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숟가락
블라디미르 스미르노프/ 타스러시아가 2018년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다. 개최까지 2년 남아 있지만 벌써 축구팬들이 응원하는데 쓸 전통 악기가 등장했다. 나무 숟가락이 주인공인데 고대 루시 시대부터 타악기로 사용돼 왔던 것이다.
나무 숟가락으로 하는 음악 (동영상제공=YouTube)
경기장에서 성난 벌떼들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연상시키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부부젤라와는 달리 러시아의 나무 숟가락은 나쁘지 않은 선택 같다. 연주자의 능숙한 손이 조화롭게 리듬을 타면 재미있는 소리를 빚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스페인의 캐스터네츠 연주를 떠올리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나무 숟가락을 한꺼번에 사용하면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기가 정말 어렵게 된다. 그런 상황이라면 적어도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아주, 아주 시끄러운 소리가 날 거다.
러시아 전통 악기인 '숟가락'은 고대 루시 시대부터 취식 도구로 사용되었으니 진짜 숟가락이 맞다. 참피나무, 사시나무, 단풍나무, 마가목 등 여러 가지 나무를 재료로 썼다. 숟가락이 언제부터 전통 악기로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13세기에 처음 사용되었다는 전언도 있지만, 일부 역사학자들은 18세기 말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음식 먹는데 쓰는 평범한 숟가락과 이 숟가락의 다른 점은 단단한 정도일 것이다. 숟가락이 부러지지 않도록 단풍나무와 자작나무 같은 두껍고 단단한 나무를 재료로 쓴다. 나무 종류에 따라 숟가락이 내는 소리도 다양하다.
사진제공: Press Photo
월드컵 응원 도구로 쓰일 전통 악기를 선택할 때 중요한 사항 중 하나가 개최국과 얼마나 문화적 연관성이 있느냐이다. 러시아에는 수많은 전통 악기가 있지만, 이 기준에서 숟가락이 단연코 으뜸을 차지했다.
모스크바 근교 도시 엘렉트로스탈에서 러시아 전통 악기를 만드는 루스탐 누그마노프 장인은 “남아공 월드컵서 사용된 부부젤라가 많은 비판을 받았기 때문에 관악기는 일단 제외했다. 또 사용하기 어렵거나 크기가 큰 악기를 제외했다. 그렇게 발랄라이카, 아코디언, 구슬리(gusli), 구독(gudok), 덜시머(dulcimer) 같은 현악기들이 제외됐다”고 인터넷 매체 Znak.com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상징할 숟가락을 만드는 악기장이다.
이 발상은 러시아가 취리히에서 월드컵 개최 의사를 공식적으로 피력했던 2010년에 등장했다. 아이디어는 7년에 걸쳐 다듬어졌다. 러시아인이 이미 알고 있는 숟가락을 그대로 월드컵의 상징물로 사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체르노프/ 리아노보스티
손에 숟가락을 몇 개 쥘지는 리듬의 난이도와 연주자의 실력이 결정한다. 초보자라면 기본 세트(2개)를 한꺼번에 사용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숟가락 두 개를 교묘한 방법으로 손가락 사이에 끼워 넣어야 한다. 러시아 사람이라도 처음부터 잘하지는 못한다. 더구나 러시아에서 실제로 숟가락을 연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숟가락은 이미 오래전에 용도가 바뀌어 기념품 매대에 올라와 있고 이것이 과거에 악기로 쓰였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턱 없는 관광객들에게 주로 팔리는 상품이 되었다.
(동영상제공=YouTube)
여하튼 이 숟가락은 주목받는 주류 상품이 아니다. 보고 지나치지 않는 이들은 러시아 민속 공연단뿐이다. 게다가 이것은 음향 효과를 주기 위해서 불기만 하면 되는 피리도 아니다.
사진제공: 블라디미르 스미르노프/ 타스
이 문제를 놓고 누그마노프 악기장은 고민에 빠졌다. 그는 V자 형태로 숟가락 모양을 잡아주는 고무 받침대를 고안해냈다. 그 덕분에 숟가락 연주를 배우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연습하지 않아도 된다. 받침대로 고정한 숟가락 악기는 라틴어 'V'를 닮아서 'Victoria(빅토리아, 라틴어로 '승리'라는 뜻)'를 연상할 수 있다. 현재 이 악기에는 '승리의 숟가락'이라는 가제가 붙어있다.
이 발상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승인을 이미 받았기에 조만간 누그마노프 장인은 1백 만 루블(1900만 원)의 대통령 지원금을 받는다. '승리의 숟가락' 프로젝트 작업에 산업디자인 전문가와 디자이너들이 합류하고 '일련의 과학적 연구와 사회조사'가 진행될 것이다(어쩌면 악기 소리 때문에 사람들이 받을 스트레스 방지용 연구조사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