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도 편한 도시 소치 … 그곳선 장애인도 보통사람

러시아에서 처음 열린 소치 패럴림픽은 러시아인의 장애인 편견을 크게 없앴다는 평을 받는다. 왼팔이 없는 일본 여성 스키 선수가 2014 소치 패럴림픽 본격 경기를 앞두고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리아 노보스티)

러시아에서 처음 열린 소치 패럴림픽은 러시아인의 장애인 편견을 크게 없앴다는 평을 받는다. 왼팔이 없는 일본 여성 스키 선수가 2014 소치 패럴림픽 본격 경기를 앞두고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리아 노보스티)

러시아의 장애 편견 극복 출발점 '소치 패럴림픽'

소치 패럴림픽은 러시아에 특별한 행사다. 장애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러시아 사람들의 귀에 익숙했던 '장애인'이라는 말은 적어도 소치에선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그 대신 '건강 기회 제약자'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처음에 생소해 안 썼지만 2014년 패럴림픽 준비를 하면서 이 말에 익숙해졌다. 어떤 이는 "장애인은 안타깝긴 해도 그런 용어는 흑인이란 말처럼 차별적이었고 때로는 모욕적이기도 했지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인식에 뭔가 변화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소치에서는 아이들도 휠체어 탄 사람도 여느 보통 사람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저 불쌍하다고만 보는 게 아니라 보통 사람이나 다름없이 편리하고 안락하고 안전한 삶을 위한 여건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 그렇게 소치는 '장애 없는 환경' 프로젝트를 실현한 러시아 최초의 도시가 되었다. '건강 기회 제약자'들은 이 프로그램 덕분에 1500개 이상의 시설물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2007년부터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패럴림픽 선수들에게도 올림픽 선수들과 똑같이 금전적 보상을 하는 제도가 마련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러시아에서 처음 열린 패럴림픽인 소치 패럴림픽이 대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러시아는 메달 80개를 획득하고 입장권도 32만5000장을 판매하며 겨울 패럴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그런 따스함이 모여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을 만들었다.

이레크 자리포프 (사진제공=레기언 메디아)
이레크 자리포프 (사진제공=레기언 메디아)

30세의 이레크 자리포프도 그중 하나다. 자리포프는 밴쿠버 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와 바이애슬론 4관왕 출신. 소치에선 바이애슬론으론 메달권에 못 들었다. 그러나 크로스컨트리 15㎞ 레이스에서는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자리포프는 소치 패럴림픽을 끝으로 은퇴할 계획인데 "기분 좋게 은퇴하길 바라며 앞으로 정치활동에 전념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러시아 패럴림픽 대표팀 주축이기도 한 그는 바시코르토스탄 공화국 의회 의원이기도 하다.

자신감 넘치고 성공가도를 달리며 정열적인 자리포프. 그는 열일곱 살 때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다리를 절단하고, 이어지는 수술들. 병원을 전전하는 생활. 2년간 불면으로 밤을 새웠고 절망에 몸부림쳤다. 자리포프는 "먹고 마시고 자기만 하며 식물인간처럼 살았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몸무게가 65㎏이지만 침대에 누워 있기만 하던 때는 100㎏에 육박했다. 부모님이 그를 수렁에서 꺼내줬다. 기운을 내고 정신을 차리게 했다. 육상과 수영, 스키로 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롤러스키를 타는 바이애슬론 선수들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수 ㎞씩 달리곤 했다. "운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게 내가 할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삶이 단조롭지 않게 되었고 운동에서 최고 자리까지 오르고야 말겠다는 목표도 생겼다." 목표를 달성했다. 운동에서만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부모님이 계시고 아내와 아이들도 있고 좋아하는 일도 있다. 또 뭐가 필요하겠는가?" 그는 말한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안나 밀레니나 (사진제공=이타르타스)
안나 밀레니나 (사진제공=이타르타스)

선천성 장애인 안나 밀레니나도 행복한 사람이다. 태어날 때부터 신경압박으로 팔이 부분적으로 마비돼 있어 의사들은 절대로 운동을 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체육인들이었다. 어머니는 크로스컨트리, 아버지는 스키 선수다. 부모님이 처음 만난 곳도 스키 트랙이었다. 이모는 코치다. 이모는 의사의 의견을 듣지 않고 밀레니나의 훈련을 책임졌다.

여섯 살 때부터 운동이 시작됐다. 대표팀엔 열네 살 때 들어갔고 곧바로 국제무대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밴쿠버 패럴림픽에서는 더 책임감 있고 의식적으로 경기에 임했다. 곧 성적이 나왔다. 금메달 두 개와 은메달과 동메달 하나씩 목에 걸었다. 귀국길에는 또 하나의 깜짝 선물이 밀레니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훤칠한 젊은 남성이 청혼한 것이다. 베이징 패럴림픽 배구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선수다. 두 사람은 결혼해 1년 뒤 아들을 낳았다. 밀레니나는 "엄마가 되면서 중요한 게 뭔지 알게 됐다"고 말한다. "삶은 대를 잇는 거다. 그래서 나는 훌륭한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멋진 엄마와 아내도 되고 싶다. 아이들이 항상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안나 밀레니나는 소치 패럴림픽에서도 다시 금·은·동 메달 세트를 목에 걸었다. 스프린트 자유형 입식에서 금메달, 바이애슬론에서 은메달, 크로스컨트리 15㎞ 레이스 동메달이었다.

영웅이 '하늘에서 떨어지듯'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선수가 되려면 경쟁해야 한다. 소치 패럴림픽에서는 64명의 대표선수 자리를 놓고 110명이 경쟁했다. 아마도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다. 장애아동 운동선수가 최근 3년간 세 배 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큰 영웅이라면 소치 시민은 적어도 작은 영웅이다. 그들도 나름대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패럴림픽 영웅의 탄생에 기여했다. 시민들은 새로 도입된 제도를 모두가 곧바로 '기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모든 건물 1층에 있는 상점, 이발소, 카페 또는 작업장 소유주들은 몇 년 전 예외 없이 1m 내에 직원 호출용 특별 버튼을 설치해야 했다. 당연히 "이런 게 왜 필요하냐"는 반감이 일어났다. 이후엔 아이들의 장난이 이어졌다. 5분마다 눌러댔고 버튼이 아예 사라지기도 했다. 업주들은 버튼을 꺼 놓거나 일주일마다 새로 달아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하고 익숙해졌다. 장애인을 위한 직원 호출용 버튼은 이제 소치에서 자연스러운 장치다.

소치는 장애인 스포츠 분야에서도 크게 도약했다. 휴양지 거리에 있는 거의 모든 운동장이 장애인의 필요에 맞게 개조되었다. 셔플보드, 컬링, 체스, 알파인스키, 기타 장애인용 운동경기를 할 수 있는 구역이 개설됐다. 바딤 스베틀라코프 소치 '건강 기회 제약자 피트니스센터' 전 대표는 "센터 개관 당시 처음에는 장애인 18명만이 공식 등록했지만, 현재는 벌써 150명쯤 된다"고 말했다. 패럴림픽은 소치만 바꿔놓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주민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민들은 이제 휠체어 탄 사람들에게 동정인 아닌 존경을 표시하고 있다. 이들은 신체 결함에도 불구하고 삶을 기뻐할 줄 아는 영웅들로 흔히 인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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