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74㎝ 이상, 옷 치수 S가 기본 …미스 러시아급? 미녀 즐비

메달 시상식 도우미 선발대회 르포
(사진제공=미하일 모르다소프)
(사진제공=미하일 모르다소프)

지난해 11월 말 소치 예술대학의 복도는 미인선발대회에 출전한 아가씨 수백 명으로 북적거렸다. 조용하고 수줍어하는 사람도 있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옆 사람과 자신의 키와 체형, 사회적 능력이 대회의 요구조건에 맞을지 초조히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선발대회는 아름다운 외모와 멋진 몸매를 보는 대회가 아니다. 여성에게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인생을 바꿀 기회이자 흥분되는 이벤트였다. 뽑힌 여성들은 2월로 다가온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메달을 시상식장으로 가져오는 자랑스러운 역할을 맡을 터였다.

치열했고 책임감도 막중했다. 많은 참가자에게 이 대회는 그들만의 작은 올림픽이나 다름없었다. 무대에 오르기 몇 분 전, 젊은 참가자들이 자기소개를 어떻게 할지 걱정하기 시작했다. 표범 무늬 드레스를 입은 한 참가자가 올림픽 운영위원에게 물었다. "할 줄 아는 외국어가 하나도 없는 게 문제가 될까요?" 가녀린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를 입은 한 젊은 여성도 질문했다. "저는 현재 올림픽 자원봉사자인데요. 그래도 메달 시상식에 나가는 일을 겸할 수 있겠지요?" 운영위원들은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며 결과는 며칠 후에 발표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핵심, 즉 선발자는 세계적인 올림픽 인사들을 만나고 전 세계에서 방송하는 소치 올림픽 TV쇼에 나올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했다.

긴장 속에서 대기하던 참가자들은 번호표를 단정히 하거나 머리를 빗어 올리고, 화장을 손질했다. 무릎 위까지 올라가는 부츠를 올려 신기도 했다. 거의 모든 러시아 여성은 '아름다움'을 숭배한다. 밤거리에 나가 보면 러시아 사람의 인식에 깊이 뿌리 박힌, '아름다움은 고통을 수반한다'는 프랑스 속담을 체감할 수 있다. 거리에는 대부분이 평범한 소치 시민인데도 그중 많은 사람이 마치 늘씬한 모델 같은 모습으로 활보한다. 6인치 힐을 신는 사람도 있다. 대회 운영위가 참가자에게 내놓은 권장사항은 키 1m74㎝ 이상에 옷 치수는 S로, 실제 모델 선발조건과 비슷했다.

모두 자신감에 차 있던 것은 아니었다. 도트무늬 원피스를 입고 온 장신의 20세 숙녀 타티야나 시델니코바(위 작은 사진)는 곧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시델니코바의 '오랜 염원'은 일본 출신 러시아 대표팀 피겨선수이자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유코 가와구치(러시아식으론 카바구티)를 만나는 것이다. 시델니코바는 그 순간을 고대하며 일본어를 열심히 배웠다. 얼마나 존경하는지 유창한 일본어로 직접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보다 더 감동적인 자기소개가 있을까. 게다가 시델니코바는 5개 국어를 할 수 있고 미국에서의 거주 및 유학 경험도 있다. 지금은 소치 예술대학의 피아노과 1학년에 재학 중이다.

소치 올림픽 자원봉사단은 2만5000명이나 된다. 도우미가 되려면 열심히 공부해 시험도 통과해야 한다. (사진제공=리아 노보스티)
소치 올림픽 자원봉사단은 2만5000명이나 된다. 도우미가 되려면 열심히 공부해 시험도 통과해야 한다. (사진제공=리아 노보스티)

그럼에도 '남보다 통통하다'고 생각하는 시델니코바는 날씬한 여자들 틈에서 위축됐다. 심사위원 앞에 서는 게 '공포'란다. 예술대학의 피아노과 교수 마리나 벨로바가 제자인 시델니코바 앞에 멈춰 서서 얼음을 끼얹었던 것이다. 교수는 "너무 뚱뚱해서 통과 못할 거예요"라고 얼음을 던진 것이다. 시델니코바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이때 검은 코트를 입은, 훤칠하고 잘생긴 사촌 블라디미르 오그네프가 시델니코바 곁에서 용기를 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대기실을 박차고 나갔을 거다. 오그네프는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서 네가 가장 아름다워. 내 말을 믿으라니까"라며 사촌을 달랬다.

경쾌한 음악이 콘서트홀에서 들려왔고 심사위원들이 다음 지원자 그룹을 입장시켰다. 한 심사위원이 키가 가장 큰 참가자에게 말했다. "하이힐은 벗어 던지고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실 심사위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몸매가 아니었다. 소치 자원봉사발전센터의 마리나 나자로바 매니저는 "우리는 참가자들이 얼마나 우아하고 아름답게 행동하는가 평가합니다. 자신의 성격을 얼마나 잘 설명할 수 있는지도 주의 깊게 보고요"라고 밝혔다.

또 다른 참가자인 옥사나 푸지나가 우아미의 살아있는 본보기나 되는 듯이 기자들에게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아름다운 몸매와 단정한 단발에 몸에 꽉 끼는 샤넬 블랙 드레스를 입고 온 옥사나 푸지나는 유명 대회 어디에 나가도 자랑스러워할 만했다. "저는 소치가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2007년부터 메달 수여식에 참여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꼭 선발되고 싶어요." 그녀가 미소 지었다.

'걱정'은 젊은 여성의 본성인 게 틀림없다. 푸지나는 합격 소식을 듣고 나서 다른 문제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올림픽 자원봉사자인데 시상식도 돕게 됐으니 두 역할이 상충될 게 분명하거든요. 걱정되네요." 월요일 푸지나가 인터뷰 중 말했다.

시델니코바의 바람도 이뤄졌다. 피겨 메달 수여식을 돕기로 결정된 것이다. 가와구치 선수와의 만남이라는 꿈에 한 발 더 가까워졌다. 1월 초부터는 시델니코바를 비롯한 봉사자들이 연기와 춤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해요. 그런데 실전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몸무게도 10㎏ 뺐어요. 지금 치수는 90-60-90이랍니다." 그녀는 이미 자기만의 올림픽 메달을 딴 셈이다.

This website uses cookies. Click here to find out more.

Accept cook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