 상인, 농노, 수공업자, 군인 등 사회 모든 계층에서 동일했다. 반면에 마른 것은 심각한 단점으로 여겨졌다. 중세 러시아에서 여성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어머니로서의 역할이었으며 말랐다는 것은 병약함의 징후로 여겨졌다. 병약한 처녀를 아내로 들이면 아이를 유산하거나 출산하면서 죽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하고 참을성 있는 여자들만이 현모양처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다고들 생각했다. 건강한데 체질적으로 마른 처녀들은 시집을 잘 가기 위해 잔꾀를 부리기도 했다. 겉옷 안에 블라우스를 겹겹이 입어 포동포동해 보이도록 한 것이다.

미의 기준은 균형잡힌 얼굴, 뽀얀 피부에 발그레한 볼, 도톰하고 붉은 입술이었다. 이러한 기준을 모두 갖춘 미인들을 ‘혈색이 도는 뽀얀 얼굴(кровь с молоком)’이라고 불렀다. 물론 이런 기준을 다 맞추기란 어렵기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오래 전부터 얼굴을 희게 만들어주는 분과 볼을 붉게 해주는 용도로 비트가 사용됐다. 검은 눈썹을 위해 안티몬 가루로 특수 염료를 만들었으며 지방과 재를 섞은 것이나 석탄으로 눈썹을 그리기도 했다. ‘검은 담비 같은 눈썹(собольи брови)’이란 표현은 젊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가리키는 것으로 민간에서 아주 자주 사용됐다.

미의 기준은 '혈색이 도는 뽀얀 얼굴'이었다. 출처: 예브게니 카르마노브/ Flickr.com미의 기준은 '혈색이 도는 뽀얀 얼굴'이었다. 출처: 예브게니 카르마노브/ Flickr.com

1635~1639년에 독일 수학자 아담 올레아리우스는 러시아 여인들에 대해 이렇게 썼다. “중년의 여성들은 전반적으로 보기 좋은 몸매에 부드러운 얼굴과 몸을 가졌다. 하지만 도시의 여성들은 분칠을 하고 입술을 붉게 칠해 마치 누군가 밀가루 한 웅큼을 얼굴에 끼얹고 붓으로 뺨에 붉은 물감을 칠한 것처럼 보인다. 눈썹과 속눈썹도 검게 칠하는데 가끔 밤색으로 칠하기도 한다. 어떤 여자들은 (연지를 칠하는 것보다 태어난 그대로가 더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이웃여자나 말상대가 하도 화장을 억지로 권하는 바람에 자연미가 인공미에 가려지기도 한다.” 물론 모든 여자들이 그처럼 화장을 많이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당시에도 개성있는 자연미가 더 높이 평가됐다.

걸음걸이도 중요시됐다. 걸음걸이는 ‘백조가 헤엄을 치듯이’ 서두르지 않고 침착해야 한다. 중세 러시아의 아가씨들은 우물물을 길어 멜대에 물양동이를 지어나르면서 허리를 꼿꼿이 펴고 침착하게 걷는 법을 연습했다.

발뒤꿈치까지 오는 긴 머리

러시아 여자들은 하나같이 머리를 땋고 다녔으며 그것은 단순히 헤어스타일은 아니었다. 안나 샤이두로바/ Flickr.com러시아 여자들은 하나같이 머리를 땋고 다녔으며 그것은 단순히 헤어스타일은 아니었다. 안나 샤이두로바/ Flickr.com

중세 러시아에서는 머리카락을 ‘코스미(космы)’라고 불렀는데, 머리카락을 우주(космос)와의 소통을 돕는 일종의 안테나로 여겼기 떄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과거에는 여자와 남자 모두 머리를 길렀다. 러시아 처녀들은 하나같이 머리를 땋고 다녔으며 그것은 단순히 헤어스타일은 아니었다.

슬라브인들은 세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첫 번째는 영혼의 세계, 꿈과 사고인식의 세계(навь, 과거)다. 두 번째는 우리가 지금 사는 세계, 감각기관으로 인지하는 세계(явь, 현재)다. 세 번째는 신들의 세계(правь, 미래)다. 여자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세 갈래로 머리를 땋아주었는데 이것은 이 세 가지 세계의 통합을 상징했다. 땋은 머리채가 등을 따라 가지런히 놓이면 우주의 기운이 머리카락을 통해 척추로 들어가 장차 어머니의 역할에 필요할 생명력을 몸과 영혼에 불어넣어준다고 믿었다.

러시아 여자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세갈래로 머리를 땋아주었다. 출처: 막심 보고드비드/ 리아노보스티러시아 여자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세갈래로 머리를 땋아주었다. 출처: 막심 보고드비드/ 리아노보스티

건강하고 긴 머리카락은 수많은 러시아 동화에서 여자의 중요한 덕목으로 나온다. 동화에 나오는 미녀들은 대개 발뒤꿈치까지 머리를 기르고 있다. 땋은 머리채의 폭은 손바닥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 헤어샵에서 할 수 있는 머리카락 이어붙이기 같은 기술은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풍성한 머리를 만들기 위해 어떤 처자들은 땋은 머리에 말총 가닥을 엮어 넣기도 했다.

땋은 머리를 보면 주인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젊은 여자가 머리를 하나로 땋았다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 머리에 리본을 묶었다면 시집 갈 나이가 됐다고 잠재적 신랑감들에게 신호를 주는 것이라 보면 된다. 리본이 만약에 두 개라면 이미 신랑감을 정해 양가 부모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뜻이다.

러시아 미인. 출처: 블라디슬라프 나고르느/ Wikipedia.org러시아 미인. 출처: 블라디슬라프 나고르느/ Wikipedia.org

결혼 후에 여자는 머리를 양 갈래로 땋는데 자신과 미래의 아기 두 사람 몫의 에너지를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왕관처럼 머리 위로 올려 남의 시선으로부터 머리카락을 가려주는 머릿수건으로 고정했다. 여자에게서 머릿수건을 뺏는 것은 지독한 모욕으로 여겨졌다. 여기서 나온 표현이 ‘опростоволоситься(모자/머릿수건을 벗다, 머리를 드러내다, 웃음거리가 되다)’, 즉 ‘опозориться(자기 이름을 더럽히다, 망신을 당하다)’다.

결혼하기 전. 출처: 콘스탄틴 마콥스키/ Wikipedia.org결혼하기 전. 출처: 콘스탄틴 마콥스키/ Wikipedia.org

연작 <발키리아의 보물>에 작가 세르게이 알렉세예프는 여인에게 머리카락을 잃는 것은 끔찍한 형벌이라고 썼다. 여인의 머리카락을 자르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없으며 둘 사이의 우주적 관계가 사라지며 남편이 전투에서 죽을 수도 있다. 여자들은 자신이 마음을 준 사람에게만 네 개의 손가락을 위한 구멍이 난 빗으로 자신의 긴 머리를 빗도록 허락했다. 남자는 빗을 손가락에 끼워 긴 머리를 빗과 손가락으로 동시에 빗겨주었는데 빗질을 하는 동안 머리카락 한 올도 떨어져서는 안 된다. 나이 많은 노파들은 머리카락을 한 올이라도 떨구게 되면 새들이 둥지로 물고 가서 머리카락 주인이 현기증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머리는 손가락으로 꼼꼼히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집중하면서 빗어주면 좋다.

부지런한 팔방미인

호감가는 외모와 숯많은 머리만으로 ‘슬라부트니차(славутница)’가 될 수는 없다. 진정한 미녀가 되려면 명석한 두뇌와 원만한 성격도 필수다. 이때문에 요조숙녀들은 예절, 순종, 온순함에 더해 쾌할한 성격 그리고 노래와 춤추는 법을 배웠다.

'슬라부트니차'들은 부지런해야 했다. 출처: 콘스탄틴 마콥스키/ Wikipedia.org'슬라부트니차'들은 부지런해야 했다. 출처: 콘스탄틴 마콥스키/ Wikipedia.org

‘슬라부트니차’의 중요한 자질 중에는 부지런함도 있다. 여자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뜨개질, 바느질, , 요리, 집안일 등을 배웠다. 젊은 처녀들 사이에서는 자수가 특히 인기였는데 현모양처가 되려면 자신의 결혼 예복에는 직접 자수를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러시아 여자들의 ‘이상형 남자’가 되기 위한 5가지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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