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올해를 빛낸 러시아 운동선수 10'

피겨 국가대표팀의 올림픽 제패, 귀화 선수들의 활약, 다닐 크비아트의 환상적인 F1 데뷔, 부상을 극복한 마리야 샤라포바의 성공적인 복귀, 롤러코스터 같은 한 해를 보낸 하키선수 보이노프 등 2014년 러시아 스포츠에서 가장 돋보인 선수들을 Russia포커스가 모아 보았다.
안드레이 카르기노프 (사진제공=AFP/East News)
안드레이 카르기노프 (사진제공=AFP/East News)

안드레이 카르기노프, 자동차 경주

다카르랠리에서 러시아 '카마즈 마스터'팀이 우승하는 것은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다. 러시아가 트럭 부문을 제패한 건 한 두 해의 일이 아니지만, 매번 우승의 이면에는 저마다의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다카르랠리 7관왕(마지막 우승은 2011년)에 빛나는 전설적 선수 블라디미르 차긴이 은퇴한 후 경합은 특히 치열해졌다. 올해 경주에선 카마즈 마스터 팀의 안드레이 카르기노프와 네덜란드 이베코의 제라드 드 루이가 마지막 순간까지 승부를 겨뤘다. 결승선 부근에선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지기도 했다. 최종 구간에서 카르기노프가 사고 난 중국 팀을 돕느라 트럭을 세워야 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써버린 카르기노프는 드 루이에게 역전당해 2위로 결승선을 끊었다. 그러나 심사위원단은 카르기노프의 최종 기록에서 사고 때문에 멈췄던 시간을 제외해 판정을 내렸고, 그는 당당히 우승을 거머쥐었다. 카르기노프에게도 극한의 환경에서 자동차를 모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모험이다. 2013년에는 마지막 구간에서 바퀴가 셋 남은 트럭으로 결승선에 들어와 3위를 차지했고, 2014년 랠리 도중엔 일사병에 걸리기도 했다.

율리야 리프니츠카야 (사진제공=Getty Images/Fotobank)
율리야 리프니츠카야 (사진제공=Getty Images/Fotobank)

율리야 리프니츠카야, 피겨스케이팅

지난 2월 16살의 율리야 리프니츠카야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 삽입곡에 맞춰 단체 쇼트 프로그램을 완벽히 소화하면서 세계 주요 언론의 1면을 장식했다. 붉은 의상의 소녀는 관중과 전문가들의 찬사는 물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직접 쓴 편지까지 받았다. 금메달은 단체팀 전원에게 돌아갔지만, 주인공은 단연 리프니츠카야였다. 안타깝게도 어린 율리야는 긴 경기 일정 동안 평정심을 유지할 정신력이 부족했는지 개인전에선 실수를 거듭해 5위에 머물렀다. 리프니츠카야도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계속 좋은 성적을 내긴 아직 어렵다고 고백했다. 지난 11월 빚어진 중국 그랑프리 시상식 불참 논란도 피로와 압박감 때문이었다. 리프니츠카야는 그저 너무 긴장했던 탓에 시상식을 깜빡 잊었다고 말했다.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사진제공=AFP/East News)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사진제공=AFP/East News)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피켜스케이팅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는 소치 아이스버그 경기장의 천장 아래 빛난 또 하나의 어린 별이었다. 18살인 소트니코바는 처음엔 대표팀 내 더 어린 선수 리프니츠카야에 가려졌지만, 개인전에서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소트니코바는 론도 카프리치오소에 맞춘 프리 프로그램에 고난도 요소를 여럿 배치해 이탈리아의 쟁쟁한 카롤리나 코스트너뿐 아니라 금메달 유망주 한국의 김연아도 제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소트니코바의 우승 판정이 불공정하다고 봤고, 그녀의 우승은 논란거리가 되었다. 한편 러시아의 유명한 코치인 알렉세이 미신은 소트니코바가 안무와 예술성 요소를 더 잘 소화해 우승했다고 지적했다(이즈베스티야 보도). 대한빙상경기연맹은 판정이 부당하다며 항의했지만, 여자 피겨 싱글 성적은 바뀌지 않았다.

예브게니 플류셴코, 피겨스케이팅

'영웅'인 동시에 '악당'... 피겨선수 예브게니 플류셴코는 소치 올림픽에서 가장 입방아에 많이 오른 선수였다. 그는 러시아가 금메달을 딴 단체전은 멋지게 연기했지만, 개인전은 아예 망쳐버렸다. 33살의 나이에 고질적인 허리부상 때문에 출전조차 못 한 것이다. 올림픽이 끝나자 곧 수술을 받았다. 이 사건에 대한 러시아 내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특히 팬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부분은 플류셴코 선수가 대회 성적으로 출전한 것도 아니어서(그는 2013년 러시아피겨선수권과 세계 피겨선수권에 불참했다) 다른 선수들이 출전할 길을 막아버렸다는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세계피겨선수권 성적이 안 좋았던 탓에 남자 피겨 출전권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에 수백만의 팬을 거느린 플류셴코는 자신을 향한 비판에 신경 쓰지 않고, 부상에서 회복되자 개인 아이스쇼를 열고 있다. 선수로서의 열망도 버리지 않았다. 지난 7월엔 2018년 올림픽에 참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빅토르 안  (사진제공=Getty Images/Fotobank)
빅토르 안 (사진제공=Getty Images/Fotobank)

빅토르 안, 쇼트트랙

러시아에 귀화한 한국인 빅토르 안은 지난 2월 단 며칠 새 러시아 사람 절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부상을 입고 한국 대표팀에서 제외되자 2011년 러시아에 왔다. 당시 이미 올림픽 3관왕이었지만, 선수 생활을 새로이 시작하고자 했다. 러시아 정부는 안 선수를 믿고, 신속히 국적을 내주어 러시아 대표팀과 훈련할 수 있도록 했다. 결과는 모두의 기대 이상이었다. 소치 올림픽 1500m와 1000m를 제패했을 뿐 아니라 계주에서도 러시아 팀이 승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러시아어도 배운 그는 현지 생활에 잘 적응했다. 자신이 생활하고 훈련받는 모스크바에 배우자도 데려왔다. 이제 막 러시아인으로 새로 태어난 안 선수의 성적은 계속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다. 지난 3월 열린 캐나다 세계선수권에선 금메달 두 개를 따내면서 풍요로운 새 시즌에 대한 기대를 안겨주고 있다.

빅 와일드 (사진제공=Getty Images/Fotobank)
빅 와일드 (사진제공=Getty Images/Fotobank)

빅 와일드, 스노보드

미국 스노보드 선수 빅 와일드도 빅토르 안처럼 2011년에 러시아 팀에 합류했다. 러시아의 선택적 귀화 정책은 이번에도 적중했다. 러시아에서는 낯선 종목인 쇼트트랙이나 스노보드가 러시아에 메달을 안겨줄 거라 상상한 팬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 주의 소도시 화이트새먼 출신의 이 28살 청년은 평행회전과 평행대회전에서 금메달 두 개를 따내면서 소치에 모인 관중을 열광에 빠뜨렸다. 와일드 선수는 미국에선 금전적 어려움을 겪었던 반면, 러시아 팀에선 훈련에 필요한 모든 여건이 주어졌다고 고백했다. 하프파이프나 스노보드 크로스 스타들이야 엑스게임을 휩쓸면서 두둑한 상금이나 후원을 받을 수 있지만, 알파인 스노보드 선수에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국적을 바꾸는 데 최종적 역할을 한 건 러시아인 스노보드 선수인 아내 알료나 자바르지나였다. 그녀 역시 소치올림픽 평행대회전에 출전해 와일드 가족의 올림픽 성적에 동메달을 보탰다.

뱌체슬라프 보이노프, 하키

지난 7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LA킹스 수비수 뱌체슬라프 보이노프는 팀과 함께 스탠리컵의 주인이 됐다. 근 3년간 벌써 두 번째 우승이었다. 첼랴빈스크 출신의 24살 청년은 영광의 트로피를 두 번이나 받은 최연소 러시아인이 됐다. 하지만 올 가을 새 시즌 그의 근황은 좋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경기 성적 때문이 아니다. 10월 20일 가정폭력 혐의로 캘리포니아 주 레돈도비치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긴 했으나, NHL로부터 조사기간동안 출전정지처분을 받았다. 지난 11월 1일 열린 첫 재판에서 그는 혐의를 부인했다.

알렉산드르 케르자코프 (사진제공=Getty Images/Fotobank)
알렉산드르 케르자코프 (사진제공=Getty Images/Fotobank)

알렉산드르 케르자코프, 축구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포워드인 32살의 알렉산드르 케르자코프는 젊은 선수에 중점을 두는 파비오 카펠로 감독의 팀에서 유일한 노장 선수다. 케르자코프와 러시아 대표팀은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케르자코프의 골 덕분에 한국전에서 패배를 면할 수 있었다. 케르자코프는 9월 3일 열린 아제르바이잔과의 친선전에서 두 골을 터트리면서 통산 28골로 러시아 국가대표 최고의 슈터가 되었다.

마리야 샤라포바 (사진제공=Getty Images/Fotobank)
마리야 샤라포바 (사진제공=Getty Images/Fotobank)

마리야 샤라포바, 테니스

러시아 최고의 테니스 스타 마리야 샤라포바는 부상에서 막 회복된 상태로 한 해를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시즌을 보냈다. 올해 별안간 클레이코트의 강자로 떠오른 샤라포바는 프랑스오픈을 비롯한 여러 클레이코트 대회에서 우승하며 다양한 코트에 고루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나머지 세 메이저대회에선 쓴맛을 보았다. 매번 4라운드가 저주에 걸린 것처럼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호주에선 첫째 주말에 도미니카 시불코바에게 지고, 윔블던에선 안젤리크 케르버에게 승리를 내주었으며, 미국 플러싱 메도의 코트에선 캐럴라인 보즈니아키의 강력한 플레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가을엔 차이나투어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아시아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팬들을 기쁘게 했지만, 싱가포르에서 열린 여자프로테니스 파이널에선 불운을 맛봐야 했다. 그 결과 샤라포바는 세계랭킹 2위를 차지했고, 세레나 윌리엄스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되버렸다. 됐다. 하지만 이번 메이저대회 우승을 네 명의 선수가 나누어 가져갔으니, 내년엔 세레나의 판도가 깨질 수도 있다. 그럼 샤라포바가 아니고 누가 깨겠는가?

다닐 크뱌트 (사진제공=AFP/East News)
다닐 크뱌트 (사진제공=AFP/East News)

다닐 크뱌트, F1

러시아가 낳은 F1(포뮬러 원)의 센세이션이란 거창한 수식어는 1년 만에 F1에서 유명인사가 우파 출신의 된 20살 청년에겐 과하지 않다. 시즌이 시작할 때만 해도 갓 데뷔한 선수가 토로로소의 차량을 끌고 첫 레이스부터 순위권에 들 것이라 상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닐은 끈기와 집중력을 발휘해 호주에서의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말레이시아와 중국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무난히 10위권에 올랐다. 이 러시아 신동의 재능은 F1의 거물들도 알아보았다. 레드불 레이싱의 단장 크리스천 호너는 페라리로 이적한 제바스티안 페텔 대신 자신의 제자인 크비아트(크비아트는 레드불 영드라이버 아카데미 졸업생이다)를 소치 그랑프리가 시작되기 직전 팀에 데려왔다. 더 강력한 차량을 타게 된 다닐 앞에는 분명 새로운 가능성이 펼쳐질 것이다. 2015년이 젊은 레이서의 선수생활에 결정적 시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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