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로 재미 본 러시아, 육상·축구서도 영입 나서

러시아에서 귀화 선수들은 여러 모로 역할 한다. 어떤 이는 자극을 주고 어떤 이는 행복을 준다. 지난 3월 전 러시아 쇼트트랙 대회를 앞두고 세묜 엘리스트라토브(왼쪽)가 귀화 선수인 안현수(빅토르 안)과 함께 연습하고 있다. (사진제공=리아노보스티)

러시아에서 귀화 선수들은 여러 모로 역할 한다. 어떤 이는 자극을 주고 어떤 이는 행복을 준다. 지난 3월 전 러시아 쇼트트랙 대회를 앞두고 세묜 엘리스트라토브(왼쪽)가 귀화 선수인 안현수(빅토르 안)과 함께 연습하고 있다. (사진제공=리아노보스티)

2014 소치 올림픽 이후 시작된 겨울 스포츠 시즌에서 러시아 선수들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낯설었던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소치 올림픽에서 귀화 선수들이 쇼트트랙과 스노보드에서 메달을 따냈다면, 1년이 지난 지금은 '국내파' 선수들이 승리를 거머쥐고 있다.

◆쇼트트랙, 챔피언의 감각을 접붙임 받다=쇼트트랙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24세의 우파 출신 선수 세묜 엘리스트라토프가 가장 영예롭다고 꼽히는 1500m에서 우승했다. 한국에서 귀화한 소치 올림픽의 영웅 빅토르 안은 종합 9위에 머물며 시들하게 시즌을 마감했다. 그러나 알렉세이 크랍초프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은 "안 선수가 없었다면 엘리스트라토프가 이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안 선수는 우리 선수들에게 매 연습 경기를 마지막 경기인 것처럼 뛰도록 가르쳤다. 올림픽 6관왕인 안 선수가 온갖 열정을 다해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러시아 선수들은 눈이 빛났다. 나는 러시아가 앞으로도 외국인 선수들을 대표팀에 영입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런 선수는 러시아 선수들보다 두어 단계 수준이 높아야 한다"고 크랍초프 회장은 덧붙였다.

◆스노보드, 관객들의 관심이 폭발하다=러시아 스노보드 대표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시베리아 타시타골 시 출신 안드레이 소볼레프(25) 선수가 지난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평행대회전)과 은메달(평행회전)을 목에 걸었다. 큰 화제를 일으키며 새 유망주로 떠오른 것이다.

반면 2012년 귀화해 러시아 국가대표 올림픽 2관왕에 빛나는 빅 와일드는 허리 부상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출전해 소볼레프 뿐 아니라 다른 다섯 명 선수보다 부진했다. 하지만 소볼레프는 와일드 선수와의 경쟁이 자신을 새로운 단계로 이끌었다고 확신하고 있다.

소치 올림픽 스노보드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딴 빅 와일드(왼쪽)와 그의 러시아 부인 알료나 자브라지나. 와일드는 2011년 결혼 뒤 국적을 미국에서 러시아로 바꿨다. 그는 러시아 안드레이 소블레프 선수에게 끊임없이 자극을 준다. (사진제공=리아노보스티)
소치 올림픽 스노보드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딴 빅 와일드(왼쪽)와 그의 러시아 부인 알료나 자브라지나. 와일드는 2011년 결혼 뒤 국적을 미국에서 러시아로 바꿨다. 그는 러시아 안드레이 소블레프 선수에게 끊임없이 자극을 준다. (사진제공=리아노보스티)

"와일드 선수가 올림픽을 제패하자 불가능한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함께 훈련을 많이 하면서 여러 기술을 보강하고 조언을 얻었다. 운동에 대한 와일드 선수의 의연한 태도에는 전염성이 있다. 나는 외국인 선수들의 귀화 정책이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생각한다. 러시아가 아니었다면 미국 대표팀에 들어가지 못한 와일드 선수를 세계가 알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러시아에선 와일드 선수가 귀화하면서 스노보드 후원사가 늘었고, 관객들의 관심도 높아졌으며, 러시아 사람 수 천 명이 스노보드를 타기 시작했다. 다 와일드 선수 덕분이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소볼레프가 본지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육상과 축구, 케냐와 브라질의 도움 받얻나=하계 종목으로는 귀화한 육상 선수를 영입하는 문제는 이미 논의되고 있다. 이번에 케냐 출신 육상선수 네 명이 한꺼번에 러시아 대표팀에 들어오고 곧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다. 아직 이들은 카잔에 있는 스포츠 관광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선수는 지난 2012년 이스탄불 마라톤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는 25세의 에반스 키플라가트다.

브라질 출신으로 ‘크라스노다르’ 축구단 소속인 아리(왼쪽)가 ‘스파르타크’(모스크바)와의 경기에서 뛰고 있다. (사진제공=리아 노보스티)
브라질 출신으로 '크라스노다르' 축구단 소속인 아리(왼쪽)가 '스파르타크'(모스크바)와의 경기에서 뛰고 있다. (사진제공=리아 노보스티)

축구 대표팀에도 귀화 선수가 영입될 가능성이 있다. 크라스노다르 팀 소속인 브라질의 아리 선수와 주앙지뉴 선수가 러시아 국적 취득 신청을 낸 것이다. 이제는 파비오 카펠로 대표팀 감독에게 모든 게 달렸다. 카펠로 감독이 이 선수들을 팀에서 보길 원한다면 선수들이 이른 시일 내에 러시아 국적을 얻도록 러시아 체육부가 지원사격에 나설 것이다.

그러나 전 소련 축구대표팀 감독이자 1988년 올림픽 챔피언인 아나톨리 비쇼베츠는 두 선수의 귀화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헐크, 다니, 발뷔에나 같은 러시아 리그에서 스타급인 선수들이 귀화한다면 누구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선수들이 국적을 얻기 위해 귀화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리 선수나 주앙지뉴 선수가 팀 내에선 좋은 경기를 펼쳐도, 대표팀에 가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국내 선수들을 믿고, 대표팀에 지금 당장 젊은 국내 선수들을 영입하는 걸 겁내지 말아야 한다."

한편 러시아 국민은 귀화 선수가 대표팀에서 뛰는 모습을 볼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 전러시아여론조사센터의 2014년 3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국민 중 72%가 외국 선수의 귀화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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