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스타일: 북시베리아와 극동의 썰매 끄는 개

Fox Grom
그들은 '익스트림 여행'을 떠났다. 그들의 이름은 여러 섬과 만의 명칭으로 부활했다. 그들에게 바치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그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전설로 남았다. 그들은 썰매 개다. 러시아 북부에 사는 사람들에게 썰매를 끄는 개들은 듬직한 동반자이다. 용맹하고 끈질기고 충직한 털북숭이 친구들이다.

무한 질주 본능 – 시베리안 허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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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눈, 다부진 몸, 라이카처럼 등으로 꼬리가 귀엽게 말려 올라가지도 않고, 짖는 소리가 늑대를 연상시키는 개를 보고 싶다면 유카기르족, 케레크족, 아시아 에스키모족, 축치족 등 극동지역 토착 민족들의 영원한 동반자 시베리안 허스키를 찾으면 된다. 시베리안 허스키는 러시아 인스타그램과 모스크바 곳곳의 공원, 시베리아 개 썰매 경주에서 스타로 대접 받는다.

토착민들의 양치기 목동이었던 사냥개 라이카와는 달리 허스키는 가장 빨리 달리는 개였기에 썰매 끄는 일을 주로 했다. 1925년에는 허스키의 질주 본능 덕분에 전염병을 막을 수 있었다. 당시 알래스카의 놈(Nome)이라는 도시는 북극 태풍으로 고립되었고, 전염병 디프테리아마저 창궐했는데, 노르웨이인 레오나르드 세팔라가 허스키 무리가 끄는 썰매를 타고 그곳으로 백신을 날랐다. 사람과 허스키가 함께 이룩한 이 업적을 사람들은 '위대한 연민의 질주'라고 불렀고 미국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앰블리메이션이 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1955년 애니메이션 <발토> 를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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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썰매 개들은 인간의 동업자다. 개들과 함께 집을 나눠 쓰고, 스포츠 대회에서 상을 받고, 사냥하고, 썰매를 타고, 시베리아를 정복하는 일까지 같이 한다. 예컨대 프랑스 여행가이자 작가인 니콜라 바니에는 여러 종의 개가 끄는 썰매를 타고 '시베리아 오디세이'를 떠나 바이칼에서 모스크바까지 횡단했다.

세심한 목동이자 선한 보모 – 사모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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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꼬리가 약간 올라가 미소를 머금은 것처럼 보이는 검은 입술, 풍성하게 말린 꼬리, 솜뭉치처럼 폭신한 하얀 털, 온순한 성질은 다른 품종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귀여운 사모예드의 특성이다. 사모예드는 스피츠의 몸집 큰 친척격인데, 러시아 토착 민족인 사모디족(Samodii 족, 20세기 초까지 사모예드족이라고 불렸다. 따라서 그들의 개는 사모예드 개이다.)의 수 천 년에 걸친 동반자였다. 현재 사모예드인들의 후손들은 네네츠족, 에네츠족, 응가나산족으로 갈라져 타이미르 반도에 살고 있다.

러시아 북방에서 오래 살았던 원주민들은 사모예드 개를 교통수단으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가정에서 다른 역할을 훌륭하게 해 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세심한 목동이자 선한 보모 역할이었다. 부모들이 툰드라로 일하러 나가는 낮이면 아이들은 사모예드와 함께 놀았고, 밤에는 이동식 천막집에서 사람들과 함께 잠을 잤다. 어린아이들이 사모예드를 안고 잤는데 따뜻하기도 했고 폭신한 쿠션처럼 편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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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사모예드족과 함께 석 달을 살았던 영국인 동물학자 에른스트 킬브룬-스콧은 시베리아에서 사모예드 개 3마리를 영국으로 데리고 갔다. 그래서 사모예드 개가 서유럽에 퍼져 나가게 되었다.

오늘날 사모예드는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사모예드를 키우고 싶은 사람은 이 개가 사람과 매우 친밀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3천 년 동안 이 '스노우독(snow dogs)'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사모예드는 개 중에서 가장 친화적이고 길들이기 쉬운 품종이다.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은 사모예드의 소명이다. 그래서 일주일만 같이 뛰어 놀거나 산책하지 않아도 이 개들은 우울증에 걸린다.

러시아 북방의 우체부이자 일본의 전설 – 사할린 허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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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사라져 오늘날에는 보기 힘든 이 썰매 개들이 연해주와 사할린 지역 소수민족인 니브흐족을 위해 살았던 때가 있었다. 발바닥이 넓적해서 눈 위를 달려도 발이 빠지지 않고, 영민하고 체력이 좋아서 극동 주민들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친구였다.

사할린 허스키가 끄는 썰매는 사할린에서 흔한 겨울 교통수단이었다. 30마리 개가 끄는 썰매는 눈보라를 이겨내면서 생선, 꽁꽁 언 우유, 우편물, 승객 등 물건과 사람을 실어 날랐다. 인간과 잘 어울리던 이 탄탄하고 온순한 개들은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붉은 군대에서 근무하게 된다.

하지만 소련은 원래 니흐브족들이 먹이를 주던 방식대로 소금에 절여 말린 연어를 사할린 허스키에게 계속 먹이로 주는 것은 국가적 차원의 낭비라 여겼고 이 개들을 없애기로 한다. 여기엔 슬픈 사연이 있다. 원래 북쪽에는 연어가 풍부해 가장 쉽게 줄 수 있는 먹이였다. 그런데 이 지역의 교통이 발달하고 주민이 늘어나 연어 소비가 는데다 수출까지 하게 되면서 자연 연어 값이 비싸졌다. 또 당시는 경제적으로도 힘든 시절어서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든데 어쩔 수 없다’며 다른 먹이를 찾기보다 차라리 죽이는 게 낫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 결과 사할린에서 이 품종은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 1950년대가 되자 사할린 허스키는 일본에 조금 남게 됐다. 그곳에서 그들은 국가 차원의 전설이 되었다.

1958년 일본 연구자들이 사할린 허스키들과 함께 남극 탐험을 떠났다. 엄청나게 강한 눈보라를 만난 탐험대는 썰매 개 15마리를 남겨둔 채 일단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자들은 곧 개들을 구하러 그곳으로 다시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날씨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그곳에서 죽었을 사할린 허스키들을 묻어주기 위해 일본 연구자들이 다시 남극으로 간다. 그런데 '타로'와 '지로' 두 마리가 기적적으로 살아 있었다. 일본 열도에서 이 살아남은 사할린 허스키 두 마리는 국민 영웅이 되었다. 그들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고, 그들이 등장하는 <남극>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찍었다. 이후 이 영화는 미국에서 다시 제작되었고 <에이트 빌로우>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미국 영화에선 8마리가 살아 남은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15마리중 5마리는 실종됐고 두 마리만 살아 남았다.

극지 탐험대원 – 네네츠족과 야쿠트족의 라이카

사진제공: Lori/Legion-Media사진제공: Lori/Legion-Media

20세기 상반기에 북방 탐험대에 참여하는 러시아 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이동 수단이 개썰매였다. 혹독한 기후환경에서 중요할 수밖에 없는 특수 관계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개와 사람 간의 끈끈한 관계였다.

게오르기 우샤코프 극지방 탐험가가 라이카 50마리와 함께 떠난 탐험 덕분에 1930년 '세베르나야 제믈랴('북쪽 땅'이라는 뜻)'라는 이름의 섬이 세계 지도에 새롭게 추가되었다. 우샤코프의 탐험대는 백곰, 물개, 바다표범 등을 잡아 신선한 고기로 라이카들을 먹였고, 개의 발에는 특수 신발을 만들어 신기고, 개들이 잠을 잘 수 있도록 눈구덩이를 파주었다. 개들이 수 천km 행군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그런 대우에 대한 보답이었을 것이다.

균형 잡힌 정신, 북유럽식 성격(인내력과 참을성이 강하고 조용하며 충직하다는 의미)에 입맛도 까다롭지 않은 라이카만이 2년간의 북극권 생활, 툰드라에서 매일 반복되는 작업, 기나긴 밤으로 특징 지어지는 극지 탐험의 혹독한 환경을 견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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