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1917) 이전의 발렌타인데이

혁명 이전 러시아에서 발렌타인데이는 귀족 문화였다. 귀족들은 이 날을 화려하고 성대하게 기념했다. 특히 결혼 적령기의 여성이 있는 집안에서 무도회나 파티를 열었고, 결혼 상대로 적당한 남자들을 파티에 초대했다. 사람들이 다 모이면 각자 이름을 적어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이름이 적힌 종이를 한 곳에 모았다. 그런 다음에 눈을 가린 여자는 남자 이름이 적힌 종이를, 남자는 여자 이름이 적힌 종이를 하나씩 뽑아 그 날 파티를 함께 할 파트너를 정했다. 흥미롭게도 발렌타인데이가 지나면 결혼하는 커플이 급증했다. 이런 이유로 결혼을 고대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발렌타인데이를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혁명 뒤 러시아에서 발렌타인데이는 잊혀져갔다. 꽤 오랜시간이 지난 후에야 다시금 발렌타인데이에 대한 기억과 이날을 기념할 마음의 여유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바로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해체한 이후였다.

반(反) 발렌타인 여론, 그리고 오늘 날

사진제공: Vladislav Niko/ Flickr.com사진제공: Vladislav Niko/ Flickr.com

'성 발렌틴의 날'을 그저 로맨틱한 '고백의 날'로 기념하는 분위기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도 한다. 주로 정교회와 기독교에서 발렌타인데이를 반대해 왔다. 실제로 2011년, 러시아 남서부의 벨고로트 시는 '발렌타인데이 금지령'을 내렸다. 젊은이들에게 도덕적 가치를 함양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고, 러시아 전통문화에 반한다는 이유를 들어 올레크 폴루킨 시장은 발렌타인데이 관련 공식행사들을 전면 취소시켰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러시아에서도 발렌타인데이는 지나칠 수 없는 기념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젊은 층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80% 이상의 젊은 남녀들이 발렌타인데이를 '연인의 날 (День Влюбленных)'로 기념한다. 이런 추세에 따라 2월 14일 공원, 카페, 레스토랑은 젊은이들로 북적거리고, 이날을 기념하는 각종 이벤트나 공연도 많이 열린다. 모스크바에선 평소보다 20-30% 많은 약 1000쌍이 결혼식을 하기도 한다. 러시아에서도 점점 발렌타인데이가 로맨틱한 날로 거듭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러시아식 '발렌타인, 로맨틱, 성공적' 공식

한국에서 2월 14일은 여자가 남자에게 고백하는 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남자가 줄 수도 있고, 여자가 줄 수도 있다. 나이, 남녀 구분 없이 주위 고마운 사람들을 챙기는 날이라는 인식이 아직 더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연인뿐 아니라, 같은 반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직장 동료에게도 발렌타인데이를 기념하며 축하 인사를 건넬 수 있다. 선물도 한국처럼 초콜릿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초콜릿과 사탕보다는 카드와 꽃을 많이 주는 편이다.

그렇다면 러시아에서도 3월 14일 ‘화이트 데이’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없다. 이미 2월 14일에 남녀 구분 없이 서로 사랑을 고백하거나 고마움을 표시했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에게 프러포즈하는 특별한 날이 필요 없어진 셈이다.

또 다른 ‘사랑의 날’: 여성의 날 그리고 가족의 날

발렌타인데이 카드 메시지: "모든 사람의 삶의 이유는 바로 사랑을 위해서다". 출처: Natasha N/ Flickr.com발렌타인데이 카드 메시지: "모든 사람의 삶의 이유는 바로 사랑을 위해서다". 출처: Natasha N/ Flickr.com

한국에 화이트데이가 있다면 러시아에는 ‘여성의 날 (Международный Женский День)’이 있다. ‘여성의 날’은 3월 8일로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여성들에게 주로 꽃을 선물하며 축하해 준다. 러시아 사람들은 이 날을 일년 중 단연 큰 기념일로 여기기 때문에 공식적인 ‘빨간 날’로 지정되어 있다.

여성의 날 외에도 러시아에는 7월 8일, 또 하나의 '사랑의 날'이 있다. 바로 '가족, 사랑, 그리고 믿음의 날 (День семьи, любви и верности )'이다. 결혼과 가족, 혹은 사랑과 믿음을 대표하는 성 피터와 성 페브로니아를 따라 '성 피터와 성 페브로니아의 날 (День Святых Петра и Февроньи)'이라고도 부른다. 이 날은 메드베데프 총리가 대통령이었을 당시 스베틀라나 메드베데바 영부인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제정되었다. 공식 휴무일은 아니지만 선물을 주고받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등 큰 기념일 중 하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다시 러시아의 발렌타인데이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날의 역사는 길지 않고 반대 목소리도 낮지 않다. 그럼에도 어느덧 러시아에서도 발렌타인데이에는 ‘로맨틱, 성공적’이란 분위기가 공식처럼 따르기 시작했다. 이 날을 기념하는 방식은 한국과 조금 다르지만, 고마움과 사랑을 표현하는 날이라는 점에서 의미는 비슷하다. 러시아식 발렌타인데이를 따라 이번 2월 14일에는 남녀 관계없이 주위 고마운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해 보도록 하자. С Днём Святого Валентина (스 드뇸 스뱌또보 발렌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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