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카렐인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여행

라도가 호수 위의 석양 (사진제공=Shutterstock)

라도가 호수 위의 석양 (사진제공=Shutterstock)

핀우그르 계통의 소수민족인 카렐인들은 태고적부터 라도가 호수 북서 연안 지역과 핀란드 남동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러시아에 남아 있는 고대 카렐인 정착지 중에서 여행자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곳으로는 라흐덴포히야(Лахденохья), 쿠리요키(Куриёки) 근처의 요새들, 신비한 금석문들을 갖고 있는 푸도시(Пудож), 룬 노래로 유명한 칼레발라(Калевала), 축제로 유명한 올로네츠를 들 수 있다.

카렐인들의 땅은 12~13세기부터 고대 노브고로드의 일부였다. 카렐인은 1227년 정교를 수용했고 그 뒤로 러시아의 일부가 됐다. 현재 카렐인 대다수는 카렐 공화국(인구의 75%)에 거주하고 있다.

카렐 민족은 수렵과 거주에 이상적인 라흐덴포히야에서 기원했다. 이곳에는 멀리 내륙까지 들어가 있고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라도가 호수의 길고 그림 같은 피요드르(협만)들이 있다. 라도가 호수 북서 연안에 걸쳐 있는 이곳은 핀란드와 인접해 있다. 이웃 나라들의 잦은 침입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카렐인들은 적군의 공격을 멀리에서 볼 수 있도록 대개 접근하기 어렵고 경사가 가파른 언덕에 집을 지어야만 했다. 유사시 마을 주민들이 피신처로 삼기도 했던 이런 정착지들은 언덕 위의 요새를 뜻하는 린나부오리(линнавуори)와 린나먀키(линнамяк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런 장소들의 놀라운 특징은 이곳에 고대 카렐어 이름으로 불리는 강과 호수, 도시, 마을이 많이 보존돼 있다는 사실에서도 나온다.

라흐덴포히예

라흐덴포히예, 카렐 (사진제공=로리/레기언 메디아)
라흐덴포히예 (사진제공=로리/레기언 메디아)

라흐덴포히야에는 중세 초기에 지은 고대 카렐인들의 가장 오래된 집단 거주지가 있다. 이곳에는 고고학적 유물들이 바로 발 밑에 묻혀 있다. 지금까지도 현지인들은 10세기 청동 팔찌나 끝이 금속으로 된 창을 찾아내곤 한다.

현대 카렐인들의 조상인 '코렐라(корела)' 민족도 9~12세기 라흐덴포히야에서 기원했다. 수많은 정착지가 이 시기에 조성됐다. 이들은 오늘날의 쿠르키요키(Куркиёки)와 티우룰라(Тиурула), 소르타발라(Сортавала, '파아소' 정착지) 마을 주변에 특히 밀집해 있었다.

라흐덴포히야 시에서 42km 떨어진 쿠르키요키(카렐어에서 번역하면 '두루미 강'이라는 뜻)는 독특한 정착지로 그 주변에 고대 요새와 마을들이 세워져 있다. 이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린나부오리와 린나먀키, 야아먀키(Яамяки)를 들 수 있다. 쿠리요키에서는 매년 여름 7월이면 민속축제 '카렐 민족의 요람(Karjalan kansan pesa)'이 열린다.

일부 고대 유적들은 예를 들면 쿠르키요키에서 칸난사아리(Каннансаари) 섬까지 3km에 걸쳐 이어지는 돌다리 잔해처럼 라도가 호수 수위가 내려갈 때만 볼 수 있다. 이 섬에는 16세기 전까지 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다가 스웨덴인들에 의해 파괴됐다. 수도승들은 교회 귀중품을 건너편 호숫가에 수장시켰지만, 종만은 라도가로 가져왔다. 2000년 칸난사아리에서는 파괴된 수도원을 기념해 참배 십자가를 세워 축성했다.

빼어난 매 사냥꾼들로 유명한 고대 마을 쿠우팔라(Куупала)에는 '얼음 산' 야아먀키가 있다. 이곳 북쪽 경사면 계곡에는 얼음이 여름 끝 무렵까지 녹지 않고 남아 있다. 산이 높아 정상에서는 주변 풍경이 멋지게 내려다 보인다. 이곳에는 긴 방호벽을 두른 고대 마을이 잘 보존돼 있다.

소르타발라까지는 페트로자봇스크(284km 떨어짐)에서 노선버스로 가거나 총 40km 떨어진 발라암(Валаам)에서 승용차로 갈 수도 있다.

푸도시 군

카렐리야 푸도시 군(郡) (사진제공=로리/레기언 메디아)
카렐리야 푸도시 군(郡) (사진제공=로리/레기언 메디아)

푸도시 군은 고대 카렐인들이 거주하던 또 다른 땅으로 고대의 유물이 풍부하다. 바로 이곳 오네가 호수에서 해가 지고 뜰 때는 수많은 여행자의 눈 앞으로 '북부의 바위 책(Каменная Книга Севера)'이 펼쳐진다. 이곳에는 이집트 피라미드가 생겨나기도 전인 6~7천년 전에 생성된 암각화가 많이 있다.

카렐인들의 암각화는 숲 사이 섬들의 거대하고 평평한 바위들로 이루어진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곳에 정성스레 그려져 있다. 볼다(Волда) 강 어귀에서 말르이(Малый)와 볼쇼이 투리야(Большой Турия) 섬까지 21km에 걸쳐 1200개가 넘는 그림이 펼쳐져 있다. 암각화는 물고기와 사슴 사냥 장면들만 아니라 일상생활 장면들도 보여준다.

카렐리야 푸도시 지구의 암각화 (사진제공=로리/레기언 메디아)
카렐리야 푸도시 지구의 암각화 (사진제공=로리/레기언 메디아)

가장 많은 암각화는 페리 노스(Пери Нос)와 베소프 노스(Бесов Нос, 악마의 코)에 있다. 한편, 베소프 노스가 이렇게 불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오네가 호수 절벽에 사람인지 악마인지 모를 형상이 그려져 있는데, 이 형상의 몸통에 바위 틈이 뚫려 있다. 전설에 따르면, 2.5m 크기의 그림을 너무 오래 쳐다보면 정신을 잃거나 불쾌한 일을 많이 겪을 수 있다. 과한 호기심은 금물이다!

카렐 암각화들은 이상지대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사실 이들은 힘과 생기를 선사해 준다. 실제로 이 놀라운 장소에 도달하기까지 매우 험난한 길을 가기 위해서는 이들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믿을 필요가 있다.

암각화들을 보러 가려면 페트로자봇스크에서 샬스키(Шальский) 마을까지 배를 타고 가야 한다. 이 마을은 어업이 활발하여 어업용 개인 보트가 많이 있다. 보트를 타고 벨르이 노스(Белый Нос) 곶, 가지(Гажий), 클라도베츠(Кладовец) 또는 페리 노스까지 갈 수 있다. 자동차를 이용하면 푸도시 시까지 갈 수 있지만, 코르셰보(Коршево) 마을까지 더 가려면 자동차를 놓고 가야 한다. 진흙길을 따라 15km를 가야 하는 암각화는 도보 여행자들만 가끔 갈 수 있다.

오네가 호수

카렐 암각화마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북쪽의 백해 암각화를 방문해 볼 만하다. 이 그림들 사이에는 카렐인들이 바위 전체에 길게 스키를 드리우고 있는 스키어 그림을 남겨 두었다. 이 그림은 스키에 관한 세계 최초의 언급으로 간주되고 있다.

오네가 호수 (사진제공=이타르타스)
오네가 호수 (사진제공=이타르타스)

푸도시 지구를 계속 살펴보면서 고대 카렐인들만 아니라 현대 유럽인들에게도 중요한 호수인 오네가 호수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오네가 호수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로, 이곳의 물은 많은 지표에서 심지어 바이칼 호수의 물보다 더 깨끗하다. 바이칼 호수의 최대 수심 1642미터에 비해 120미터로 수심이 그다지 깊지 않은 오네가 호수에는 110개 이상의 강이 흘러 들고 있지만, 흘러 나가는 강은 바이칼 호수의 경우처럼 스비리(Свирь) 강 하나뿐이다. 호수의 좁고 긴 윤곽은 수많은 섬을 만들어 내는 높은 암벽 기슭들로 둘러 쌓여 있다. 풍경은 거칠고 낭만적이며 심지어 동화적이기까지 하다.

오네가 호수 동쪽 기슭의 무롬 곶에는 1350년 무롬의 라자리(Лазарь Муромский)가 세운 무롬 성모승천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다. 라자리의 유해는 그가 세운 세례자 요한 교회 제단에 모셔져 있다. 수도원은 1918년에 폐쇄됐다가 1991년에서야 복원됐다.

칼레발라 마을

카렐인들의 또 다른 고대 고향인 북서 프리라도지예(Северо-Западное Приладожье)는 과거 우흐타(Ухта)로 불렸던 전설적인 마을 칼레발라를 품고 있다. 여행자이자 카렐-핀란드 고대 서사시의 가장 유명한 연구자인 엘리아스 룐로트(Элиас Лённрот)가 세세손손 전해져 온 고대 카렐인들의 전설과 노래들을 꼼꼼하게 수집한 곳이 바로 여기였다. 일반적으로 카렐리야 북부의 룬(руны) 노래 전통은 수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지만, 카렐 마을들의 룬 노래 문화가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진정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한 것은 바로 '칼레발라' 덕분이었다.

엘리아스 룐로트가 수집한 룬 노래의 기원은 1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룬은 그냥 불려지지 않았다. 룬은 뜨개질을 하고 실을 뜰 때도 불렀고 딸기를 딸 때나 원정 길에 나서는 남자들의 짐을 챙겨줄 때도 불렀다. 현지 주민들은 '칼레발라'의 주인공들에 관한 룬 노래들을 기억해 우리에게 전하면서 현대에 관한 노래들도 지었다. 예를 들면 20세기에는 집단농장의 삶과 유리 가가린의 우주비행에 관한 노래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칼레발라 룬 노래 박물관은 가장 유명한 노래꾼인 마리야 렘슈(Мария Ремшу)의 집에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칼레발라'의 정신은 칼레발라의 할머니들이 간직하고 있다. 이들은 민속의상을 차려입고 오래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새로운 노래를 짓기도 한다.

(사진제공=로리/레기언 메디아)
(사진제공=로리/레기언 메디아)

칼레발라는 고대 카렐인들의 전통들도 유지하고 있다. 자작나무 껍질로는 접시와 꽃, 사우나용 모자를 만든다. 연기로 가열하는 사우나는 카렐인들의 삶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다. 사우나에서는 목욕도 했고 마술 의식도 거행했다. 사우나는 금기로 가득찬 장소였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소곤소곤 얘기하고 청결을 유지해야만 됐고, 심지어는 빨래도 금지됐다.

현지 장인들은 자작나무 껍질로 예배당 모양의 부적도 만들었다. 카렐인들은 가정을 꾸릴 때는 집을 지어야 하고 아이를 낳으면 집에 창문 하나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칼레발라까지는 케미(Кемь) 역에서 기차를 타고 갈 수 있으며 승용차로는 칼레발라 마을까지 180km를 달려 갈 수 있다. 페트로자봇스크에서 칼레발라까지 노선버스가 매일 운행한다. 9~10시간 걸린다.

올로네츠

올레네츠는 카렐인들이 주민 대다수를 구성하는 칼레리야 유일의 도시다. 가장 많이 이용되는 노선은 올레네츠의 고대 일상생활을 보존하고 있는 카렐리야 남부의 마을들을 경유한다. 이곳에는 보석세공상들의 마을 유르겔리추(Юргелицу)와 사냥꾼들과 어부들의 마을 쿠이테자(Куйтежа), 고대 카렐 전통가옥들이 보존돼 있는 볼샤야 셀가(Большая Сельга) 마을도 있다. 주민들이 매년 경의를 표했던 수호신이 마을마다 존재한 점도 흥미롭다.

올레네츠는 축제가 가장 많이 열리는 도시로 간주되고 있다. 가을에는 카렐인의 시(詩)와 민속의상 축제가 열리고 겨울에는 카렐판 산타클로스 '파카이네(Паккайне)'를 선발한다. 하지만 파카이네는 사실 할아버지가 아니라 장난꾸러기 소년이다. 봄에는 '올로니야, 거위 수도' 축제가 열리고 여름에는 '젖소 행진'이 펼쳐진다.

올레네츠의 스몰렌스크 성모 성상 교회 (사진제공=로리/레기언 메디아)
올레네츠의 스몰렌스크 성모 성상 교회 (사진제공=로리/레기언 메디아)

페트로자봇스크에서 올로네츠까지 거리는 153km이고 기차나 버스로 갈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직행 전차와 버스가 운행한다. 거리는 148km다.

This website uses cookies. Click here to find out more.

Accept cook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