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 반도의 신비한 '원형 돌 미로' 탐사대 귀환

(사진제공=SityShoo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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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초 이상현상 연구단체 ‘코스모포이스크’가 러시아 서북부에 위치한 콜라 반도 탐사 일정을 마쳤다. 콜라 반도에서는 최소 다섯 개의 돌 미로가 발견됐다. 그중 일부는 기원전 20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오래됐다는 말이다. 주류 학계에서는 이 미로들이 북방 민족들의 종교 의례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이상현상 연구자인 ‘코스모포이스크’ 회장 바딤 체르노브로프는 이 돌로 만든 미로 문양이 고대 뱃사람들을 위한 등대 역할을 했을 것으로 확신한다.

미로의 기원

러시아 북극권 이북에서 가장 유명한 미로는 콜라 반도 남쪽에 있는 작은 도시 칸달락시(Кандалакша,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1,296km)에서 도보로 갈 수 있다.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헤매지 않도록 지역 환경단체의 자원봉사자들이 표지를 만들어 놓았다. 고대의 건설자들은 미로를 만들 곳으로 완벽한 원형의 반도를 선택했다. 돌을 깔아 만든 길은 풀과 이끼로 거의 뒤덮여 있다. 이 고고학적 유물이 기원전 2000년경에 지어졌다는 문구가 쓰인 거대한 석판만이 이 곳이 특별한 곳임을 일깨워 준다.

학자들이 '바빌론'이라고도 부르는 이런 미로들은 백해와 바렌츠 해 연안,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영국 도서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대인들이 왜 돌을 쌓아 미로를 만들었는지에 관해선 아직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그 기원을 두고 학자들은 두 파로 나뉘었다. 한 편은 미로가 무속 의식에 쓰였다고 본다. 다른 편은 미로가 실용적인 용도로 사용됐을 것이라 믿고 있다. 고기를 잡는 덫이나 뱃사람들을 위한 방향 지침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뱃사람들은 안전한 정박지에 표시를 해 둘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해안을 출발해 외해로 가로질러 나갈 수 있는 지점을 표시하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는 것이 체르노브로프의 견해다. "고대에는 폭풍우가 불 것을 염려해 가능한 해안을 따라 항해하려 했다. 하지만 해협이나 만, 외해를 가로질러 항로를 단축할 필요가 있는 곳도 많았다. 이 미로들은 해안을 따라 항해사를 이끌어주던 '아리아드네의 실'을 이루는 점들이었다".

가설과 증거

탐사대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입증하는데 미로의 기하학적 구조를 든다. 그들은 얼마나 먼 바다에서 이 구조물을 볼 수 있었을 지를 계산하고 있다. 체르노브로프는 극지의 낮이 계속되는 동안 태양의 위치에 상관없이 수 킬로미터 거리에서도 구조물이 보이도록 일부러 미로의 문양을 원형으로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이번 탐사 기간 중 대원들은 이 미로형 구조물들의 위치가 바위나 나무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은, 항상 햇빛을 받아 음울한 주위 풍경과 대조되어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배치되어 있다는 점에 여러 차례 주목했다. 이 둥근 미로형의 구조물은 이끼나 지의류로 뒤덮여도 식별이 가능하며, 그 위로 눈이 10~20cm씩 쌓이는 겨울에도 그 문양이 선명히 보인다. 눈이 너무 많이 오면 항해는 다음 봄까지 중단되었다.

'코스모포이스크'의 가설은 학계에서 인기를 끌지 못했다. 학자들은 대부분 고대인들이 이 미로를 풍어를 기원하거나 하는 종교 의식에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니면 원형 문양이 저승으로 가는 통로이거나, 죽은 자의 영혼이 이승에 들어올 수 없도록 헤매게 만드는 수단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주류 학자들은 미로가 항로의 지침이었다는 가설이 비과학적이라고 말한다. "그 가설을 지지하는 사람은 실제 뱃사람이 미로가 뱃길을 잡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언급을 한 사료를 하나라도 들 수 있는가? 없을 것이다. 그런 사료는 본 적이 없다. 과학은 바로 그런 자료에 기초해야 한다"고 무르만스크 주 향토박물관의 연구원 콘스탄틴 콧킨이 설명했다.

콜라 반도에도 '독살'이?

미로에 관한 기사들을 보다 보면 또 하나의 가설을 접할 수 있다. 미로가 물고기가 풍부한 바다 근처에 지어진 만큼 어로에 쓰였을 수도 있다는 설이다. 밀물 때 돌로 쌓은 미로 속으로 들어왔다가, 썰물 때까지 미처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한 고기들을 잡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가설도 학계 전반의 인정을 받진 못했다.

콧킨의 생각에 따르면, 이런 방법으로 먹고 살 만큼 고기를 잡으려면 어부들이 그물을 치는 만큼의 빈도로 엄청난 수의 미로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또 한가지 쟁점은 미로가 언제 만들어졌느냐 하는 것이다. 20세기 중반에 학자들은 미로의 나이를 4000살로 추정했다. 현대 학자들은 미로가 그보다 훨씬 나중에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미로 위에 자란 지의류의 두께로 조성 시기를 파악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무도 정확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 형성 시기든 용도든 과학은 어떤 의문에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로가 스스로에 대해 우리에게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증거를 모으기도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별의별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견해가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됐건 미로가 러시아 북부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소중한 유적인 것은 분명하다"고 콧킨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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