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러시아-8: 러시아인들은 왜 모스크바를 제3의 로마라고 하나?

바르바라 그란코바/ Russia포커스
“보드카는 어떻게..?” “푸틴은 왜..?” 러시아 포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 목록에 자주 오르는 질문들이다. 우리는 “러시아는 왜?”라는 제목의 시리즈 기사에서 다양한 관련 질문에 상세한 답변을 준비했다. 이번 7회의 주제는 ‘러시아인들은 왜 모스크바를 고대 로마와 비교하나’다.

모스크바를 러시아 사람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형용사에서 파생한 그럴싸한 별명도 있다. 예컨대 '페르보프레스톨나야(первопрестольная – '첫 번째 왕좌')'라는 별명은 모스크바가 신생 러시아 제국의 첫 번째 수도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즐라토글라바야(златоглавая – '금색 머리')'는 모스크바 성당의 금빛 쿠폴라(둥근 돔형 지붕)에서 기인한다. '네레진노바야(нерезиновая – '고무가 아님', 이렇게 큰 도시인 모스크바에서조차도 원한다고 모두 집을 가질 수는 없다는 암시다.)' 이나 '볼샤야 제레브냐(большая деревня – '커다란 시골마을')'같이 우스꽝스러운 별명도 있다. 중세부터 시작된 가장 익숙한 별칭 중 하나는 '제3의 로마'이다. 이것은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의 후계자

모스크바를 처음으로 '제3의 로마'로 부른 사람은 러시아정교회 수도사 필로페이(Филофей)였다. 그는 1523~1524년 모스크바 대공국의 대공에게 이교도와 싸울 것을 호소하는 서신을 보낸 사람이다. 필로페이는 모스크바 대공국이 진정한 신앙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했다. 필로페이는 서신에서 “모든 기독교 제국이 파국을 맞았고 우리 군주의 통합된 왕국으로 모여들었다. 두 로마가 망했으나 제3의 로마는 건재하다. 제4의 로마는 절대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에 찬 주장을 펼쳤다.

필로페이의 맥락에서 보면 제1의 로마는 수많은 민족을 한데로 묶어 통치한 로마제국의 수도인 진짜 로마를 말한다. 4세기가 되자 오랜 세월 이교를 신봉하던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차츰 지배적인 종교가 되었고 로마는 세계 기독교의 수도가 되었다. 1054년 기독교가 로마 카톨릭교회와 정교회로 분열된 후 정교회가 뿌리내리게 되는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로마의 뒤를 잇는다. 정교회의 관점에서 보면, 로마 카톨릭교는 이단에 빠져 바닥으로 추락했기 때문에 기독교 세계의 진정한 수도는 '제2의 로마'인 콘스탄티노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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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에 루시가 기독교(정교)를 수용해 '루시의 세례'를 감행한 뒤 러시아인들은 비잔틴 황제를 모든 기독교도의 수호자로 추앙하며 그의 권위를 인정했다고 스베틀라나 루리예 역사학 박사가 설명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세기 후에 '제2의 로마' 콘스탄티노플이 무너진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은 정치적 위기를 잇달아 겪으며 쇠퇴해 가던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이름을 이스탄불로 개칭했다. 이때 모스크바가 정교의 수도로 등극하는데, 이 15~16세기는 모스크바가 뿔뿔이 흩어져있던 러시아 땅을 자기를 중심으로 통합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잊혀진 개념

《Moscow, the Third Rome: The Origins and Transformations of a „Pivotal Moment“(모스크바, 제3의 로마 – ‘중추적 순간’의 기원과 변환)》의 저자인 미국 역사학자 마셜 포(Marshall Poe) 박사가 책에서 썼듯이, ‘제3 로마설’은 소련 혹은 소련 이후 러시아의 대외정책을 설명하기 위해 서방에서 자주 사용하던 개념이다. 신성로마제국과 유사한 제국을 건설하려는 팽창주의적 사상이 이 개념의 기저에 깔려있다는 듯이 말이다. 마셜 포 박사는 “그것[제 3 로마설]은 러시아 대외정책이나 러시아가 국가로서 갖는 심리의 장기적 경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다(It [the idea of Third Rome] says nothing about long-term trends in Russian foreign policy or Russian national psychology)”면서 “그러한 접근 태도는 틀렸다”고 주장한다.

마셜 포 박사에 따르면 이 개념의 의미는 심하게 과장됐다. 수도사 필로페이가 16세기 말에 '제3로마설'을 주창한 이후 사실상 300년 동안 이 개념은 보기 좋게 잊혀졌다.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확장된 원인은 정교회 왕국을 실현하려는 통치자들의 열망 덕분이 아니었다. 자원 획득이나 바다로 나가는 출구를 확보하려는 경쟁 등 훨씬 자연스러운 이유 때문에 러시아의 영토가 확장된 것이다.

필로페이의 '제3로마설'은 19세기 후반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교서가 대량으로 인쇄, 배포되면서 새로이 부활한다. 러시아 제국의 기치 아래 슬라브 민족들을 단결시키려는 꿈을 꾸었던 범(汎)슬라브주의자 세력은 '모스크바 제3로마설'이라는 개념으로 러시아인들을 무장시키려 했다. 하지만 1917년 혁명이 일어나고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하자 범슬라주의 사상은 완전히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

'일곱 구릉 위의 도시'

중세부터 이어져 온 제국의 수도라는 위상만 아니면 모스크바와 로마의 공통점은 아주 적다. 모스크바의 건축술은 로마와는 완전히 다르고 기후도 아주 다르다. 그래도 억지로 공통점을 찾는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모스크바는 로마처럼 일곱 개의 구릉 위에 서 있다.

모스크바 전문가이자 역사학자인 알렉산드르 프롤로프는 '일곱 구릉 위에 서 있는 도시'라는 표현이 실체와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여러 연대기에 '구릉'이라고 언급된 부분은 완만하게 약간 솟아오른 지대의 숫자를 센 것이어서 그것을 구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한다. 진짜 구릉은 현재 모스크바 크레믈린이 서 있는 보로비츠키 구릉이 유일하다. 프롤로프 박사는 나머지 것들은 아름다운 전설이라고 부른다. 그는 “낭만주의자들이 발휘한 상상력의 소산이다. 그들은 모스크바를 제3의 로마로 부르기를 정말로 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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