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 은퇴자의 '걸어서 지구 한 바퀴'

세르게이 루키야노프

세르게이 루키야노프

루슬란 샤무코프
세상을 둘러보는 시간 – 2년, 줄어든 체중 – 14kg, 비용 – 백 만 루블(1980만 원), 모래 폭풍에 갇힌 일, 강도를 만난 일, 수술대에 오른 일, 올림픽에 때맞춰 도착한 일은 알싸한 추억거리. 세르게이 루키야노프 씨의 여행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예순 살 퇴직자 세르게이 루키야노프가 혈혈단신으로 스물 두 달 동안 2만 3000 km를 걸어서 지구 한 바퀴를 돌았다. 도보 세계여행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그의 성취는 커다란 도전이 되었다. 옛소련 시절부터 걷기에 정성을 다해온 그는 퇴직후에도 걷기에 매진했다.2013년엔 유럽을 2500km 걸었고 2014년엔 3000km를 걸었다. 그러다 2015년 내친 김에 세계일주에 나선 것이다. 지금 그의 팬클럽에서는 예순 나이에 매일 '스니커즈'와 '코카콜라'나 땅콩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그렇게 장거리를 걷는 ‘초인적’ 행동이 정상인지를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루키야노프 씨가 도보 여행을 마치자마자 기자들은 그에게 '러시아의 포레스트 검프'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다른 점은 뛰지 않고 걷는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루키야노프 씨가 세계 일주를 떠나려 했던 그 순간 그가 평생 걸었던 거리는 이미 30만km였다.

“500km를 돌아 가라고? 그러지 뭐”

- “세계 일주를 준비하는 데 쏟은 시간?”

- “평생 준비했다고 봐야 한다. 출발 전에 특별히 한 일은 따로 없다. 끝까지 완주할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루키야노프 씨가 창문 너머로 삼월 초에 내리는 봄눈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신다.

사진제공: 루슬란 샤무코프사진제공: 루슬란 샤무코프

그는 2015년 4월 1일 집을 나섰고 2017년 2월 4일 집으로 돌아왔다. 이 시간 동안 그는 정확한 숫자를 말하긴 힘들지만 대략 20개국을 돌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중국의 한 국경에서였는데 인터넷으로 검색한 정보로는 그곳에 검문소가 있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그 검문소로는 중국인과 베트남인만 통과할 수 있었다. 그 외의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검문소로 가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500km를 더 걸어야 했다. 그런데 내 비자 기한이 이미 만료된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우회로로 돌아 벌금을 물었다”고 루키야노프 씨가 당시를 회상한다.

비자 기한에 따라 이동 속도가 달라졌다. 베트남은 2주만에, 싱가포르는 3일 안에 통과해야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그의 지인들이 베이스 캠프 역할을 했다. 친구인 미하일 소콜롭스키 씨는 22개월 내내 루키야노프 씨와 함께 '동행한 셈'이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메시지를 보내주고, 루키야노프 씨와 만날 의향이 있는 사람들이나 잠자리를 제공할 사람들을 물색했다. 그는 “아는 러시아 사람이 나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면 나는 300~350루블(약 6000원)만 내면 24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설 좋은 사우나가 중국에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침대도 있고, 찜질복, 수건도 준다. 텔레비전, 컴퓨터, 채소, 마사지 시설이 갖춰져 있다”고 이야기해 준다.

비용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세르게이 루키야노프 씨는 일하지 않고 2년을 살만한 충분한 재산이 없었다. 은퇴하기 전까지 그는 트레이너로 일했다(그는 소련과 러시아에서 최고기록을 보유한 100km 경보 선수였다). 하루 예산은 500루블(9895원), 하루에 걸어야 할 거리는 50~60km. 세계 일주를 위해 쓴 총액은 약 100만 루블(1980만 원), 모든 것이 다 ‘최소’였다.

끓인 '코카콜라'로 만든 컵라면

사진제공: 루슬란 샤무코프사진제공: 루슬란 샤무코프

루키야노프 시는 버스 정류장, 공원, 공항 등에서 밤을 보냈다. “유럽은 평온한 곳이지만 호텔비가 50유로(6만 원)씩 든다. 그래서 침낭을 가지고 다니면서 공원이 문을 닫는 밤 10시가 가까워오면 공원으로 갔다. 경찰의 눈을 피해 전나무 아래로 숨어 들었다. 벨라루스 같은 나라에서 기온이 영하 40도로 떨어진 날에는 호텔에 묵었다”고 그는 기억했다.

루키야노프 씨는 현지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땅콩을 주식으로 많이 먹는 바람에 이빨도 상당히 닳았다. 하지만 대부분 현지에서 파는 치즈, 훈제고기, 버터와 빵을 주식으로 했다. 뜨거운 국물 음식을 먹거나 물을 마시지는 않았다. “나는 한 도시에 하루만 머물렀다. 지역마다 제각기 물이 다르다. 신체기관이 물에 적응하는 데는 일주일이 필요하다. '콜라'만 어딜 가나 똑같다. 콜라 한 병에는 설탕 8스푼이 녹아 있어서 마시면 5km는 너끈히 걷는다. 내가 콜라 대신 국물을 마셨다면 에너지 소모량으로 따졌을 때 1km 정도밖에 가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심지어 코카콜라를 넣고 컵라면을 끓이기도 했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그런 식으로 '다이어트'하며 여행한 세르게이 루키야노프 씨는 체중 14kg을 감량했다.

가장 알알한 추억들

사진제공: 루슬란 샤무코프사진제공: 루슬란 샤무코프

여행하는 동안 그가 어렵고 힘든 상황을 극복해야 했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겨냈고 행군을 멈추지 않았다.

루키야노프 씨가 러시아 땅을 다 통과하기도 전에 케메로보(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3482km 거리) 근처에서 수술대에 눕게 된 일이 있었다. 탈장때문이었다. 1년간 회복 기간을 가져야 했지만 수술  45일 뒤 그는 부목 2개를 댄 몸에 배낭(무게 18kg)을 들쳐 메고 병원 문을 나섰다.

그가 여행을 시작한 지 1년이 넘었을 때 남미에서 권총과 칼을 든 강도를 만나 가방과 신용카드, 휴대전화를 빼앗겼다. 루키야노프씨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사는 친구에 가서 필요한 물품을 소포로 받을 때까지 묵어야 했다. 3주는 하릴없이 기다렸다.

기억할만한 또 하나의 사건은 루키야노프 씨가 올림픽 기간에 맞춰 리우에 도착한 일이다. “가보니 러시아 육상경기 선수 중 유일한 남자 선수가 나였다. (도핑 스캔들 때문에 러시아 선수 중에서 여자 높이뛰기 선수인 다리야 클리시나 혼자만 리우올림픽 육상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던 상황을 빗댄 쓸쓸한 농담– Russia 포커스) 하지만 나는 너무 빨리 은퇴해버렸다”면서 그가 소리 내어 웃었다.

“뭐니뭐니해도 심리적으로 가장 힘들다. 집에서 나와 밖에서 산다는 것이 그런 거다. '너는 혼자다. 2년 동안 완벽한 혼자다.' 이런 마음이다. 할 줄 아는 외국어도 없고 러시아말밖에 모른다. 내 배낭에 '세상을 둘러 보려고 걷는 중'이라고 영어로 써 놨다.”

참고: 걸어서 지구 한 바퀴를 돌기 위한 루키야노프식 여덟 가지 생활의 지혜

1) 후원자를 찾아라. 세계 일주 여행엔 비용이 많이 든다. 일부라도 비용을 대줄 사람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운동화만 하더라도 열 켤레가 소비된다. 운동화 한 켤레로 3000km 걸으며 한 달을 버틸 수 있다.2) 오프라인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내비게이션(길도우미)을 설치하라.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곳도 있고 종이지도가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3) 유럽에 가면 공원이나 공항에서, 중국에 가면 사우나에서 자라.4) 이따금 땅을 보고 걸어라. 발 밑에는 재미있는 것이 많다. 루키야노프 씨는 길에서 스마트폰, 현금, 심지어 노트북도 주웠다.5) 물을 너무 의지하지 마라. 어디를 가나 성분이 똑같은 것을 마시는 게 낫다.6) 좌표계는 집에다 두라. 인터넷이 되는 곳에서는 언제나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몇 몇 친지들로 구성된 '베이스 캠프'를 만들어라.7) 걸을 때 옷을 벗지 마라. 걸을 때 땀을 흘리지 않으려면 시간당 5~6km 속도가 적당하다. 직사광선이 직접 몸에 닿지 않게 하려면 옷으로 '가려야' 한다.8) 세계일주부터 바로 시작하지 마라. 도보 세계 일주에 성공하려면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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