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는 여자가 조종사가 되기 쉬울까?

마리나 리시치나/ 타스
러시아에 여자 조종사는 많지 않지만, 어쨌든 있다. 여자 조종사가 되기 쉬울까, 조종사가 왜 더 이상 ‘남자의 일’이 아니게 됐으며 왜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나올까?

조종실에 있는 것은 낯설고 무섭다. 특히 착륙할 때에 더욱 그렇다.

심지어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고 해도 그렇다.

- 어디로 착륙하나요? 지금은 OO 숲인데...

- 셰레메티예보[모스크바의 공항]입니다.

- 그러면 일몰이나 일출로 하세요. 아니면 밤이나. 밤의 두바이로 하죠!

이곳은 민간여객기 훈련시설이다. 훈련시설은 조종실과 99% 흡사하며, 지붕이 있는 격납고에 있다. 조종사들이 직접 비행 조건과 창 밖 풍경을 설정할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상황은 실제와 같다. 훈련 조정사가 조종실을 앞으로 내리면서 활주로가 너무 빨리 가까워지자 뒤에 모인 참관자들 쪽에서 긴장된 웃음이 들려온다.

예카테리나 텔레푼. 출처: Russia포커스예카테리나 텔레푼. 출처: Russia포커스조종간을 잡고 있는 사람은 예카테리나 텔레푼이다. 그녀는 ‘아에로플로트’ 항공사에서 가장 젊은 여성 조종사 중 하나다. 현재 25세이며, 에어버스 A320 시리즈 여객기의 제2조종사다. 그녀의 손가락이 여러 단추와 손잡이 사이로 빠르게 움직이며 중심위치, 속도, 좌표를 조정한다. 예카테리나는 너무나 연약하고 소심하고 어려 보여서 조종사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조종사 학교 1학년 생도와 비슷하다. 또 그녀는 러시아 블록버스터 영화 ‘승무조(Экипаж)’(2016)의 여주인공인 제2조종사 알렉산드라와도 닮았다. 알렉산드라는 ‘남성의’ 직업을 선택했고 이 때문에 영화 속에서 계속 차별을 받는다.

- “당신도 그렇게 느꼈나요?”라고 묻자 “나는 ‘이건 차별이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그런 일은 영화에서만이고, 실제로는 전혀 달라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요즘 예카테리나는 비행기가 추락 직전이고, 전 엘리트 특수요원이 다시 나타나 모두를 구출한다는 내용의 액션 영화를 자주 보지는 않는다.

그녀는 “대신 아카데미에 있을 때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의 다큐멘터리 ‘항공사고수사대(Air Crash Invextigation)’를 자주 봤어요.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실수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는 것을 배웠죠”라고 말한다.

두 조종사가 모두 여성인 경우는 없어

예카테리나는 벌써 2년 째 비행하고 있으며, 한 달에 평균 20편을 운행한다. 모든 조종사가 반 년 마다 위에 나온 훈련시설에서 연습을 하는데, 여객기 운행 경력이 오래 된 조종사도 마찬가지다. 이런 훈련은 비상상황에서 조종하는 법 등을 포함해 ‘발동되지 않은’ 기술을 잊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예카테리나는 “키예프에서 살았는데 시콜라(러시아 중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비행 아카데미에 입학했어요. 기수 중에 유일한 여자였죠.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아카데미에서 한 기수에 여자 5~6명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어요. 왜일까요? 아마도 아카데미에서 원하지 않아서겠죠. 아니면 그런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저는 ‘어쩜 러시아에서도 그럴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아요.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어요. 아무도 저를 차별하지 않았죠. 유일하게 필요한 것은 건강이에요”라며 미소짓는다.

360개 질문으로 구성된 심리테스트, 신체검사, 간질검사가 시행된다. “저를 어두운 방의 의자에 앉혔어요. 불이 들어오고 아주 강하게 깜빡이는 데, 그걸 보고 있어야 해요.” 그녀가 회상했다.

훈련시설에서 그녀의 소심함은 사라진다. 그녀는 자기 회사에 여자 조종사가 몇 명인지 세어보려고 한다. 20명이 조금 넘는데[항공사의 조종사 수는 모두 2353명], 그 중에 5명은 지휘관이다. 하지만 예카테리나는 이들 중 누구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그저 비행 전 브리핑에서 스쳐갈 뿐이다.

그녀는 “한 승무조에서 여자 조종사 2명을 함께 편성하진 않아요. 공존성을 고려한 것 같아요...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래요. 하지만 옛소련 시절에는 했더군요. 사진을 봤는데 모두 여자였어요”라고 말한다.

러시아인들 대부분에게 여자 조종사는 아직 당찮은 일이다. 여자 전차병이나 마찬가지로 여겨지고 낯설기만 하다. 스튜어디스들이 예카테리나에게 말하길, 기내방송에서 그녀의 환영 인사가 나오면 승객들은 조용해진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무도 비행기에서 내리지는 않았다며 그녀는 웃는다.

‘항상 증명해야 해요’

타티야나 비튜기나. 출처: 개인기록타티야나 비튜기나. 출처: 개인기록

“대체로 러시아에서는 항공부문에서 일하는 여성을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으로 봐요. 고정관념이죠. 제가 얼마나 많은 오해와 편견, 성차별과 일반적 차별, 부정적인 말과 부딪혔는지 상상도 못하실 거에요. ‘남자가 아니라서’ 고용을 꺼려요. ‘계집애하고는 비행하고 싶지 않아’라며 불만을 표시하는 이들도 있었어요. 나는 페미니스트에요. 이 분야에서 일하다 보면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수 없어요.” 예카테린부르크(모스크바에서 1788km) 출신의 22세 여성 헬기 조종사 타티야나 비튜기나가 본지에 말한다.

그녀의 진로는 예카테리나의 그것보다 훨씬 힘든 가시밭길이었다. 그러나 예카테리나와 마찬가지로 타티야나도 항공 종사자 집안 출신이며, 사무실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았으며 확실히 기수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반 년 동안 여객용 Mi-8 헬리콥터, 즉 VIP 승객을 위한 가죽 좌석이 있는 안락한 헬기에서 일할 수 있었는데, 그녀는 이 일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계속 출장을 다니고, 사원아파트에서 승무조와 함께 답답하게 살고, 자유시간도 적고 사생활도 없다. 이제 그녀는 석유관을 순찰하며 (위의 Mi-8과 동일 기종이지만 버전이 다른 것을 타고) 50~100m 상공에서 사고 위험이 있는 곳, 가스가 새는 곳과 다른 문제들이 있는 곳을 감시한다.

타티아냐는 “헬리콥터에서 일하는 것은 ‘아름다운 여객기’에서 일하는 것보다 어려워요. 헬리콥터는 소음과 진동이 더 크고, 계속 케로신 냄새가 나죠. 일은 더 힘들고 ‘더럽지만’ 급여는 더 적어요. 가끔은 냄새가 빠지질 않고 온 몸에서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타티야나는 이 직업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100배는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자신이 남자 못지 않다는 것을 계속 증명해 보여야 하고, 평균수준의 남자 조종사를 능가해야 한다. 남자 조종사의 실수는 ‘누구나 그럴 수 있지’라고 용서해 주지만 여자 조종사는 필히 ‘조종간을 잡은 여자는 수류탄을 든 원숭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을 듣기 때문이다.

타티아나는 “하지만 지금은 훨씬 많은 여자들이 항공분야로 진출해요. 외국 여자 조종사를 보면서 ‘여자 조종사도 비행하잖아. 왜 그녀는 되고 난 안돼? 나도 절대 뒤지지 않아’하고 생각하죠. 한번은 튜멘의 공항에서 스튜어디스가 다가 와서는 앞으론 여자도 조종사가 될 수 있다고 얘기하고 보여줄 거라면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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