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제국의 기억을 찾아… 모스크바 ‘아르누보 건축물’ 탐방

(사진제공=로리/레기언메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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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 양식 저택부터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임대아파트까지

모스크바 아르누보를 테마로 한 외국어 투어:

유명한 모스크바 관광 가이드 일로나 고르스카야는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모스크바 건축물을 둘러 보는 프랑스어 도보투어를 운영한다. '투어스 바이 로컬스(Tours by locals)'라는 단체는 건축, 문학, 인물 등 도시 역사의 여러 주제와 관련된 개인 투어를 위한 프랑스어 통역 가이드와 영어 통역 가이드를 제공한다. 그 외에 '투어스 인 러시아(Tours in Russia)' 여행사는 모스크바 아르누보 건축물 투어를 운영한다. 도보 및 버스 투어, 단체 및 개인 투어 모두 가능하다.

19세기 말에는 아르누보(신예술) 양식이 국제적으로 유행했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에서는 '제체숀( 분리파)'으로, 독일에서는 '유겐트스틸(청년양식)'로 불렸다. 러시아에서 아르누보는 '모데른(모던)', 또는 '세베르니 모데른(북구모던)'이라 불렸고 특히 건축 분야에서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25년 동안 이어진 러시아의 아르누보 시대는 제1차 러시아혁명(1905년)과 그에 따른 급격한 역사적 변혁들에 의해 맥이 끊어지고 만다. 러시아식 '모던'은 새로 탄생한 공산주의 국가와 어울릴 수 없었다. 소련의 건축양식은 미니멀리즘적 구성주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들은 불과 25년 만에 모스크바 역사적 중심부에 자리를 잡았고 오늘날까지 그 자리에서 울타리의 화려한 꽃 문양을 살랑거리고 삼각형 페디먼트 속 천사 석고상의 이마를 반짝거리며 사라진 제국의 정교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19세기 말 경 모스크바는 건축개발 속도에서 유럽의 모든 대도시를 능가했다. 해외에서 교육을 받고 온 신세대 러시아 산업가들 덕분에 모스크바 중심부에는 모던 양식으로 지은 임대아파트와 저택들이 대거 들어서게 됐다. 아르누보 양식 건물들은 현재 불바르노예 칼초(가로수 환상도로), 구아르바트 구역과 트베르스카야 거리, 키타이고로드 지구, 귀족적인 분위기의 포바르스카야 거리와 프레치스텐카 거리에서 볼 수 있다.

크렘린궁 지척에 있는 마브리탄스키 성

아르세니 모로조프 저택
아르세니 모로조프 저택 – 모스크바 중심부 보즈드비젠카 거리(16번지)에 있는 저택. 건축가 빅토르 마지린이 백만장자 아르세니 모로조프의 의뢰를 받아 1895~1899년 사이 건축했다. (사진제공=로리/레기언메디아)

러시아 아르누보 시대 초기 이 새로운 건축양식에 대한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예를 들어, 모스크바의 부유한 상인이었던 아르세니 모로조프가 지은 새 저택에 대해 그의 어머니는 탐탁치 않은 반응을 내비췄다. 그녀는 "...우리 아들이 바보라는 건 나 밖에 몰랐는데, 이제 모스크바 사람 전부가 알게 생겼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늬가 새겨진 탑, 꽈배기 기둥, 조각된 발코니와 건물 전면부의 작은 조개장식들 때문에 이 저택에는 '마브리탄스키(무어식) 성'이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건축가 빅토르 마지린이 무어 양식을 모방하여 지은 이 저택은 크렘린궁 성벽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위치했는데, 모스크바 시민들의 가혹한 비판의 대상이 됐다.

모스크바의 '사랑', 르 코르뷔지에

한편, 이에 못지 않게 과시적인 건물로 프로스쿠린과 폰 고갱의 설계로 1899~1902년 사이 지어진 스트라스노이 불바르의 '도호드니 돔(임대 아파트)'가 있다. 이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직접 꼽은 건물이다. 프랑스 출신 건축가인 그는 '새로운 국가'의 수도로서의 모스크바 개조를 위한 도시종합계획의 개발에 참여했다. '찬란한 빛'의 이상적인 도시를 건설하자고 그는 제안하면서 이를 위해서는 크렘린궁과 볼쇼이 극장만 남겨두고 도시의 모든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발상을 내놓기도 했다.

그 외에 그는 보존해야 할 건물 목록에 스트라스트노이 불바르의 아파트도 넣었다. 박쥐, 샐러맨더, 불만스런 천사, 로렐라이와 가고일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아파트 전면은 그 정도로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이다. 이런 조각 장식 덕분에 사람들은 이 건물을 흔히 '가고일의 집'이라고 불렀다.

레닌 묘와 '프롤레타리아 모던'

야로슬라블 역
야로슬라블 역 (사진제공=로리/레기언메디아)

러시아 모던의 대표적 건축가 중 하나는 표도르 셰흐텔이다. 야로슬라블 역, 데로진스카야 저택, 카메르게르스키 골목의 모스크바예술극장를 비롯한 수 많은 건물들이 그의 손을 거친 작품들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파도 위를 나는 갈매기 형상은 셰흐텔이 극장의 무대 커튼에 쓰려고 고안한 그림인데, 지금도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공식 엠블럼으로 쓰이고 있다.

체호프 기념 모스크바 예술극장
체호프 기념 모스크바 예술극장 (사진제공=로리/레기언메디아)

인상적인 점은, 셰흐텔은 건축 교육을 받지 않고도 자신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사바 모로조프 저택을 설계하고 지었다는 것이다.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사바 모로조프는 자신이 원하는 양식, 즉 영국식 네오고딕 양식으로 해달라는 주문만 했을 뿐 건축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일임했다. 사바 모로조프는 이 집에 혁명가 바우만을 숨겨주었다. 모스크바 총독을 위하여 열린 연회에서 레닌의 전우 바우만이 모스크바 최고권력자와 한 테이블에 앉아있는 동안, 모스크바 경찰 전체가 그를 찾고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셰흐텔의설계가장반향을일으킨것은거대한유리피라미드형태의레닌묘인데실현되지는못했다. 셰흐텔은나름대로미래를내다본사람이다. 붉은광장의명소가뻔한묘의모습은 1980년대말에세워진루브르박물관의피라미드와완전히똑같다.

러시아의 빅토르 오르타

메트로폴 호텔. 모스크바 중심부에 위치(테아트랄니 통로 2번지)하며 1899~1905년 사이 건축됐다.
메트로폴 호텔. 모스크바 중심부에 위치(테아트랄니 통로 2번지)하며 1899~1905년 사이 건축됐다. (사진제공=로리/레기언메디아)

모스크바 최초의 아르누보 건축가이자 최고의 아르누보 거장 중 하나인 레오니드 케쿠셰프는 글라좁스키 골목에 자신의 저택을 지으며 경력을 시작했다. 그의 포트폴리오에는 도시 중심부의 오스토젠카 고급 주택가의 저택들, 인근 하모브니키의 임대아파트들, 객실에 전화와 온수시설(20세기 초에는 보기 힘든 사치품)이 구비된 메트로폴 호텔 등 모스크바의 대표적 건축물들이 대거 포함된다. 1906년 이 호텔 부대시설로 모스크바 최초의 2개 상영관을 갖춘 영화관이 문을 열었다. 케쿠셰프의 스타일은 빅토르 오르타(벨기에의 아르누보 건축가)식 프랑코-벨기에 아르누보라 묘사된다.

모스크바에서 꼭 봐야 할 모던 양식 건축물:

혼자서 모스크바를 다니며 아르누보의 '랜드마크'를 둘러보고 싶다면, 다음 19~20세기의 5대 걸작 건축물을 놓치지 말자.

랴부신스키 저택(말라야 니키츠카야 거리 6번지) - 현재 이곳에는 소련 작가 막심 고리키의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매일 11시부터 16시까지 개방하며 입장은 무료이다. 견학 안내는 러시아어로만 진행된다.

마브리탄스키 성(아르세니 모로조프 저택)(보즈드비젠카 거리 16번지) - 현재 러시아 연방정부 리셉션 하우스로 사용되고 있어 내부는 들어가볼 수 없다. 그러나 저택 주변을 쭉 돌아보면서 그 유명한 '콘차스'(조개껍질) 사진을 찍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체호프 기념 모스크바예술극장(카메르게르스키 골목 3번지) - 극장 건물뿐만 아니라 카메르게르스키 골목 전체가 모스크바 아르누보 유적이다. 극장의 중앙 출입구 위에 양각으로 새겨진 '플로베츠(수영선수)'상도 역시 아르누보 양식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 외 극장 구내 레스토랑도 가 볼만 하고, 지금도 러시아 최고의 드라마극장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는 이 극장에서 연극 한 편을 보는 것도 추천한다. 티켓 가격은 10유로(약 만 4,620원)부터다.

야로슬라블 역(콤소몰스카야 광장 5번지) - 역사 내부를 둘러볼 것은 추천하며, 콤소몰스카야 광장 반대편 끝에서 역 건물을 조망하는 것도 흥미롭다. 역을 설계하면서 셰흐텔은 러시아 북부의 시골교회들을 모방했는데, 이는 역사의 거대한 검은 지붕만 봐도 알 수 있다.

메트로폴 호텔(테아트랄니 통로 2번지) - 이 호텔은 붉은 광장 바로 건너편, 모스크바 최고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어 그냥 지나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건물 외관과 모자이크 벽화만 보고 올 필요는 없다. 최소 200유로(약 29만 2,900원)로 하루 숙박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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