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북부의 유네스코 세계유산들

로리/레기언 메디아
러시아 최초의 수도 노브고로드와 잔존하는 쿠로시안 모래톱, 북방의 베니스로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지구의 형태와 크기 측정에 일조한 ‘스트루베 측지 아크’를 찾아 보기 바란다. 이 장소들은 러시아의 역사와 자연, 문화 유산을 조명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 연재기사에서 Russia포커스는 광활한 러시아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유네스코 유산 26곳으로 이뤄진 수 많은 불가사의를 살펴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프로그램은 세계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자연문화 랜드마크를 보존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우리의 유라시아 대륙 횡단 여행은 러시아 북부의 유네스코 유산을 집중 조명하는 여섯 번째 기사와 함께 막을 내린다.

노브고로드와 그 주변의 역사 유적들(1992년 등재)

러시아 최초의 수도로 간주되는 벨리키(Великий, 위대한) 노브고로드(보통 노브고로드로 간단히 알려짐)는 9세기 중반 연대기에서 처음 언급됐다. 오늘날 노브고로드는 약 50개의 중세 및 근대 초기 교회를 중심으로 한 고대 러시아의 살아 있는 박물관이다. 전성기를 구가했던 1300년대에 노브고로드는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였으며 몽골족에 한 번도 정복된 적 없는 몇몇 초창기 러시아 정착지 가운데 하나였다.


(사진제공=로리/레기언 메디아)

원래는 민회를 통해 도시국가로 운영됐던 노브고르드는 한자동맹(Hanseatic League) 도시들과 많은 공통점이 있었고 이 도시들과 밀접한 무역 관계를 유지했다. 러시아의 정신적 중심지 노브고로드에서는 현대 슬라브어 문어의 모체가 됐던 고대교회슬라브어(OCS)로 성경을 번역하는 등 러시아 정교회 학문이 오래 전부터 꽃을 피었다.

건축 면에서 볼 때 러시아가 이미 11세기 초부터 석조 건축의 민족적 양식을 발전시킨 곳도 바로 노브고로드였다. 성 소피야 지구는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크렘린 요새들과 11세기 중반 건설된 높이 38m의 원형 돔으로 이뤄진 성 소피야 성당을 포함하고 있다. 류리크 왕조가 노브고르드에 도착한 해이자 전통적으로 러시아 국가 창설 원년으로 간주되는 기원후 8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천 년을 기념하는 러시아 천년 기념비(Памятник “Тысячелетие России”)도 여기서 볼 수 있다.


(사진제공=로리/레기언 메디아)

노브고로드는 중세를 통틀어 예술 중심지였으며 예수변용교회(Церковь Спаса Преображения)의 벽들을 장식하고 있는 프레스코화들은 14세기 후반 그리스인 테오파네스가 그렸다. 테오파네스는 러시아 중세 미술학파를 부활시킨 것으로 인정받았고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성상화가가 된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가르친 스승이었다. 모스크바는 모스크바 공국이 1478년 노브고로드를 정복한 이후에야 비로소 러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됐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적 중심지와 관련 유적들(1990년 등재)


(사진제공=안톤 말코프)

러시아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에 관해 이전에 말하지 못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전통적인 러시아식 비잔틴 건축물 앙상블을 중심으로 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세계 건축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약 200년간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이곳의 해군성, 겨울궁전, 대리석 궁전, 페트로파블롭스크(베드로와 바울) 요새, 에르미타시 박물관은 하나같이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오토만 제국과 스웨덴 전쟁포로, 에스토니아와 핀란드 노동자들을 동원한 강제노동과 유럽 최고의 수많은 건축가의 설계를 통해 1703년부터 여러 섬 위에 건설되기 시작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거구의 표트르 대제(알려진 바에 따르면, 키가 2.03m였다고 한다)의 창조물이었다. 표트르 대제는 오늘날 5백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갖고 있고 다리와 운하, 선창, 거리, 고속도로와 터널로 연결되어 있는 이 정착지를 위해 어마어마한 꿈을 품고 있었다. 늪지대에서 진행된 놀랄 만한 규모의 도시 건설 기간은 20년도 채 안 됐다.

상트페테르부르크(나중에 페트로그라드와 레닌그라드로 불리기도 했지만, 1990년대에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는 19세기에 가서 제2의 개발 붐을 맞이했다. 카잔 대성당과 성 이삭 성당, 이탈리아 건축가 카를로 롯시(Carlo Rossi)의 많은 걸작품이 이때 설계됐다. 알렉산드린스키 극장과 참모본부 건물, 궁전광장 등이 롯시의 작품이다. 페테르고프와 로모노소프, 차르스코예 셀로, 파블롭스크, 갓치나에 있는 도시 근교의 황실 별궁들도 유네스코 유산 목록에 올랐다.

스트루베 측지 아크(2005년 등재)


(사진제공=Shutterstock)

스트루베 측지 아크(Struve Geodetic Arc)는 노르웨이에서 흑해까지 10개국 2,800km에 걸쳐 있는 측량 지점(토지 측량 시 사용하는 삼각 측량 지점)들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구의 크기와 형태를 밝혀내기 위해 자오선의 긴 부분을 측량하고자 했던 독일계 러시아인 천문학자 프리드리히 게오르그 빌헬름 폰 스트루베가 창안했다. 프로젝트 비용 대부분은 러시아제국 황제 알렉산드르 1세가 부담했다.

스트루베 측지 아크는 수많은 국가에 걸친 대규모 과학 협력의 초기 사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유네스코 유산 위원회의 인정을 받았다. 유네스코 등재 목록에 오른 34개의 아크를 포함하여 258개의 주요 측량 지점이 1816년과 1855년 사이에 설치됐다. 바위에 뚫은 구멍과 강철 십자가, 오벨리스크로 이뤄진 측량 지점들은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노르웨이 북단 함메르페스트까지 흩어져 있다.

쿠로니안 모래톱(2000년 등재)


(사진제공=Alamy/Legion Media)

이 흥미로운 땅은 유네스코 유산 목록에 오른 러시아 최서단 지역에 있다. 남쪽 절반은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주에 속해 있고 북쪽 절반은 리투아니아 땅이다. 두 부분은 하나의 길로 연결돼 있다. 쿠로니아 모래톱(Куршская коса)은 쿠로니아 만(Куршский залив)과 발트 해안을 분리하는 약 100km에 걸쳐 길게 구부러져 있는 모래톱이다.

기원전 3세기경 형성된 빙하 잔해들이 바람과 해류를 타고 충분한 모래를 밀어 올려 수상 육교를 지탱시키며 모래톱 토대를 형성했다. 튜턴 기사단 기사와 어부, 예술가 등 다양한 거주자들과 함께 2천여 년에 걸쳐 살아 남았던 굉장히 가느다란 모래톱의 연약함이야말로 이 자연의 불가사의를 돋보이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쿠로니아 모래톱은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끊임없는 인간의 정착 의지를 보여주는 탁월하고 특이한 사례로서 유네스코 유산 목록에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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